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앞장 세우는 신앙 - 눅 22장 47 ~ 5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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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수) | 눅 22장 47~53절 | 앞장 세우는 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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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집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이었던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오릅니다. 그곳에서 기도하고 계시던 예수님을 한 제자가 찾아옵니다. 그는 가룟 유다였습니다. 유다는 자신과 함께하는 무리들을 앞장서서 예수님께로 나아옵니다. 무슨 일이든 뒤에 따르는 자가 있는가 하면, 앞장서서 그 무리를 이끌어가는 자가 있습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앞장서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삶의 여정 앞에 놓인 세상에 대해 무엇을 앞장 세워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어떤 신앙을 앞세우며, 종말의 때를 향해 영적 전투를 치루는 성도가 되어야 할까요?
(47~48) 세속화된 것에 눈이 멀어 자신의 뜻을 이루는 일에 앞장서는 걸음이 되지 않도록 주님의 가슴으로 주님의 때를 위해 그리고 참된 신앙의 가치관을 앞장세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있었던 만찬 식사가 마치기도 전에 가룟 유다는 그 자리를 떠납니다. (요 13:29)에 의하면 제자들은 그가 유월절에 쓸 물건을 사러 가는 줄로 생각합니다. 어떤 제자는 회계를 맡고 있는 유다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걸음이 예수를 파는 것에 앞장서는 걸음이었다는 것을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유다가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 악한 무리를 이끌고 나타납니다.
가룟 유다는 ‘사랑’과 ‘존경’과 ‘우정’을 나타내는 입맞춤을 예수를 배반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마 26:48)과 (막 14:44)에 따르면, 예수를 ‘은 삼십’에 넘겨 줄 것을 종교지도자들과 약속한 가룟 유다는 자신이 입맞춤을 하는 그 사람을 붙잡도록 로마의 군사와 성전의 경비들에게 알려줍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입을 맞추려는 가룟 유다에게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말씀합니다. 가룟 유다는 우리의 죄를 대속할 구세주를 따르는 걸음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 시킬 마카비와 같은 메시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능력을 가진 예수를 따르는 걸음이었습니다. 이런 기대가 무너지자 그는 예수를 버리는 길을 택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돌이켜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종교에 매진하는 세속화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와 같이 세속화된 종교인의 모습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의 가슴으로 주님의 때를 위해 참된 신앙의 가치관을 앞장세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49~51) 그릇된 판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역과 사명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신앙의 가치관으로 자신을 앞장세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일에 앞장섰던 가룟 유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지 못하고 육신의 혈기를 앞세운 베드로의 행동은 또 다른 모순을 낳습니다.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베드로의 다음 행동은 예수님의 답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손에는 어느덧 ‘칼’이 쥐어져 있었고, 그 ‘칼’은 당시 대제사장의 종이었던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립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셨을까요? (마 26:52), 베드로를 향해 칭찬이 아니라 책망합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그리고 (눅 22:51)은 말합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말고’의 귀를 회복시켜줍니다.
‘그릇된 판단’에 세워진 자는 (사 19:13)의 말씀처럼 ‘어리석음’과 ‘미혹’에 빠져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내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나의 성급한 판단으로 하나님의 때를 훼방하는 모습이 되면 안 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때를 인내할 줄 아는 신앙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나의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른 영적 분별력과 함께 ‘천국’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소망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자신에게 주어진 생업을 통해 주님이 속히 오실 그날을 ‘인내하며 준비하고’, ‘부지런히 준비하며’, ‘충성되이 준비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 일에 앞장서는 신앙의 자세로 하나님의 영광을 더 높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52~53) 세상이 강도의 소굴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며 주님께서 명하신 지상대위임령을 십자가의 신앙을 앞장세워 흑암의 세력을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말고’의 귀를 회복시킨 예수님께서 불법을 앞세우고 있는 무리들을 질책합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체포를 당하시면서 사탄의 세력이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피력합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이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피력합니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예수님께서 불법을 앞세운 무리들에게 붙잡히고, 앞으로 있을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이 그들보다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붙잡히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심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그 값’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강도의 소굴과 같은 세상에서 그 값을 치룬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마귀의 승리가 아니라 주님의 승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이루어가는 ‘지상대위임령’ 앞에 우리는 영적인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강도의 소굴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권세에 의해 오늘도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십자가의 신앙을 앞장세워 흑암의 세력을 이겨나가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속히 도래할 주님의 재림의 때를 바라보며 주님께서 명령하신 ‘지상대위임령’을 십자가 신앙을 앞장세워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신앙에는 분명한 판단과 행동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판단’과 ‘행동’의 적극성이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판단’과 ‘그 행동’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맺혀지는 결론의 열매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이신 것만이 아니라 고난의 길을 걷습니다. 주님의 심장과 주님의 가슴으로 그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때를 충성된 걸음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신앙을 앞장세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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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나는 세상에 대해 무엇을 앞장 세워 나가는 삶이 되어야 할까?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믿는 색깔을 분명히 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불투명하고 애매한 신앙이 아니라
어느장소, 어디서든지 나는 나의 신앙을 분명히 하여
나는 하나님을 믿는 주의 성도임을
확실히 나타내어 세상을 향해
말씀의 무기를 들고 영적 전투를 치루는
나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는 모습과
말고의 귀를 베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리석고 그릇된 모습과
주님을 배반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최선을 다하여
나를 신앙의 가치관으로 확실하게
앞장세워나가기를 바라며
주님께서 명하신 지상대위임령을 감당하여
죄악된 세상을 이겨내가는
충성된 나의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심장과 주님의 가슴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나는 하나님의 때를 충성된 걸음으로
걸어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가롯 유다는 예수님이 자신이 바라는 능력있는 메시아가
아님을 깨닫고 결국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기며 배신하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일에 앞장 섰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비추어 보니 나 역시 건강과 물질을 추구하며
내 자신이 앞장서며 살아온 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하며
주님께서 진정한 나의 주인 되어 주시길 간구하며
참 빛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성숙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