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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6일) 에덴동산의 걸음을 걸어가자 - 사 35 장 5 ~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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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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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10

에덴동산의 걸음을 걸어가자


(도입)

종말의 대 심판이 있는 그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에덴동산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선민들에게 활짝 열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증언은 사도 요한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 약 800년 앞서 선지자로 활동했던 이사야를 통해 이 사실을 이미 알리셨습니다. 이사야는 장차 도래할 메시아 왕국에서 펼쳐질 영광스러운 모습이 어떠한지 예언합니다. 선민의 환희와 복락이 환상이나 상상이 아니라 사실로 펼쳐질 것을 증거합니다. 

    비록 삶이 찌들어 바벨론에 포로 된 자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형편이 언제 나아질지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에덴동산의 걸음을 걷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을 한탄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에덴동산을 향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는 에덴동산을 향해 어떤 걸음을 이 땅에서 걸어가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5~7) 소망을 잃어버린 세상을 희망으로, 메마른 가지와도 같은 세상이 생명으로 응답받도록 자신이 가진 하늘의 보화를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걸음을 걸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보화든, 하늘의 보화든, 보화를 가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히 성립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 보화를 주셔야 합니다. (삼상 2:7)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보화를 가지기 위해서는 (마 13:44)의 말씀처럼 보화를 차지하기 위한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메시아를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가리켜 이사야는 ‘맹인’이요, ‘못 듣는 자’요, 다리를 ‘저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가리켜 ‘뜨거운 사막’이요, ‘메마른 땅’이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소망’과 ‘희망’을 잃어버리고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그런 상태를 알았을지라도 이것을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지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길이 없어서 자포자기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세상을 누가 회복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눅 16:23)에 의하면 한 부자가 죽어서 ‘낙원’이 아니라 ‘음부’에 갑니다. 그는 그곳에서 참을 수 없는 지옥의 고통을 맛봅니다. 지옥의 이 고통을 자신의 다섯 형제에게 알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때 주님은 누구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려줄 것인지 (눅 16:29)을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지니라!” 우리가 가진 보화를 사용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보화를 쌓길 원합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세와 선지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리의 말씀인 보화’를, ‘진리의 복음인 보화’를 소망을 잃어버린 세상을 향해 쏟아붓는 에덴동산의 걸음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영광을 높임과 동시에 자신의 하늘의 보화를 더 많이 쌓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8~9) 다툼이 만연한 죄악된 세상을 거룩한 터로 만들어가기 위해 십자가 신앙으로 세상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에덴동산의 걸음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한번 돌이켜 봅시다. 얼마나 사나운 모습들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마치 굶주린 성난 사자와 같고,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사나운 들짐승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인간의 죄입니다. 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사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갑니다. 이사야는 예언의 말씀을 통해 메시아로 말미암아 구속함의 ‘인침을 받은 자’는 ‘거룩한 길’의 대로인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에 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알지 못하고 마치 마약중독에 걸린 자처럼 영적 흑암의 뒷골목이 주는 타락의 맛에 빠져 있는 ‘우매한 행인’과 같은 자들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 길’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예언합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죄와 사망’을 이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죗값을 완전하게 대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롬 8:31~39)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누가 감히 대적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세상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터를 이루어가며 다툼을 일삼습니다. 서로를 죽이는 전쟁과 환각 상태에 빠뜨리는 마약,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수를 만들어갑니다. 마귀의 방법이 얼마나 교묘한지 알고도 막지 못하고, 몰라서도 막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등불을 들어야 합니다. 죄를 이긴 십자가, 하나님의 사랑이 새겨진 십자가를 들어야 세상이 바로 세워집니다. 그래야 세상을 거룩한 터로 만들 수 있습니다.


(10) 슬픔과 탄식이 끊이질 않는 세상을 향해 새 하늘과 새 땅의 영혼들이 부를 보혈의 찬양을 흘려보내며 악한 영의 다스림으로부터 해방을 이끌어내는 에덴동산의 길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구속받은 선민이 에덴동산으로 귀환할 때 그들의 모습은 기뻐 뛰며, 찬양하는 가운데 귀환하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이라는 속량함을 받은 그가 ‘시온’이라 일컫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에덴동산’의 귀환 길에 들어섰을 때 그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하겠습니까! 벅찬 감격,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감정, 그 입에서는 슬픔과 탄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찬양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찬양은 최후의 승리를 거둔 자의 찬양이기에 기쁨이 표현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영혼들이 부를 보혈이 묻은 찬양으로 슬픔과 탄식이 끊이지 않는 세상을 희망과 기쁨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나의 승리를 노래하는 승전가가 아니라 순종의 결과가 묻어 있는 보혈의 찬양, 희생의 뜻을 이룬 주님을 기억하는 보혈의 찬양으로 세상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보혈의 찬양은 사람의 감성만을 자극하는 세상의 노래와 다릅니다. 시온에 이르게 하는 주님을 경배하는 찬양으로 타락하고, 음란한 세상의 문화를 해방시키는 에덴동산의 길을 걸어가는 십자가 군병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에덴동산을 향한 걸음은 불완전한 신앙으로는 걸을 수 없는 걸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구원의 확신을 세상 가운데 나누고, 증거하는 에덴동산의 걸음에는 기쁨이 있고, 찬양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원이라는 하늘의 보화를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에덴동산의 걸음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유를 바라보면서 즐거워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에덴동산의 걸음을 걷는 십자가 군병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는 걸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돌아보면 인간의 죄성이 만연하여
죄악이 극에 달하여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킬것 같은
무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앞으로는 더 악한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 때
나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불의와 부정과 시기와 다툼이 만연한 죄악된 세상을
십자가의 신앙으로 세상을 바르게 세워 나가는 일에
쓰임받도록 나의 신앙을 바르게 세워
에덴동산의 걸음을 걷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며 지금 현재의 고난쯤은 아무것도 아니며
금방 지나갈 것을 믿고 오늘은 더 하나님께 감사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항상 기뻐합니다

맹인과 귀먹은 자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여 에덴동산의
완전한 기쁨을 함께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열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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