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 수 17장 14~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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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월) | 수 17장 14~18절 |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
17: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17: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17: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17: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17:18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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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분배합니다. 분배의 기준은 인구수에 비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갈렙의 경우 기업의 분배는 가나안 정탐과 관련하여 특별한 언약이 적용됩니다. (수 14:9)은 증거합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기업은 특별한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창 15:13~16)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해 언약한 일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의 기업은 ‘언약의 산물’입니다. 400년 동안 종살이할 것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언약의 실현’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기업의 분배를 가만히 지켜보면 우리가 신앙으로 어떻게 반응해야 복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지 그 길이 보입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기업은 하나님께서 그 지경을 정해주셨다는 것과 그 지경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반응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기업은 기득권을 행사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믿음’과 ‘순종’이라는 신앙이 반응해야 하는 장소입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기업의 분배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느끼고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답을 주고 있습니다. 과연! 가나안 땅과 같은 기업의 분배 앞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14~15) 한 단면만 바라보면서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이기적인 불신앙의 모습을 담아내지 않도록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보다 공정함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단 동편에서 기업의 분배를 받은 르우벤, 갓, 므나세 반 지파를 제외한 아홉 지파 반에 대한 기업의 분배가 시작됩니다. 이때 지파별 기업의 분배와 상관없이 한 사람이 헤브론을 기업으로 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요구합니다. 갈렙이었습니다. 누구도 가기를 꺼리는 헤브론에 대해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 14:12)라며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땅을 자신에게 주기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요셉 자손이 두 분깃을 요구합니다. 요구한 근거는 (창 48:5)의 야곱의 선언과 축복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그런데 한 분깃의 기업이 허락되자 발끈합니다.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14절) 요셉지파의 주장은 한 단면으로 볼 때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은 인구수에 비례하여 분배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수를 더하면 총 58,800명입니다. 반면 단 지파는 64,400명, 잇사갈 지파는 64,300명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업보다 요셉 자손의 기업이 더 많은 분량의 기업을 받았습니다. 공정성에 입각한다면 요셉 자손은 기업을 더 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갈렙이 받은 것은 일반적 기업의 분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 상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며 더 많은 기업을 요구합니다. 한 단면만 바라보면서 이기적인 생각이 발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원하는 만큼 지경을 줄 테니 “개척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자신이 큰 민족이라면 불평을 앞세우지 말고 분배받은 땅의 산지에 올라가서 개간하는 수고를 통해 땅을 확장시켜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공정함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한편에서 설득력을 가지는 자기중심은 공정함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기득권의 주장은 공정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말씀합니다. “개척하라”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라 공정함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6) 불평을 앞세우며 습관처럼 핑계 대는 불신앙은 어떤 영광도 그 손에 쥐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신앙의 습관을 길러내야 합니다
요셉 자손은 먹기 좋은 떡을 요구합니다. 자신들이 차지할 산지를 개척하여 지경을 넓히라는 그 명령에 불평하고, 핑계를 댑니다. 첫 번째는 불평입니다.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 못하고”(16절) 두 번째는 핑계입니다. “...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16절) 철제 무기를 탐승한 ‘철 병거’에 맞선다는 것은 죽음을 직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적으로, 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드보라가 있던 시대에 (삿 4:3)에 의하면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야빈 왕은 ‘철 병거’가 ‘구백 대’였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이때도 이스라엘은 ‘철 병거’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은 자손들이 가진 능력으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은혜로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고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런 현실 앞에 불평하고, 핑계를 앞세운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가나안의 어떤 곳도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는 만만한 곳은 없습니다. 다른 지파에게 허용된 땅이 먹음직스럽게 보일지라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보기에 만만해 보이는 먹기 좋은 떡도 막상 부딪히면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가나안 족속들입니다. 불평을 앞세우고, 핑계 대는 불신앙으로는 어떤 영광도 차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상황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움직여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맙시다!
(17~18) 불신자들의 능력에 주눅 들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조차 이미 이기게 하셨다는 신앙의 확신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사람의 능력을 최고로 발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피조물이 가지는 유한성 속에서는 항상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계 속에서 발해지는 능력 외에는 나올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능력을 발하면 달라집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이 그 가운데서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말씀합니다. 요셉의 족속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큰 민족’이고, ‘큰 권능’을 가졌다라고 말씀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가운데 보이는 ‘철 병거’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그들을 쫓아내라는 겁니다. 세상의 세력 앞에 주눅 들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이겨나가라고 합니다.
불신자들의 능력이 우리보다 탁월하게 보이는 것은 가상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현실에 대해서는 시인하면서 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시인하지 못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철 병거를 가지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18절) 불신자들의 능력에 주눅 들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조차 이미 이기게 하셨다라는 신앙의 확신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적용)
주변과 환경이 한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주변과 환경은 어떤 두려움의 대상도 되지 못합니다. 불평하고, 핑계를 앞세우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상황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불신의 강력한 세력이 두려움의 존재라 할지라도 이것조차 이미 이기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확신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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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황무지와 같은 척박한 땅에서도 옥토를 이루어 풍성한 열매의 결실을 맺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지금의 환경이 어렵고 힘들다할지라도 불평불만 하는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에게 주어진 이 환경을 위하여 기도하며
열심을 다하는 신앙이 되면 주변의 어떤 환경에도 두려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늘 불평 불만과 그 어떠한 핑계를 대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환경과 상황을 이겨내며
말씀의 권세로 물리치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부터 전도자 수련회를 합니다
준비과정부터 진행 되는 수련회의 모든 시간이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기쁜마음으로 잘 감당하여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며
서로가 은혜를 나누는 아름다운 시간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이 해결되고 처음에는 하나님께 감사했지만 금새 감사를 잊어버렸습니다.
전과 달라진 상황에 나의 처지를 세상의 기준에 빗대어 비교하고 비관하며 매일 마음 속으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다가 똑같이 힘든 일이 다시 일어났고, 그제서야 신앙으로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었으며 신앙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과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고 비관하며 불평, 불만만 늘어놓는 불신앙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며 신앙으로 이겨나가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Jsw126 작성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기업을 삼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게 분배 하였습니다.
갈렙은 가나안 땅 정보과 관련하여 특별한
언약을 주었습니다.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 기도와 언약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가나안 땅의 기업은 '언약의 산물' 입니다.400년 동안 종살이 할 것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언약의 실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기억 합니다.
하나니의 말씀을 믿으며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