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

(11월 28일) 우선되어야 할 신앙의 자세- 눅 10장 38 ~ 42절

페이지 정보

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28()

1038~42

우선되어야 할 신앙의 자세


(도입)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던 도중이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한 촌’에 들리게 됩니다. (요 11:1)에 의하면, ‘한 촌’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3km에 위치한 ‘베다니’라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마르다의 영접을 받아 그 집에 머물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정성을 다해 자신을 대접하고자 하는 마르다와 자신의 발아래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열심인 마리아를 맞이하게 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고자 하는 자신의 분주한 일을 도와주지 않는 마리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합니다. 이때,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다를 타이르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우리의 신앙에 대해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것이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우선이 되어야 할까요? 


(38~39)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성도는 신앙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의 자세를 우선으로 취해야 합니다


(요 11:5)에 의하면 예수님은 마르다와 그의 동생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와는 이미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게 되자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합니다. 이때 제자들과 함께 긴 여행에 지쳐 피곤한 육체를 이끌고 계셨던 예수님은 (눅 10:39)에 의하면, 피곤한 몸이 휴식을 취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리아를 자신의 발 앞에 앉힙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는 여자가 랍비로부터 말씀 배우는 것을 금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랍비가 될 수 없었으며, 마르다처럼 열심히 가사 일을 하는 입장에 서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열중을 다 합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마리아가 앉은 것은 예수님에 의한 ‘수동적인’ 자세였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열중하고 있는 것은 마리아 자신의 ‘능동적인’ 자세였습니다. (엡 4:13)은 ‘믿는 것’과 거기에 더하여 ‘아는 일’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가질 때 신앙은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신앙으로 자란 나무는 (신 11:14)의 말씀처럼 모든 삶의 여정에 하나님의 ‘이른비’와 ‘늦은비’의 축복이 임하여 범사가 번성하는 복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성도는 신앙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신앙의 자세를 우선으로 취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40)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불만을 앞세우는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을 기뻐하는 신앙의 가치관을 자신을 세워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발아래에서 열심히 듣고 있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한 음식을 마련하는데 몸과 마음이 분주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차분하지 못하고, 허둥대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식탁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충성스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마르다의 눈동자가 마리아를 향합니다. 그때 마르다의 눈에 보였던 마리아의 모습은 ‘얄미움’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은 여인으로서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리아는 여인이 취해야할 위치에 서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르다는 말합니다. “주님! 철부지 없는 내 동생에게 나를 도와주라 명하소서!” 

    마르다는 자기 일을 하면서도 연신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반면, 또 다른 한 사람인 마리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마르다의 시각을 통해 돌아보면,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마르다의 모습은 분주히 일하는 것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고, 마리아의 태도는 몹시 이기적인 것으로 그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신앙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주변을 함께 무너뜨리는 무서운 행위가 됩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탄은 우리를 이렇게 조정합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신앙을 해석하지 말고, 한 가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가치를 발하는 기쁨으로 신앙하고, 일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41~42)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불평하는 자리에 세우기보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일행을 대접하는 마르다의 일은 참으로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는 그 기준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려던 마르다가 식사를 준비하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러자 마르다의 마음은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상황들에 의해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구나!”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중요한 것을 한 가지 가르칩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마르다가 예수님 자신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에 분주한 곳에 마음이 빼앗기면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분주한 곳에 자신을 두기보다 (신 8:8)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말씀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순종하려는 자세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신앙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신앙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하고 그 신앙이 날마다 어린아이와 같이 머물고 있다면 험난한 환란의 때를 견뎌낼 수 없습니다. 마리아를 통해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적극적인 자세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달려가는 신앙의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공중의 권세 자에게 휘둘림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자기 관점에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해석은 자기의 불만을 키워낼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가치를 발하는 기쁨으로 모든 일에 충실하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 길의 걸음을 기쁨으로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이 땅 가운데서 풍족히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준비하는 마르다의 마음은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마르다의 마음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부딪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항상 말씀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며
말씀안에서 답을 찾아 행하여야 하며
항상 말씀을 먼저 사모하는 신앙의 자세로
주의 일을 할 때 불평불만이 없이 기쁨이 배가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도 신앙이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보다
장성한 신앙의 분량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능동적으로 순종할 때
세상의 악한 마귀로부터 휘들림 당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감당할 때도
기쁨이 넘쳐나는 일꾼이 될 것이며
오늘도 나의 모습이
능동적으로 순종하는 신앙의 모습으로
걸어가는 기쁨의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능동적으로
듣고 마음 깊이 새겨
이후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 그의 장례를 준비하는
고귀한 영적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행위는 성경에 기록되어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마리아처럼 말씀을 사모하여 신앙의 깊이를 더해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성경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는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성경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FAMILY

CONTACT

  • 주소 : (48054)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반로 113-15(재송2동 1060-2)
  • TEL : 051-783-9191 / FAX : 051-781-5245
  • Copyright © 2023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
  • 카카오뱅크 3333-28-3057838 예금주 : 바티스
  • 우체국 601252-02-199260 (황영선-바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