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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구원의 문 - 눅 13장 22 ~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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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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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2~30

구원의 문

 

(도입)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민족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처럼 혈통으로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할례의 흔적을 가진 민족입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직접 받은 민족입니다. 외형적으로 정말 자랑할 만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자신들을 가리켜 구원받은 민족이며,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을 이방인라고 부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요나’의 사건도 이런 문제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작 구원에 관하여 열쇠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혈통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의 생각처럼 인간의 외적인 요소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의 문은 어떤 자에게는 열려있는 문으로, 어떤 자에게는 닫혀 있는 문으로 그 모습이 나타납니다. 구원의 문은 어떤 자에게 닫혀 있고, 어떤 자에게 열린 문으로 나타날까요?


(22~24) 구원의 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애쓰는 자에게만 열려있는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하며 구원받을 자의 수에 관하여 질문을 합니다. “주여 구원을 받을 자가 적으니이까?” 당시 전해져 오던 유대 문서에 의하면 ‘구원받을 자가 멸망 받을 자보다 적을 것’이라는 기록이 외경 ‘에스드라 2서’ 등을 비롯해 여러 곳에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유대인의 전통적인 구원관을 통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반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문을 ‘좁은 문’으로 비유하면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합니다. “힘쓰라!” 여기에는 중요한 사실이 복선을 깔고 있었습니다. ‘힘쓰라!’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힘쓰라!’ 참회와 중생의 삶을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문은 결코 좁은 문이 아닙니다. 참회를 통한 회개와 중생의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는 구원의 문이 너무나도 큰 문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자 즉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마 19:24)의 말씀처럼 낙타 앞에 놓인 바늘구멍과 같습니다. 욕망과 죄의 짐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를 힘쓰고, 애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회개의 눈물로 나를 씻어내는 자에게 구원의 문은 활짝 열린 ‘대문’입니다.


(25~27) 구원의 문은 외형적인 모습과 주님을 아는 지식과 같은 외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자에게는 닫혀 있는 문으로 나타납니다


성에는 성문이 있습니다. 공항에는 출입국 문이 있습니다. 문은 출입에 대한 것을 관리할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구원의 문은 천국 잔치를 위한 관문입니다. 천국 잔치를 배설하였을 때 제때 들어가지 못한 자에게는 그 문은 ‘은혜의 문’이 아니라 닫힌 ‘통제의 문’이 됩니다. 잔치가 시작되기 전에 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면 잔치를 알리는 그 시간, 문은 닫혀버립니다. 마치 홍수 직전 방주의 문이 닫힘과 같습니다. 천국 잔치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시와 때는 하나님만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마 24:30)에 의하면 징조를 통하여 우리는 그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천국 잔치의 문이 닫히고 난 뒤 일어난 때늦은 후회와 회개는 헛된 수고가 됩니다. 그런 자를 향하여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구원의 문은 외형적인 모습과 주님을 아는 지식과 같은 외형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자에게는 닫혀 있는 문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의 방심은 금물입니다. 신앙은 영적 전쟁입니다. (마 25장)의 슬기 있는 다섯 처녀의 모습처럼 주님이 오실 그날을 언제나 준비하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기념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철저히 주님을 쫓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날 천국 잔치가 열리는 그날 주님께서는 문 앞까지 나오셔서 이러한 자를 안아 줍니다. “수고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28~30) 구원의 문은 신앙의 연수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열리는 문입니다


비록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행악한 자들은 천국 잔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으로 자신들은 천국 백성임을 자처했지만 ‘웃기지 소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란! 과거 예수를 알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고 살아온 자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회개함으로 주님께 돌아온 ‘탕자’와도 같은 자입니다. 그러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란! 누구를 말할까요? 자신은 절대로 구원의 반열에서 멀어지지 않을 것을 자신했던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자신을 가리켜 신앙적으로 ‘먼저 된 자’인 것처럼 여기는 자는 혈통적으로 선민임을 자랑하는 유대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영적 교만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영적 교만은 사탄이 뿌려놓은 씨앗입니다. 성도들의 최고의 적입니다. 구원의 문은 신앙의 연수나 직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 마음을 품고, 날마다 말씀을 통한 삶의 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칭찬받으려고 하는 인위적인 신앙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천국은 없다라고 말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리켜 “나는 스스로 구원을 얻었다”라고 자만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 버린 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오랜 신앙과 경험 그리고 간증을 자랑삼는 영적으로 교만한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마치 유대인과 같이 먼저 되었다가 나중 된 자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내침을 당하게 됩니다. 구원의 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애쓰는 자에게만 열려있는 문입니다. 구원의 문은 주님을 아는 지식과 같은 외적인 조건으로 열리는 문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의 문은 열립니다. 구원의 문은 좁지 않습니다. 구원의 문이 바늘구멍처럼 보이는 자는 자신의 영적 교만과 자신의 죄의 짐으로 인하여 자신이 낙타의 모습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구원의 문은 오직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며
구원의 문은 좁지 않으며
구원의 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며 힘쓰고 애쓰는 자에게 열려있는 문입니다

나의 삶이 항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를 힘쓰며
날마다 회개의 눈물로 나를 씻어내어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이 되어야 하며
나의 신앙은 연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 마음을 품고
날마다 말씀을 통한 나의 삶의 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보여주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신앙이 아니라
인위적인 인본주의 신앙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날마다 변치않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겸손하며 능동적인 자세로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며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쓰임 받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저에게 주어진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고
늘 회개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수고했다!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그날을 기대하며
주님 다시오실 날을 철저히 대비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기를 다짐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찬양하며 말씀을 깊이 깨달아 구원의 문을 향해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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