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

(11월 23일)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 눅 7장 11 ~ 17절

페이지 정보

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23()

711~17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

 

(도입)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죽은 자를 살리신 세 번의 사건이 있습니다. ‘나사로 사건’, ‘회당장 야이로의 딸’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나인성’에 있는 ‘한 과부의 아들을 살린 사건’입니다. 이 세 사건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던 것은 예수님께서 이들의 죽음에 대해 깊이 동정하셨고, 신적 권능을 베풀어주셔서 이들이 소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사랑과 자비의 은혜를 베푸실 때 우리의 슬픔에 대해, 우리의 아픔에 대해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고통을 함께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어떻게 돌아보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고 계실까요?


(11~13)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며 친히 위로와 언덕이 되어주시는 주님으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값을 ‘공생애 사역’을 통해 이루어갑니다. 이때 극도의 슬픔에 잠긴 ‘한 행렬’을 목격합니다. 죽음을 맞이한 청년은 소외 계층이었던 한 과부의 ‘한 줄기 등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누가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이 장면을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도 동일하게 목격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반응한 것은 그 무리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레 21:1)에 따르면, ‘죽은 자’를 만지는 것은 ‘스스로를 더럽히는 행위’가 됩니다. 따라서 ‘축복’의 반대쪽을 향하는 ‘죽음’에 스스로 몸을 더럽힐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행렬’을 하고 있는 ‘한 과부’에게 다가갑니다.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 슬퍼하는 과부를 예수님께서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 과부를 불쌍히 여기며, 슬픔을 함께 합니다. “울지 말라!”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과 관계가 없으면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며, 친히 위로하기 위해 사람들이 외면하는 곳까지 친히 찾아오는 분입니다. 그리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줍니다. 이런 주님이 오늘도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4~15)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사라진 희망에 대해 외면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회복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켜 주시는 주님입니다


(민 19:11)과 (16절)의 ‘정결법’에 따르면, 죽음은 죄의 결론이기 때문에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부정한 모습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때문에 ‘죽음’을 접촉하는 자는 모든 것이 부정함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축제’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아셨던 예수님께서 ‘죽음의 행렬’을 향해 나아갑니다. 급기야 어떤 경우도 해서는 안 되는 부정해지는 일을 벌입니다. 죽은 시체의 ‘관’에 손을 댑니다.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관속’에 있는 청년의 시신을 향해 명합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누가는 놀라운 사실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 청년이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사라진 희망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함께 안타까워하고, 함께 인격적으로 가슴 아파합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외면하고, 회피하는 ‘그 절망의 관’에 손을 댑니다. 그리고 ‘생사’뿐만 아니라 ‘화복’을 주관하시는 예수님께서 명령합니다. “회복될지어다!” 죽은 과부의 아들이 살아나더라도 그가 말을 하지 못한다든지, 살아났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장애를 가지게 된다면 이것은 소생해서 살아가는 동안 또 다른 고통을 유발하며, 또 다른 탄식 속에 살아가게 되는 불행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이라는 이 말씀은 “그 청년의 소생은 완전한 회복의 소생이었습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사라진 희망에 대해 외면하지 않습니다. 회복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켜 주시는 주님입니다. 이런 주님께서 나와 인격적으로 함께하고 계십니다.


(16~17)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불가능이라고 단념한 꺼져버린 등불과 같은 나의 무너진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회복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나를 하나님의 큰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해 보이는 주님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무리들과 슬픔의 행렬을 뒤따랐던 무리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제3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세 분류의 무리들은 ‘관을 만지는’ 상식을 벗어난 예수님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시야를 집중합니다. 그들의 눈에 상상할 없는 일이 목격됩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 말씀에 청년이 살아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들의 입에서 함성이 터집니다.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그리고 또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유대인들은 (말 4:5)의 예언의 말씀을 따라 자신들을 ‘두려운 날’로부터 인도해낼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큰 선지자’가 올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큰 선지자’가 슬픔과 절망 속에 놓인 룻에게 소망과 희망을 준 것처럼 자신들을 회복시켜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예언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불가능이라고 단념한 꺼져버린 등불과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무너진 상황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회복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큰 사람’인 것을 증거해 보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신앙 안에 머물러 있는 복 있는 자리에 자신을 묶어 놓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눈물과 괴로움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립 서비스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와 ‘회복’을 주관하시는 ‘권능’으로 회복시켜 위로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 하나님의 큰 사람이었구나!”라는 사실에 대한 증인이 되도록 만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판단할 때 사라진 소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가능하지 못한 일이 없습니다. ‘자기 백성’ 삼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여인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여인의 절망을 회복시키는 위로로 응답하셨던 것처럼, 예수 안에서 ‘자기 백성’ 삼으신 우리를 전능하신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된 ‘성도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는 ‘그리스도인’,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자기 백성’ 삼으신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전능의 하나님으로, 외면하지 않으시는 위로의 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예수님은 언제나 나와 동행하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나의 등뒤에 서 계시며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살다보면 많은 일들이 생기고
걱정과 근심과 환난과 풍파가 닥쳐오기도 하지만
언제나 나의 말에 귀기울이시고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나를 '자기 백성' 삼아주시어
오직 예수 안에서 '성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길과 방향을 알려주시고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와 함께 하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진님의 댓글

profile_image 성진 작성일

회복시키시는 주님입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는 주님이 나를 아시고 나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잊은 채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을 점검해 봅니다.

고통을 외면치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오늘도 고통받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 권능으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깊이 아시고
그 고통에 동참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온전히 회복시키시는 예수님
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세상사람들에게 증거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성경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는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성경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FAMILY

CONTACT

  • 주소 : (48054)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반로 113-15(재송2동 1060-2)
  • TEL : 051-783-9191 / FAX : 051-781-5245
  • Copyright © 2023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
  • 카카오뱅크 3333-28-3057838 예금주 : 바티스
  • 우체국 601252-02-199260 (황영선-바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