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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예수님의 걸음을 따라 - 눅 2장 41~5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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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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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51

예수님의 걸음을 따라

 

(도입)

인류의 첫 번째 사람이었던 아담의 죄는 온 인류를 향해 죄의 결과인 죽음을 낳습니다. 그리고 땅에 내려진 ‘가시’와 ‘엉겅퀴’의 저주로부터 자유 할 수 없기에 수고의 땀을 흘려야만 열매를 얻는 고통이 주어집니다. 소망과 희망이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인 인류를 향해 하나님께서 두 팔을 걷어붙입니다. 창세 전, 하나님께서는 구속언약에 따른 은혜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인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과 ‘가시’와 ‘엉겅퀴’의 저주로부터 건져낼 것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의 성취를 위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됩니다. 우리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대속의 값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예수님께서는 ‘가시와 엉겅퀴’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대속을 위해 어떤 길을 걸으셨는지 되돌아봅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되짚어봅시다.


(41~42)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의 수준으로 아는 종교인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으며,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걸음을 걸어가는 예수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다스리시는 분이 인간의 연약성을 가지고 생육법의 다스림을 받으며 고난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런 예수님이 ‘열두 살’이 됩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열세 살’이 되면 책임 있는 사회구성원이 되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그리고 그 의식에 참여한 자는 ‘율법의 아들’이 되어 회당의 회원이 됨과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이런 중요한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남자아이는 ‘열세 살’이 되기 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율법의 아들’이 되기 위한 행동들을 배웠습니다. (눅 2:22)에 의하면 예수님은 율법에 따라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유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의식적 절차를 밟기 위해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율법에 순종하는 ‘종의 실체’가 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저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율법의 지배 아래 놓입니다. 불순종의 길을 걸었던 첫 번째 아담을 대신하여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는 길을 걸어갑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님의 걸음을 되짚어봅시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비춰봅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의 길을 걷고 있는지, 또 다른 아담의 모습이 되어 불순종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의 수준으로 아는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첫 번째 아담의 범죄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그 말씀을 믿으며,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걸음을 걸어가는 예수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43~47) 영적흑암에 가려진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그 가르침 받은 말씀으로 세상을 일깨우는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의 절기에 따른 일주일간의 규례를 모두 준행한 어린 예수의 가족들이 관습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하룻길을 가다가 무리가 ‘노중 숙소’에서 만납니다. 그때 요셉과 마리아는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어린 예수가 당연히 어머니의 무리와 함께 올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공회원의 자격에 따른 의식을 치렀기에 이제 ‘남자’로서 길을 가게 되는 예수가 당연히 요셉의 무리와 함께 걸어올 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어떤 무리에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걸어왔던 ‘하룻길’을 ‘사흘’이나 뒤집니다. 아이가 갈만한 장소는 다 가봤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최후의 보류였던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갑니다. “설마 이곳에 있을까?”라는 의심의 마음으로 그곳을 찾아갑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나이로 보나 신앙의 연륜으로 보나 어린 예수가 있을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 놀라운 장면이 목격됩니다.

    ‘12살 된’ 어린 예수의 이해력과 지혜로운 대답에 함께한 사람들이 놀랍니다. 어린 예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가 아니었습니다. 초자연적인 역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신을 자랑삼는 지혜와 지식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적흑암 속에 놓여 있는 세상 사람들을 일깨우고,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적흑암에 가려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세상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말씀의 증인 된 길을 예수님처럼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48~51) 자신의 신앙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과 함께 흔들림 없는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자신의 신분을 세상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걸음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들을 행여나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보자 안도감이 놓이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아이 예수를 다그칩니다. 이때 예수께서 자신이 당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었을 뿐이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두 가지의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내 아버지의 집’입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처럼 자신의 출신과 성분에 대한 분명한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셨나이까?’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자신의 신앙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인류의 죄를 대속할 제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며, 아버지의 뜻을 틀림없이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생업에 문제가 됩니까? 자신의 신앙을 세상 사람들에게 숨기는 것을 마귀가 제일 좋아합니다. 신앙에 대한 정체성과 함께 흔들림 없는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자신의 신분을 세상 가운데 분명하게 드러내며 자신 있게 신앙을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걸음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세상 사람들 앞에 어린 예수와 같이 자신의 모습이 부족하고, 연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영적흑암에 가려진 세상을 향해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받으며, 그 가르침으로 세상 사람들을 일깨우는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 25장)에 나타나는 것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한 달란트’를 가지고 불평하는 자는 자신이 가진 것까지 모두 빼앗겨버립니다. 진리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전하는 자도 은혜를 받고, 전함을 받은 자도 은혜를 받습니다. 자신의 삶의 환경과 형편을 가지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준행하고, 그 말씀을 세상 가운데 증거하는 길을 망설임 없이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인류의 구원을 위해 대속의 값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나는 어떤 자세로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할까?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지식적으로 판단하는
종교인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순종하는 삶의 길을 걸어가길 원하며
세상 속의 모습이 아니라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
날마다 하나님 말씀안에  속한 삶의 길을 걸어가길 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안에 속하기 위해서는
바른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아
바른 말씀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증인의 길을
걸어가길 원합니다

또한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자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저의 불의를 깨닫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이루길 간절히 바랍니다
바른 말씀을 배우고 그 가르침 속에서
쓰임받는 일꾼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또한 언제나 능력의 말씀을 증거하며
진리의 길을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행복한사람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coco 능력의 말씀을 증거하며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coco님을 위해
응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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