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하나님의 성전 = 고후 6장 14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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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수) | 고후 6장 14~18절 | 하나님의 성전 |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6: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
(도입)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 받았던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에서 고린도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1년 반이란 사역을 통해 개척한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더욱 애착이 가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다른 지역의 교회에 비해 모든 면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지식이 풍족했으며, 영적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에베소 지역에서 듣습니다. 인맥을 중시하는 ‘분파’의 발생, 우상 제물의 문제, 은사에 따른 문제, 음행, 그리고 순회하는 거짓 교사들의 거짓된 교리에 휘둘림당하여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부활’을 부인하는 등 다양한 교리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여기에 바울을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든 것은 거짓 교사들의 거짓된 교리와 거짓된 가르침에 의한 바울의 사도권이 부인되는 문제였습니다.
노심초사 마게도냐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바울은 자신의 ‘눈물의 편지’를 받고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고, 순종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디도로부터 듣습니다. 바울은 큰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를 기록합니다. 여전히 거짓 교사들로 인한 문제에 대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들을 지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사력을 다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지도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잊지 말도록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값으로 사신 바 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신앙과 삶에 있어서 크게 세 가지 부분에 있어서 구별된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의 성전’의 모습을 가져야 할까요? 여기에 대해 바울은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요?
(14~16) 죄와는 단절을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해서는 신앙의 일치를 이루면서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백성 된 자의 자세를 분명하게 취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 번째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서로 하나의 개념을 가지도록 합니다. 첫 번째는 죄악 된 것으로부터 자신들을 단절하도록 합니다. 두 번째는 우상 숭배와 관련된 모든 문제로부터 자신들을 돌이켜 하나님의 백성 된 자의 진정한 모습을 가지도록 합니다. 그러나 우상 신전에 참여하는 것을 ‘시민의 의무’로 여기고 있었던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섞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과 여기에 대해 우리의 의지가 단호한 신앙의 결단 있는 자세를 취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15, 16절)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것은 그들과 얼굴도 마주하지 말라는 극단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와는 어떤 모습으로도 함께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바 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도 심판의 대상인 죄와 함께해서는 안 되며, 우상과 어떤 모습으로도 일치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마 26:28)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피’는 ‘언약의 피’며, ‘속죄의 피’입니다. 그리고 (벧전 1:18)과 (19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피’는 ‘구속의 피’로써 ‘보배로운 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로부터 우리를 구속해 내셨습니다. 비록 공중의 권세자에 의해 우리가 흑암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를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 갑주’(엡 6:11 이하)를 허락하셨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죄와는 단절을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해서는 신앙의 일치점을 이루어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백성 된 자의 자세를 분명하게 취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17) 혼탁함을 이루는 삶이 아니라 부정한 것은 어떤 관계 속에서도 멀리한다는 원칙으로 자신의 근본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16절)에서 (레 26:12)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별 된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말합니다. 그리고 (렘 31:1)의 말씀을 인용하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방인의 부정한 삶을 따라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어 (사 52:11)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악 된 세속으로부터 성별 된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말할 때 (사 52:11)의 말씀을 인용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사신 바 되었다”라는 사실에 그 답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속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벧전 2:9)는 “너희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제사장’입니다. 이런 고귀한 신분에 놓인 자가 어떻게 세속의 부정함 속에 자신을 둘 수 있겠습니까! 부정한 것에 ‘구속(잡을 구, 拘束)’ 당하는 자가 아니라 부정한 세상을 ‘구속(구원할 구, 救贖)’시켜야 할 자리에 있는 자입니다. 물에 사는 물고기도 물이 혼탁하면 그 물에서 살 수 없습니다. 더러운 것들로 뒤섞인 ‘혼탁함’은 조화로움으로 착각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정함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카르텔’을 형성하여 서로 나누어 먹는 정치의 형태, 이런 구조를 닮아가는 우리의 세상 방식, 하나님으로부터 반드시 그 값을 받게 됩니다. ‘혼탁함’은 조화가 아닙니다. 부정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이권이 있어도 그 관계로부터 자신을 멀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원칙이 되고, 이것이 자신의 근본이 되는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18)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기뻐할 뿐만 아니라 자녀 된 자로서 성부의 뜻에 순종하였던 성자처럼 순종의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나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니 구원의 백성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안에서 귀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세상은 차등을 주고, 등급을 나누지만 하나님은 동일 선상에서 이 모든 것들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우리의 대속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놓으셨던 겁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바울의 입을 통해 이 사실을 증거하게 합니다.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18절) (신 32:5)에 따르면 ‘하나님의 자녀’는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요 1:12)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어떤 현상 또는 우리의 자격이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리스도를 닮은 성전’이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기뻐할 뿐만 아니라 자녀 된 자로서 성자께서 성부의 뜻에 순종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의 성전’을 세상 방식으로 말하면 권위적이고, 지배적인 절대적 권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성전’이 생긴 가장 중요한 목적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열어주신 ‘은혜의 통로’가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나아올 때면 누구를 막론하고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죄인의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에 ‘속죄’라는 절차를 밟도록 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요 19:30)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으신 것만이 아니라 부활하심은 죄로 인한 저주의 모든 사슬을 끊어냄이 됩니다.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바 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죄와는 단절을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내가 원하는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으로 일치를 이루는 백성 된 자의 자세를 분명하게 취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과 삶에 있어서 혼탁함을 이루는 부정한 것은 어떤 관계 속에서도 멀리한다는 원칙으로 자신의 근본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상을 향해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맡은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해 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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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바티스성경아카데미님의 댓글
바티스성경아카데미 작성일
오늘의 한 날을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말씀이 곧 나의 생명의 양식이요
기도가 세상을 향햔 무기요 방패이며
말씀과 기도가 세상을 이기며 승리의 길로 인도하는 삶이기를 고백하며
오늘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나아갑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본문의 말씀처럼 세상은 서로 좋은게 좋은것이라고 의와 불법이 함께하며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우상과 결탁하여 우상과 함께하며
세상의 방법과 손을 잡고 세속의 모습들을 답습하며 살아가는 시대이며
거룩한 성전안에 세상의 것들로 성전의 거룩을 훼손시키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성전안에 거룩이 훼손되지 않도록
나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앞에 나의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삶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된 자의 자세를 분명하게 하기를 원하며
세상과 세속의 그 어떠한 것과도 결탁하지 않는 순수한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며
날마다의 삶이 감사와 순종의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나의 삶은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충성스런 성도의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로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Jsw126 작성일
고린도 지역에서 전도를 하던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 받았으며 바울은 2차 전도여행에서 고린도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1년 반 동안 사력을 통해 개척한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더욱 애착이 가는 교회 입니다.
바울은 잘못된 신앙을 가진 자들 은사에 따른 문제 음양.그리고 순회 하는거짓된 교사들이 있다는 소식을 에베소에서 듣게 됩니다.
죄와는 단절 하며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해 신앙의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사을 향해 빛이 되고,소금이 도어 맡은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해 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신앙.믿음으로 기도드립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어렸을 때 보았던 뉴스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함께 화합과 상생을 다짐하는 의미로 커다란 비빔밥을 만드는 모습이었는데 당시에는 그 장면이 평화로워 보였고 그게 옳은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장면과 상황이 얼마나 거짓되고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압니다. 살아계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인데 대체 무엇을 인정한다는 것인지…
갈수록 부정함과 우상의 요소가 교묘하게 우리의 삶에 스며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보정한 것들과, 우상의 요소와 함께하지 않으며 신앙을 지켜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