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인도하는 문 - 마 7장 13절 ~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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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수) | 마 7장 13~14절 | 인도하는 문 |
(도입)
세상은 사람의 생명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출생’이며, 다른 하나는 생명의 끝을 알리는 ‘죽음’입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은 자연적인 이치에 속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에 대한 사실을 바르게 안다면 그 사람은 삶의 방식과 살아가는 목적 그리고 목표가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순종이라는 죄를 범한 사람은 사망의 저주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느 한순간도 범죄로부터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은 인간의 죄로 인한 결론이며,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생 복락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환란 가운데 살아가는 영혼들을 향해 ‘영생 복락의 문’을 알지 못하고, 알아도 제대로 그 ‘문’을 찾지 못하는 영혼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또 하나의 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혼란 가운데 놓여 있는 세상의 영혼들을 ‘영생 복락의 길’로 인도하는 문으로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요?
(13) 탐욕을 따라 멸망의 문에 들어서는 자가 되지 않도록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을 바라보는 실체가 되어 세상의 영혼들을 영생 복락의 길로 인도하는 그리스도를 닮은 문으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 이르러 모여든 무리에게 ‘문’의 비유를 통해 ‘천국 시민’으로서 직시해야 할 가르침을 줍니다. 천국 문은 탐욕의 모습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그 길이 ‘번영의 길’이고, ‘성공의 길’인 것 같지만 탐욕에 따른 것은 결국 ‘멸망의 문’에 들어서는 꼴이 됩니다. (눅 13:24)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세상의 탐욕이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부귀와 영화가 아닙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나라를 바라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눅 18:25)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라고 말합니다. 그 ‘문’에 들어가게 되면,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죄악 된 것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는 그 문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문’을 들어가려면 자신의 죄악 된 세상의 더러운 찌끼를 벗어내어야만 합니다. 회개를 통해 굳은살과 같고, 벗겨지지 않는 철갑과 같은 죄악 된 옷을 벗어야 그 문이 자신에게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탐욕을 따라 ‘멸망의 문’에 들어서는 자가 되지 않도록 천국을 소망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먼저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을 바라보는 실체가 되어 세상의 영혼들을 ‘영생 복락의 길’로 인도하는 ‘그리스도를 닮은 문’이 되어야 합니다.
(13)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게 하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영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문이 되어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정작 많은 사람이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넓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앞에서 ‘좁은 문’과 ‘넓은 문’이 ‘문’에 대한 성격을 설명하였다면 두 번째는 ‘진짜’와 ‘가짜’의 구별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이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으로서 ‘진짜’를 말한다면, ‘넓은 문’은 ‘미혹을 따라’ 살아가는 삶으로서 ‘가짜’를 말합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놓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짜를 위장한 가짜인 ‘넓은 문’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화려해 보이고,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기루에 비치는 가짜입니다.
(막 13:22)에 의하면 종말의 시대가 되면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된 것’이라는 가짜에 의해 사람들이 분별력을 잃어버리는 현상입니다. (막 13:22)은 말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세상은 죄의 속성 가운데 놓여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죄의 본성이 원하는 길을 쉽게 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눈에 가짜가 더 진짜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게 하고, 영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강력한 문으로서 사명과 사역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4) 자신의 영혼이 마귀에게 팔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치 알지 못하며 불나방처럼 살아가는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바르게 인도하는 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좁다’는 것과 ‘넓다’는 것에 대해 그 차이와 이유를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보고, 느낄 때, 형통이 아니라 고난이 보이고, 힘들고, 어려움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문에 들어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찾는 자가 적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는 사람들이 왜 적겠습니까? 왜냐하면! 마귀에 의해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술책을 펼칩니다. 교회를 비방하도록 만들고, 교회를 거부하는 조건들을 만들어갑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복음을 기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마귀에게 팔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며 불나방처럼 살아가는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바르게 인도하는 ‘십자가의 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 9:2)의 말씀처럼 흑암 가운데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그리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록 그들을 ‘인도하는 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문’이 예수님을 따르고, 영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길’은 그 이후 계속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완전한 종말이 오기까지 마귀의 유혹에 따른 세속과 계속되는 영적 전투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때를 이미 아시고 십자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종말의 시대와 이후에 계속될 환란의 때는 십자가의 신앙이 아니고는 이겨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영혼들은 마귀가 세속 가운데 뿌려놓은 마약과도 같은 것에 도취 되어 있습니다. 영혼들을 깨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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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마귀로 인하여 세상은 부정과 불의와 시기와 질투와 음란으로 인한
매우 혼탁한 시대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각종 이단들은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며
마귀는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하여
세상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혼탁한 이 시대에 영적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말씀으로 무장하며 기도에 힘쓰는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신앙은 방심하는 그 순간 마귀는 속삭이며 공격합니다
영적으로 병들지 않도록 날마다 몸 부림치며
오늘도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날이 되기를 원하며
세상의 영혼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그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바르게 인도하여
십자가의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어제도 친정에 갔으나
어머니께서 복음을 거부하셔서 당분간
찾아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영생복락의 길로 어머니를
올바르게 인도하려던 문으로서의
역할은 잠시 멈추고
이제는 집에서 기도로 어머니를 위해
힘쓰는 문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