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신앙으로 등불을 밝혀라 - 눅 17장 20 ~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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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화) | 눅 17장 20~25절 | 신앙으로 등불을 밝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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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대속을 이루시기 전에 공생애 사역을 펼칩니다. 병든 자, 귀신 들린 자들을 회복시킵니다. 그리고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밝혀나갑니다. 그러나 유대 공회는 이런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공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세력에 대항하는 반대편에 서 있는 자 또는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자로 여기며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공격합니다. 이때 공회가 사용했던 무기는 유대 공동체가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안식일에 관한 규례와 정결 예식법이었습니다. 신앙을 자신들의 권력 기반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거짓된 신앙으로 사람들을 얽어맵니다. 그 중심에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죄악된 세상 가운데 악한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거짓된 이단의 무리는 마치 자신들이 구세주인 것처럼 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향해 등불을 들어야 합니다. 미쳐가고 있는 세상을 일깨우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신앙으로 등불을 밝혀야 할까요?
(20~21)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이미 믿음으로 우리 가운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신앙의 등불로 세상을 밝히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베레아 지역에서 사역이 정점에 이를 때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 질문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로마 정부로부터 피할 길이 없도록 올무로 묶어가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유대 사회의 일반적인 견해는 로마 정부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이 질문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혁명의 동기에 대한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도록 유도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유대 공회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빌미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어떤 답을 했을까요? ‘하나님 나라’는 권력과 다툼 또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믿음이라는 신앙으로 세워지는 나라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막 4:11)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자들에게는 알 수 없는 나라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허황된 해석을 하기도 하고 엉뚱한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단과 세속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절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방인’으로 삼으셨으며 이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계시해 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죄 사함이 성립되지 않고는 어떤 방법으로도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우리 가운데 믿음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는 신앙의 등불로 세상을 밝히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2~24) 미혹의 영에 현혹당하여 소문을 쫓아가고 신비한 것을 쫓아가는 어리석음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자신을 무장시키고 그 신앙의 등불로 세상을 밝혀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치 또는 군사적인 것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가운데 임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경고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진리를 미혹할 영에 대해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세워질 ‘하나님 나라’가 온전하지 못하도록 마귀의 세력이 강력하게 역사할 것을 경고합니다. (계 13:11~14절)에 의하면 마귀는 이단의 세력뿐 아니라 강력한 세력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큰 이적을 행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재현하듯이 상황을 만들어가는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미혹 가운데 넘어짐을 당하게 됩니다. 메시아의 재림의 날은 하늘에서 번개가 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공개적이고, 순식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종말의 때는 미혹하는 자가 크게 세 가지의 유형으로 그 모습을 나타냅니다. 첫 번째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계 12:4)에 의하면 마귀가 천사의 ‘삼분의 일’을 속인 것 또한 이 무기였습니다. 두 번째는 (요이 1:7)의 말씀처럼 ‘적그리스도’의 세력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육체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거짓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에 대표적으로 해당되는 세력이 이단들입니다. 헛된 소문을 쫓아가고, 신비한 것을 쫓아가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자신을 무장시키고 그 신앙의 등불로 세상을 밝혀나가는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25)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는 십자가 신앙으로 등불을 밝혀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깨뜨리고 영적 흑암을 거둬내는 사역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이 자신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속에 따른 고난의 길을 걷기 위한 것임을 밝힙니다. 죄 사함과 대속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는 완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바리새인들뿐 아니라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유대인의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 때문에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는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지, 이것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었다는 것에 대해 알려 하지 않습니다.
이단의 세력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대속과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죄 사함의 십자가와 부활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실패한 메시아의 모형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는 십자가 신앙으로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흑암에 사로잡힌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십자가 신앙’으로 깨뜨려야 합니다. 이 사명과 사역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내가 그 당사자가 되어야 하고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구원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주님의 재림은 곧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그날은 번개가 하늘에서 임하듯이 모든 사람이 인식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순간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날을 위해 세워진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가치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떠나서는 우리는 어떤 가치도 발할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지라도 ‘십자가 신앙’을 던져버린 인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합니다. 세상의 헛되고 어리석음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자신을 무장시키고 그 신앙의 등불로 세상을 밝혀나가야 합니다. 십자가로 무장한 ‘신앙의 등불’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 되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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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만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이 성립되지 않으면
열리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모든 것이 허상이라 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이 땅에서 미혹의 영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나를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시켜야겠습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에는
영적 분별력이 없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거짓 그리스도의
이단들에게 속임을 당하여 어리석은 길을 걸어가게 되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말씀으로 무장 되지
않으면 악한 마귀의 세력, 미혹의 영에게
빠져들기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무장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영적 군사가 되어
영적 흑암을 거둬내는 사역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세상의 헛되고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나를 무장 시키고
십자가로 무장한 신앙의 등불을 들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 그 모든 고통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주님이 내게 부어주신 마음은 이러했다
나는 죽을 것같이 고통스러웠다.
내가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피가 거꾸로 솟고
살이 다 찢겨나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었다.
나는 완전히 혼자였고 버려진 것 같았다.
그곳에는 나밖에 없었다. 누구도 내 편이 되거나,
내 고통을 이해하거나 도와줄 수 없었다.
홀로 감내하고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다 내려놓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고통을 이겨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
너희를 향한 끝없는 사랑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배반하고 욕하고 떠났다.
내 온몸이 갈기 갈기 찢겨 나갔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모든 걸 포기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며
나 자신을 포기했다.
나의 사랑아,
너만이라도 그 사랑을, 내가 어떻게
그 고통을 견뎌냈는지를 기억해다오.
십자가를 무겁게 생각해다오.
십자가 고통의 무게를 가볍게 보지 말아다오.
나는 승리했고, 그 십자가가
너를 구원했다는 것을 기억해다오.
나의 십자가가 있기에 너희가 있고,
나의 십자가가 있기에 구원의 통로가 열렸고,
나의 십자가가 있기에 너희에게 상급이 있고,
나의 십자가가 있기에 천국 문이 열려
너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누구든 나의 십자가 사랑과 고통의 무게를 깨닫기 위해
십자가 앞으로 절절한 마음을 가지고 나아오거라.
coco님의 댓글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말씀해주셨다 아들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으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나의 딸아,
너에게 생명보다 귀한 딸이 있지?
그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사랑스러운 네 딸 말이다.
네 딸이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아프면 너는 어떻게 하니?
안절부절못하며 병원으로 달려가지. 나도 똑같단다.
나의 딸아,
나의 아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내 마음을 그 누가 알겠느냐?
나는 내 모든 것이 멈추고 터지는 것 같았고
차마 나의 아들을 바라볼 수 없었단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단다. 너희들의 행실을 보며
나는 견딜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었단다.
나의 아들을 살릴 수도,
그렇다고 내가 창조한 너희를 죽일 수도 없었단다.
나는 그저 나의 아들의 피가 터지고
살이 찢기는 고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단다.
나의 딸아,
너는 너의 사랑하는 딸을 내어줄 수 있겠니?
십자가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너때문에, 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나는 내 아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