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이와 같이 하라- 눅 10장 25 ~ 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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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수) | 눅 10장 25~37절 | 이와 같이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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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나이가 30이 되었을 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의 메시아임을 유대 땅을 중심으로 세상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공생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세주인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던 유일한 족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대로 오셨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현수막을 걸고 “대환영!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를 외쳤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향해 돌을 들었고,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린다고 생각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는지 머리를 싸맵니다. 이런 가운데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공개석상에서 공격적인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누가 내 이웃입니까?” 예수님은 그 답을 성경을 통해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들도 이와 같이 하여라!”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떤 답을 통해 ‘이와 같이 하여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25~28)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의 열매가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인생 최대의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율법사의 물음에 직답을 주기보다 역설적인 것으로 대답합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느냐?” 예수님의 대답에는 두 가지의 반문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너는 영생에 관해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것을 나에게 묻느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 “너는 예배 때마다 어떤 율법을 외우고 있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종합적으로 말씀드리면,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더냐?”라는 반문입니다.
성경에 능통하며, 성경을 가르치는 스승이었던 율법사는 (신 6:5)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께 자랑하듯이 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우리는 율법사가 예수님을 향해 사용한 ‘사랑하고, 사랑하라’라는 뜻을 가진 ‘아가페세이스’라는 단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에 대한 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은 사탄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영생에 이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간절할 수밖에 없으며, 이웃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9~32) 말씀의 형태만 쫓아가는 종교행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을 향해 이루어가는 산 예배자가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핵심을 알지 못한 율법사는 자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또 다시 질문합니다. 율법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웃’을 ‘동족’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자신은 동족에 대해 충분히 사랑을 베푼 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율법사는 자신이 살고 있던 유대 사회의 동족만을 ‘이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를 향해 예수님께서 ‘제사장’과 ‘레위인’과 ‘어떤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나는 네가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라는 답을 줍니다. “너는 율법을 가르치면서, 겉으로는 마치 영생에 이른 자처럼 말하고 있지만 너는 아니야!”라고 대답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레 21:11)과 (민 8:6)의 말씀을 떠올리며 정결 예식법에 따라 강도 만난 자를 회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는 종교행위자들이었음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정결법을 핑계 삼아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기를 꺼리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자신에게 끼칠 피해를 먼저 계산한 자들이었다.” 가짜는 자기의 온갖 것들을 다 계산합니다. 말씀의 형태만 쫓아가는 종교행위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을 통해 이루어가는 산 예배자가 되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33~37) 세상을 주님의 가슴으로 사랑하고, 세상을 치유하는 일에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기를 기뻐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비유로 등장시킨 사람은 유대인들에 의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정결법’을 적용하며,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장사를 통해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은 돈과 같았습니다. 비유에 등장한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가장 바쁜 사람일까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리고 길에 부상을 당해 쓰러진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 아니라 유대인이었습니다. 동족으로부터 사랑받아야 할 바로! 그 이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를 돌봐야 할 사람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먼저 생각하고 그를 피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으로부터 ‘부정한 자’라고 취급을 받았던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의 바쁜 시간과 자신의 귀중한 물질을 그 사람을 살리는 일에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외우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주님의 마음을 닮은 자입니까?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 내가 먼저 고통당하는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사탄이라는 강도를 만나 신음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들을 주님의 가슴으로 사랑하며, 이들을 치유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를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한 율법사의 ‘영생’에 관한 질문에 대해 예수님의 역설적인 질문은 ‘영생’은 사람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이웃이 누구이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영생을 얻은 자’는 신앙 또한 하나님을 닮은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 모습이 드러난다라고 말씀합니다. ‘영생’에 이른 자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주님의 가슴으로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라!”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영생이라는 큰 복을 받은 우리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일에 헌신적으로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라!” 주님의 음성에 기쁨으로 반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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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지켜 준행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원하며
말씀을 지식적으로 알고 그 형태만 쫒는 자가 되지말고
하나님 말씀을 향해 오늘도 나아가는
산 예배자가 되어
세상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기도하며
치유하는 일에 쓰임받는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삶의 무게를 조금만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위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오늘도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하나님 나라 위해 나의 삶이 예배자의 삶이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은 자로서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신앙의 자리에
헌신적으로 쓰임 받는 날이 되기를 원하며
주님의 음성에 기쁨으로 즉각 반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하자님의 댓글

세상은 더 각박하고 교회안에서는 이웃보다는 나를 더 사랑하고 남의 시선에 더 집중하는 세상속에 사는 종교인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혹시나 나도 그렇지 않는지 생각해 봅니닺
하나님말씀 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면서 내 이웃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내 신앙을 다시한번 점검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떤자인가?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것이 아니라 내 삶에 말씀을 실천하면 내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참된 그리스도인거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가치있게 쓰임받는 사람으로 준비된 자가 되게 하여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속에서 내 가정과 내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본이 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행복한사람님의 댓글의 댓글

아하자 하나님 나라위해서 쓰임받기를 소망하는
아하자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coco님의 댓글

종교적으로 교회 출석과 주일헌금 십일조를 실천한다고 해서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며 진정한 예배는
삶을 통해 드려지기를 기도합니다
핑계를 대기보다 내가 먼저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며
복음의 일꾼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길 원하며
그러한 삶을 기쁨으로 사명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행복한사람님의 댓글의 댓글

coco 복음의 일꾼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coco님을 응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