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결실을 맺는 날 - 눅15장 3 ~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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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금) | 눅 15장 3~7절 | 결실을 맺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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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와 종말은 결실과 관련하여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 양’과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 또한 추수와 종말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명했던 3대 절기인 ‘유월절’과 ‘맥추절(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장막절)’은 구원론과 긴밀하게 연결되며 종말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말이라는 추수의 의미를 가지는 또 하나의 상징을 보게 됩니다. ‘양 백 마리’와 ‘아흔아홉 마리’ 그리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다가올 종말의 날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흔아홉 마리’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의 비유는 다가올 종말에 대해 무엇을 잊지 않도록 하고 있을까요?
(3~4) 종말의 날은 마귀에 속한 자들은 멸함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사 그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결실을 맺게 하는 날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종말이라는 추수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적 대상을 거론합니다. 첫 번째는 ‘양’입니다. ‘양’은 ‘택한 백성’을 상징하면서 비유합니다. (민 27:17)과 (마 9:36)에 의하면 ‘양’은 돌보아 줄 목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택한 백성’을 ‘양’에 비유한 것은 인간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능력이 없다는 것이며, 목자에 의해 구원의 길로 인도받는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양 백마리’입니다. ‘백’은 ‘택한 백성의 수’를 상징합니다. ‘10’은 꽉 찬 수를 의미합니다. (계 6:11)의 ‘그 수’는 택한 백성과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순교자의 반열에 세워지는 ‘수’를 말합니다. 그리고 ‘양 백마리’는 구약 시대의 ‘10’과 신약 시대의 ‘10’을 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자를 빠짐없이 모두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양 백마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입니다. 이것은 (계 6:11)과 마지막 추수의 결실을 말하는 (계 15:8)의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리면서 하늘의 문이 닫히기 전, (계 14:16)의 사건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계 6:11)의 계수에 들지 못했던 ‘양’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가운데 아주 완악한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복음을 회피합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의 과거 모습처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핍박하던 자 가운데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다는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나팔재앙을 통해 이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예표하고 있습니다. 종말은 마귀에 속한 악한 것들은 멸함을 받는 날이지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사 그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결실을 맺게 하는 날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5~6) 종말은 상실당한 희망을 잔치의 한 마당으로 회복시키는 주님의 날이요, 결실을 맺는 추수의 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택함을 받은 백성에게 종말은 두려움의 날이 아닙니다. “즐거워 어깨에 매고”는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리고 대접재앙이 시작되기 전, 잃은 한 마리 양을 목자가 찾아온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깨에 매고”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은 아주 고집불통이라서 강제적으로 끌고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의 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즐거워 어깨에 매고”입니다. 어깨에 매고 오는 것이 즐겁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하나님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은 기쁨을 단순한 기쁨으로 여기지 않고 잔치로 이어진다는 것은 ‘잃은 양 한 마리’를 향한 목자의 사랑과 그를 반드시 구원에 이르게 하겠다는 결연함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으로 인해 하늘에서 잔치를 베푸는 것은 구원의 수가 가득 채워져 택한 백성의 구원이 완성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합니다. ‘100’이 채워져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날이 되니 추수의 마지막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종말은 상실당한 희망을 잔치의 한 마당으로 회복시키는 ‘주님의 날’입니다. 그리고 결실을 맺는 ‘추수의 날’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기억하며, 종말이 속히 도래되길 간구하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7) 종말의 추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 대한 구원의 수가 완전히 채워지고, 마무리되는 결실과 결산의 날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7절)의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는 말씀은 두 가지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하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는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주어진 비유의 말씀이라는 측면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즉, 스스로 의롭다며 회개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를 하나님은 진정으로 기뻐하고 그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택한 백성의 완전수 ‘100’이 채워지는 것에 대한 마지막 퍼즐, ‘잃은 한 마리 양’에 해당하는 완악한 자들의 구원에 따른 진정한 기쁨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사망이 다시는 없고, 애통하는 것과 곡하는 것,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니 이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하겠습니까! ‘100’이 채워지는 그날!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이 임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영광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받으시는 날이 되니 어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종말의 추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 대한 구원의 수가 완전히 채워지고, 마무리되는 결실과 결산의 날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추수의 날은 농부에게 최고의 기쁨을 주는 날입니다. 마찬가지로 종말의 날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께 가장 큰 기쁨을 주는 날입니다. 구원의 날은 택한 백성에게 ‘사망’이 다시는 없고, ‘애통하는 것’과 ‘곡하는 것’, ‘아픈 것’이 다시는 없으니 얼마나 기쁜 날인지요! (계 22:14), 영생을 누리는 곳으로 나아가니 얼마나 기쁜 날인지요! 추수의 날인 종말의 날은 마귀에 속한 자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져지는 날이니 그들에게는 ‘둘째 사망의 날’입니다. 그날은 반듯이 도래됩니다. 추수의 결실을 맺고 결산하는 종말의 날은 심판을 통해 결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자의 그 수 ‘100’이 채워지는 그날! 세상 사람들은 이날을 멸망에 따른 종말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결실을 맺는 은혜의 터가 새롭게 열리는 ‘하늘의 잔치’가 임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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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자를
빠짐없이 모두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고 있습니다
종말의 날은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멸함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어
천국 백성이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마지막 한 영혼을 구원하고자 전도를 하지만
형식적인 모습도 있었고
몇번 권면하고 포기하는 모습들이 많았지만
마지막 때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오늘도 말씀을 전하는 귀한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농부가 추수의 때에 기쁨을 알 듯이
종말의 추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 대한 구원의 수가
완전히 채워져 인류를 향한 하나님께서 가장 큰 기쁨을 주는 날이며
우리에게는 사망도 없고 애통과 아픔과 곡하는 것도 없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국이기에
오늘도 이 천국의 비밀을 세상에 알리어
복음의 열매를 맺는 결실의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이 기쁨과 감격 그리고 감사함은 그 어떤
언어로도 온전히 표현할수 없습니다
하루빨리 구원의 숫자가 채워져 사망도 없고 애통함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다시는 없는
새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