(6월 3일)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 - 창 15장 12~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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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화) | 창 15장 12~21절 |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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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믿음의 조상이라 일컫는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의 관점에 있어서 지울 수 없는 인물입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혈통의 정통성에 대한 기준점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맺었던 언약의 원초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선민이라는 것을 다른 이방 민족들에게 증명할 때 3가지를 제시합니다. 아브라함의 혈통과 할례,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율법’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의 계보를 통해 구원에 관한 중요한 뜻을 세운 일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를 보낼 것과 그로 인해 만민이 구원의 복을 받을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혈통만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일컫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세워진 모든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일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할례 언약을 맺은 것도, 횃불 언약에 관한 것도 아브라함의 혈통이 중심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믿음 가운데 세워진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우리를 향해 아브라함과 맺은 횃불 언약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고 계실까요?
(12~14) 비록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갈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답게 자신이 받은 영적인 풍요를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나누어주는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가 없는 아브람에게 두 가지를 약속합니다. 하나는 자녀가 없는 그에게 대를 이을 자녀를 약속합니다. 그리고 나그네와 같이 정착할 땅이 없는 그에게 정착할 땅을 기업으로 줄 것을 약속합니다. 이것을 아브람과 언약합니다. 이때 언약의 당사자인 아브람이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아브람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은 육체의 피곤함 또는 잠을 잘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수동형’은 설명합니다. 잠이 들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 언약을 주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잠이 들었다는 것은 이 언약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400년 동안 아브람의 자손들이 이방 민족 아래에서 종살이를 하면서 어떻게 ‘단일 민족’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400년의 종살이를 마치고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 일들을 자신이 주관할 것이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질 사건임을 알도록 합니다. 비록 자신의 모습이 아브람처럼 나그네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기억합시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들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이 나그네와 같이 공고하고, 종과 같이 고달풀지라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풍성한 삶이 기다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는 이 땅에서 삶도 남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답게 자신이 받은 영적인 풍요를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나누어주는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15~17) 불완전하고, 변하기 쉬운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또다시 두 가지를 약속합니다. 하나는 장수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이 4대 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합니다.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던 것처럼 (창 25:7)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백칠십오 년’이라는 장수의 세월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화복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한대로 (출 12:41)에 따르면 그 후손들이 B.C 1446년, ‘여호와의 군대’의 모습으로 애굽 땅을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틀림없이 이루실 것을 ‘횃불 언약’을 통해 약속합니다. 아브라함을 잠들게 한 것과 ‘횃불 언약’은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언약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쪼갠 짐승 사이로 ‘횃불’이 지나가는 것을 통해 계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신 분, 영원히 변치 아니하신 분의 언약으로 세워진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가 불완전한 세상의 것을 의지한다든지, 변하기 쉬운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특권 자체를 던져버리는 것과 동일합니다. ‘횃불 언약’은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는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동행하실 것을 말입니다. 완전하시고, 변치 않으신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세상을 다스릴 때 다윗의 나라는 샬롬이 있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을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18~21)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세계만방을 향해 이 사실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면서 ‘애굽 강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 자손에게 줄 것을 약속합니다. 중요한 것은 “네 자손에게 주노니”입니다. 미래이면서 완료형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놓았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이루신 것은 현재와 미래의 두 종류의 이루심이 있습니다. 현재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 말씀하신 것 또한 이미 하나님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의심치 않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성취해야 하는 몫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는 먼저 “아멘!”으로 화답하는 믿음 있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아브람이 그냥!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말씀하신 미래에 대한 사건을 그는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이루실 두 가지의 이루심이 있습니다. 하나는 현재의 것에 대한 이루심이며, 또 다른 하나는 미래의 것에 대해 이미 이루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만방을 향해 이 사실을 증거하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의 모습을 원하고 계십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신 것도, 그를 통해 언약을 맺으신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관하심으로 이루어진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성도의 삶이 비록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을지라도 그의 삶은 나그네가 아닙니다. 이 땅을 잠시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룰 그 성취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자답게 미래에 있을 풍요함을 바라보는 자기만족의 신앙이 아니라 영적 풍요를 세상을 향해 나눠주는 영적으로 부요한 자리에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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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혈통과 할례와 율법을 받은
자신들만이 선민이요 구원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으로 세워진 모든 자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는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세움을 받기를 원하며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세움을 받은 자로서 이 땅에서의 삶이
때로는 고난과 환란과 위기가 온다하더라도
세상의 것과 세상의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군사가 되기를 원하며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까?를 기대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룰 그 성취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영적 풍요를
세상을 향해 나누어 주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나를 세상 가운데 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택한 백성으로
삼아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coco님의 댓글

완전하시고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언약위에
세워진 존재로서 내게 허락하신 이들에게
영적 풍요를 나누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