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끝없는 신뢰 - 창 20장 8~18절
페이지 정보
본문
5일(목) | 창 20장 8~18절 | 끝없는 신뢰 |
(도입)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것조차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만듭니다. 이런 판국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큰 변화는 거짓된 행동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며, 자신의 죄를 숨기기까지 합니다. 아브라함이 (창 22장)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고, 불리기까지 그 또한 여기에서 자유 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소유인 양과 소를 이끌고 더 좋은 목초지를 얻기 위해 자신이 거주하던 곳에서 남쪽 네게브 땅, 그랄에 머물게 됩니다.
환경에 지배를 당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인본적 결정을 앞세웁니다.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고, 자신들의 정체를 숨깁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한 아브라함의 인본적 행동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과정을 통해 돌이켜봅시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끝까지 신뢰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8~13)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다가 환경에 굴복당하고 섣부른 판단에 의해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함의 속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영원성은 전지, 전능성과 불변성과 함께합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아니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환경에 지배당하고 있는 아브라함을 (창 12:2)과 (3절), ‘3가지의 축복’을 통해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냅니다. ‘큰 민족을 이룰 것’과 ‘이름이 창대할 것’과 ‘그 어떤 누구도 그를 저주할 수 없도록’ 축복합니다. 이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고 또 다른 환경에 지배당하여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동일한 잘못을 범합니다. 한 번은 자신이 기거하던 땅에 가뭄이 심했을 때입니다. 아브라함은 상황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이후 또 하나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번에는 지하수가 풍부한 남쪽 네게브 땅으로 옮깁니다. 그랄이었습니다. 과거 애굽에서 행했던 동일한 잘못을 또 범합니다.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그랄 왕은 아브라함의 아내를 자신의 후궁으로 취하기 위해 데려갈 때도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서 그 여인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왕과 왕에 속한 자들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혼비백산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냅니다. 자신에게 ‘기근’과 같은 긴박한 상황이 엄습합니다. 소유가 메말라갑니다. ‘물’과 같은 것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소유를 기름지게 할 ‘목초지’가 간절히 필요합니다. 이때 환경에 굴복당하여 인본적인 판단을 앞세우게 되면 누구도 예외 없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다가 환경에 넘어지는 자가 되면 소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4~16) 절망과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택한 백성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주시며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아브라함은 아베멜렉 왕에게 고합니다. 아비멜렉은 신의 노여움을 막기 위해 긴급한 두 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돌려줍니다. 그리고 2가지의 배상을 통해 신의 노여움을 막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에게 거주권을 허용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에게 ‘은 천 개’를 주어 사라가 자신에게 당했을 수치를 배상하여 신의 노여움을 해결합니다. ‘은 천 개’는 고대 근동에 따르면 신들이 결혼할 때 치루는 ‘혼례금’에 해당하는 액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한 절망과 같은 위기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반전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의 절망을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의 회복을 위해 오늘도, 지금도 이 시간 이후로도 은혜 베풀어 일으켜 세우기를 원합니다. 그 전능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절망과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택한 백성을 위해 은혜 베풀어주시며 일으켜 세우기를 원하는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이런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신앙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함을 보게 됩니다.
(17~18) 나라와 민족의 회복이 믿음을 가진 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이 사명의 완수를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을 “나의 선지자”라고 칭합니다. ‘선지자’는 (출 4:10)에 따르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삼하 7:17)에 따르면, ‘하나님의 소식을 성실히 전하는 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해내는 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기에 대해 응답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사라 일로 인해 그 집 안의 모든 태가 닫혔던 것이 치료되고, 그의 아내와 여종이 출산하게 되었더라!”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이 시대 앞에 입술을 열도록 사명이 주어진 선지자의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우상숭배, 불의, 이념과 사상 속에 빠져 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아브라함처럼 선지자의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의 회복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 아비멜렉을 회복시킵니다. 나라와 민족의 회복이 믿음을 가진 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이 사명의 완수를 위해 달려가야 합니다.
(적용)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 있는 신앙의 걸음으로 이 시대를 이겨나가야 합니다. 환경에 굴복당해 옆으로 ‘게걸음’을 치는 순간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전능하시며 영원히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약속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위기 속에서도 택한 백성을 위해 지금도, 오늘도 은혜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환경에 먹힘을 당하면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음란’과 ‘타락’과 ‘불법’에 빠져 있는 이 시대 앞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 6:8)처럼 고백합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그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에 속한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 이전글(6월 6일) 결실의 증인 - 창 21장 1~7절 25.06.06
- 다음글(6월 4일) 이런 하나님을 아십니까 - 창 17장 1~8절 25.06.04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하나님을 향한 끝없는 신뢰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만들어가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신앙, 믿음, 신뢰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뢰를 생각하고 묵상하며
나의 신앙을 점검해 봅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신앙으로
살아왔는지 깊이 회개하며
나의 신앙은 게걸음치는 신앙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시며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는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살다보면 환경에 굴복당하고 섣부른 판단으로 넘어지는 모습이 아니라
절망과 위기가운데서도 택한 백성을 위해
은혜를 베푸시고 새 힘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신뢰하는 신앙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로
오늘도 기쁨의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오늘도 하나님께 속한 선지자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