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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5일) 영의 눈을 밝혀라 - 사 33 장 17 ~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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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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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7~24

영의 눈을 밝혀라


(도입)

히스기야가 남유다를 다스립니다. 남유다에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아버지였던 아하스 왕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 군대의 힘을 빌립니다. 중근동의 군주가 되기를 원했던 앗수르의 산헤립은 북이스라엘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산헤립은 동맹을 깨뜨리고 유다를 자국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진군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던지, 공의의 하나님은 그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도록 역사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힘의 세력인 앗수르를 선택한 남유다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하나님을 떠난 것처럼, 앗수르로 하여금 남유다와 동맹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콩’ 심은 대는 ‘콩’이 나도록 하셨으며, ‘팥’을 심은 대는 ‘팥’이 나는 법을 세우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육신의 눈으로 세상의 일을 대처했던 아버지 아하스 왕의 어리석은 길을 걷지 않도록 히스기야 왕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증거합니다.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영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7~19) 육신의 눈은 힘의 세력 앞에 놓인 두려움을 바라보지만 영의 눈은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바라보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두 가지의 기능을 가진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보는 기능을 가진 ‘시각적인 눈’이며, 또 다른 하나는 시각적인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죄는 ‘육신의 눈’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바라보며, 마치 ‘영의 눈’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사야는 진정한 왕은 누구인지 ‘영의 눈으로’ 그 사실을 바라보도록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보면’이라는 단어는 ‘육체의 눈’으로 살피는 것을 말하는 히브리어 ‘라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라는 히브리어 ‘하자’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영적인 눈’은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세상에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합니다. ‘육신의 눈’을 통해 하나님을 등지고, 앗수르를 택했던 남유다는 오히려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됩니다. 눈은 몸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마 6:22, 23)에서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눈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 보는 각도가 달라집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눈을 통해 ‘죄’로 말미암은 ‘욕망’을 늘 바라보도록 합니다. ‘영의 눈’을 밝혀야 합니다. “성령님! 나의 영안을 열어주십시오!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게 하옵소서!” ‘영의 눈’으로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바라보는 진정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20~21) 육신의 눈은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할 욕망의 노를 젓도록 만들지만 영의 눈은 영원한 복락을 향해 나아가도록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해서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라고 말합니다. ‘절기’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날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나아가는 날입니다. 그리고 ‘시온 성’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를 말합니다. 여기서도 이사야는 동일한 말을 합니다.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하나님을 향하여 영안이 열려 있는 자에게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것일까요?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런 소망을 지닌 영안이 열린 자들은 영광된 미래를 볼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영광된 미래’가 무엇을 말하는지 계속해서 말합니다. 첫 번째는 ‘옮겨지지 않을 장막’입니다. 자기 집이 없이 전세를 사는 사람은 언제든지 거처를 옮겨야만 하는 처지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옮겨지지 않을 장막’은 주인 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 말뚝이 영영히 뽑혀지지 아니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영안이 열린 자들’이 바라보는 영광된 미래는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지킴과 보호함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영의 눈이 밝아진 자는 (겔 47:12)의 풍성함을 통해 모든 생명이 소생함을 얻을 것이며, (계 22:2)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는 열두 가지의 열매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이런 주인공임을 영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22~24) 육신의 눈은 멸망의 심판으로, 영의 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승리의 잔치상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놓여있는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상태를 똑바로 알도록 ‘등불’을 밝혀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합니다. 먼저 ‘재판장’이 되어 정의와 공의를 통해 죄에 대해 어떻게 심판할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세우신 이’의 모습으로 자기 백성 앞에 나타납니다. 무엇이 ‘죄’인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구원하실 이’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탄은 유혹을 통해 우리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일깨워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진정한 왕’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승리의 잔치상을 이미 펼쳐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욕망과 욕심이라는 타락한 영으로 뒤덮인 ‘육신의 눈’으로는 이런 사실을 보지 못합니다. ‘욕망의 배’를 타고, ‘욕심의 노’를 젓는 사람이 도달하고 싶은 곳은 화려함을 자랑하던 욕망의 화신이었던 전설의 아틀란티스입니다. 그러나 물속에 잠긴 아틀란티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설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사탄은 타락한 인간의 ‘육신의 눈’을 향해 계속해서 신 기류를 던져 넣고 있습니다. 욕망을 향해 열심히 배를 몰고, 욕심의 노를 열심히 젓도록 합니다. 육신의 눈은 멸망의 심판으로, 영의 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승리의 잔치상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과 우리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는 우리를 괴롭히는 소음이 아닙니다. 육신의 눈으로 구원을 바라봤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 앞에 서있는 예수님을 자신들의 걸림돌로 생각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사탄은 승리의 쾌재를 부릅니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십자가를 다시 보십시오! 육신의 눈으로 십자가를 봤던 제자들은 패배를 봤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밝혀진 마가다락방의 제자들의 모습은 천국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순교하기를 기뻐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영의 눈을 밝혀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차려 놓은 ‘승리의 잔치상’을 바라봅시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영의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신앙
영의 눈으로 말씀 안에서 나의 삶을 바라보는 신앙
미혹의 영에 빠지지 않도록 영의 눈으로
날마다 나의 신앙을 점검하여야겠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어둡고 타락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눈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귀로 세상을 듣는 것이 아니라
영의 눈을 밝혀 하나님 안에서 날마다 나의 삶을 점검하고
회개하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러나 죄성을 가진 나약한 육신이라
알게 모르게 육신의 눈과 귀가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모습을 날마다 나를 점검하여
바른 신앙안에 나를 세우고
영의 눈을 밝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승리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영의 눈으로 바라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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