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소망의 새노래를 부르자 - 사 61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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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화) | 사 61장 1~3절 | 소망의 새노래를 부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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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의 도래는 역사 가운데 반드시 실현됩니다. 그러나 오신 메시아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 오실 메시아에 관한 내용은 웃길 수밖에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구원과 심판에 관한 진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죄로 인한 영적 흑암이 이런 것들을 깨닫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도래할 메시아와 관련한 일들을 예언합니다. 구원받을 자에게는 ‘은혜의 해’가, 심판받을 자에게는 ‘보복의 날’이 선포됩니다.
이사야는 장차 도래할 메시아와 메시아로 말미암아 성취될 구원과 심판에 대해 예언합니다. 이사야의 입을 통해 증거된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날이 가까이 올수록 영적 흑암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교회는 마귀의 세력들로부터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소망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1) 영의 양식에 굶주려 있는 세상의 영혼들에게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사역을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통해 감당하며 소망의 새 노래를 세상을 향해 부르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장차 도래할 메시아의 사역이 ‘기름부음 받은 자’의 사역이 될 것을 예언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대로 (마 2:2)에 의하면 ‘왕’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 7:16 이하)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선지자’로 사명을 감당했으며, (히 9:11)의 말씀처럼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대제사장’으로 십자가에서 대속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영적 흑암에 사로잡힌 세상은 자신의 모습이 죄악의 찌끼로 온통 더럽혀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세상을 향해 메시아가 옵니다. 세상에서 화려함을 가졌을지라도 죄악으로 더러워진 자신의 모습을 가슴 아파하는 애통함과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애통해하는 자’의 ‘상한 마음’을 치유합니다.
세상은 메시아를 통해 죽음의 결박에 묶인 포로와 같은 상태에서 ‘영생’이라는 ‘참 평강’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어둠의 권세 속에 짓눌려있던 무너진 삶이 복음을 통해 ‘참 평강’인 ‘에덴’을 누리게 됩니다. 영의 양식에 굶주려 있는 세상의 영혼들에게 성령의 사람으로 영의 양식을 나누는 사역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눅 6:20)에 의하면 세상의 불의한 물질을 취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준행하기를 더 기뻐하는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눈먼 자, 귀먹은 자, 앉은뱅이와 같은 가난한 자들이 있습니다. 영의 양식에 굶주려 있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인 소망의 새노래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권세가 있습니다.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복음으로 소망의 새 노래를 부르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죄에 대해서는 심판의 말씀으로, 구원의 백성에게는 해방의 날을 선포하며 소망의 새 노래를 부르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셔서 이룰 완성된 사역을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 번째는 ‘은혜의 해’가 선포될 것을 예언합니다. ‘은혜의 해’는 ‘희년’을 상징합니다. ‘희년’은 (레 25:8 이하)에 의하면 “칠 년이 일곱 번 지난 제 사십구년”에 해당하며 ‘오십 년 해’에 ‘희년’을 누리게 됩니다. ‘오십 년째’ 되는 해를 거룩하게 지키는 ‘희년’은 ‘노예를 해방시키고’, ‘빚을 탕감하고’, ‘기업을 돌려’줍니다. 전체적으로 ‘회복’과 ‘위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보복의 날’인 ‘심판’을 선포합니다. (계 20:11~15)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다시 오실 주님은 ‘구원의 주님’일 뿐만 아니라 ‘심판의 주님’으로 다가옵니다. (계 20:15)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이사야의 이 예언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죄와 사명 가운데 놓인 자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의 위로가 되어줍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소망과 희망을 잃어버린 세상을 향해 ‘은혜의 해’를 선포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담을 유혹하여 죄악의 사슬에 메이게 만들었던 마귀와 죄에 대해서는 ‘보복의 날’인 ‘심판’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분명한 길에 서야 할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양날의 검의 말씀’으로 자신을 먼저 무장시켜야 합니다. 구원과 심판에 대해 분명함을 증거해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심판의 말씀으로, 구원의 백성에게는 해방의 날을 선포하며 소망의 새 노래를 부르는 사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3)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그리고 세상의 영혼들을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는 소망의 새 노래를 부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룰 구원이 어떤 것이지 설명하면서 죄악의 상황을 최상의 솰롬으로 바꿀 것에 대해 세 가지를 예언합니다. 첫 번째는 “환관이 재를 대신”하게 됩니다. ‘재’는 불에 타다 남은 것으로 (욥 30:19)과 (겔 28:18)에 따르면 ‘비천함’과 ‘파별’을 상징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화관’은 머리에 쓰는 것으로 “사람을 영화롭게”하고, “빛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기쁨의 기름이 슬픔을 대신”합니다. “기쁨의 기름”은 원수로부터 당했던 슬픔인 모욕과 짓밟힘에 대해 완전한 반전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찬송의 옷이 근심을 대신”합니다. ‘찬송의 옷’은 신분의 회복을 나타냅니다.
“찬양의 옷이 근심을 대신한다”라는 것은 죄인의 신분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자로 신분이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절망적이고, 비참하게 무너진 자의 삶이 하나님으로 인해 회복되는 빛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죄악 속에 갇혀 포로 된 자와 같았던 우리를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가 세상 가운데 번성하도록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그리고 세상의 영혼들을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는 소망의 새 노래를 부르며 이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나타나는 물질의 풍요가 최고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못의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입은 우리는 이 시대 앞에 또 다른 이사야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영혼들을 깨워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인 우리는 왕과 같고, 제사장과 같고 선지자와 같은 권세를 가졌습니다. 구원에 따른 해방의 날과 심판을 선포하는 새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를 세상 가운데 심어야 합니다. 세상의 영혼들을 은혜의 자리로 인도하는 사명으로 소망의 새 노래를 부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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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o님의 댓글

세상의 물질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을 더 큰 기쁨으로
삼는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 내게 허락하신 왕과 선지자 제사장의 권세로 마귀를 대적하며
양날의 검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온전히 무장하여
세상을 향해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