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부름을 받은 자 - 마 4장 18절 ~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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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금) | 마 4장 18~22절 | 부름을 받은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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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공생애를 이어갑니다. 참 특이한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리스도로서 공생애 사역을 이루어가실 때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로서 공생애를 이루시면서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교회의 출발을 이루셨을까요? 열두 제자를 사도로 세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구원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열둘은 신약과 구약의 모든 시대를 상징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백성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는 증인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세 번째는 구원받은 자로서 이 땅에 남겨진 이유가 설명됩니다. 교회로서 역할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자들을 불러 모으는 값이 구원받은 자에게 사명으로 주어집니다. 그것이 (마 28:19~20)의 ‘지상대위임령’이었고 (행 1:8)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 교회로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남겨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부름을 받은 자인 교회로서 자신을 어떤 위치에 세워놓아야 할까요?
(18~19) 부름을 받은 자로서 주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즉각적인 순종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예수께서 “해변에 다니시다가” 제자 삼으실 자를 부르는 장면이 목격됩니다. 이때 “보시니”를 오해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해변을 다니시다가 이들을 우연히 발견하였고, 제자로서 자격을 가진 자를 찾은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평범하고 비천한 신분의 어부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도 아닙니다. 율법에 능통한 자도 아닙니다. 귀족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유명한 자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것은 능력과 자격을 보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선택한 것입니다. 제자로서 ‘재목’ 되기에는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주님으로부터 세움을 받고 특별히 사명자로 부름을 받은 자는 자신의 처지와 환경 또는 자신의 모습에 비치는 가치관으로 세움을 받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부름을 받은 자의 사명은 세상에서 주어지는 직업과 비교될 수 없고, 비교할 수도 없지만 비교되어서도 안 됩니다. 여기에 대해 나는 부름을 받은 자로서 주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귀하게 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즉각적인 순종으로 주어진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20)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는 ‘씨 가진 열매’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교회의 역할을 바르게 감당해 내는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대해 안드레와 베드로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그물을 버려 두고”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를 따르니라”입니다. 세상에 속한 가치관보다 더 값진 것을 선택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버려 두고”, “따르니라!”에서 나타나는 것은 어떤 충동적인 행동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른 자에게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인격적 변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인격적 변화는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진정한 이유를 알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알게 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에 대해 ‘그물을 버린 것’과 ‘예수를 따르는’ 것은 매우 결단력 있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 가운데 증거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인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의 참된 가치관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가치관을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일에 지체하지 않는 흐르는 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교회의 역할을 ‘씨 가진 은혜의 열매’처럼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생육’, ‘번성’, ‘충만’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1~22)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는 세상의 만족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더 기뻐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에 이어 갈릴리에서 어부로 생업을 이어가던 두 형제 야고보와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는 과정에서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들은 두 가지로 즉시 반응합니다. 첫 번째는 배를 버려두고 부름에 따릅니다. 자신의 삶에 풍요를 주는 수단으로부터 떠납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로부터 떠나 부름에 따릅니다. 진리의 빛을 증거하는 교회로서 역할에는 헌신과 희생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헌신과 희생은 더 큰 은혜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물질은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허락하신 것은 사용하는 측면에 있는 것이지 만족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자는 세상의 만족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자리에 자신이 세워진 것을 더 기뻐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우리는 모두 부름을 받은 불가시적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부름을 받은 자로서 교회입니다. 부름을 받은 자로서 우리는 교회의 역할을 바르게 행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악함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 가운데 교회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다면 주님으로부터 징책을 받습니다. (마 5:13)은 여기에 대해 증거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부름을 받은 자로서 주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귀하게 여기며 즉각적인 순종으로 교회의 역할을 바르게 감당해야 합니다. 헌신하고 희생하는 자리에 올려져야 합니다. ‘씨 가진 열매’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결실을 맺어 가는 부름을 받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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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교회가 감당하기 원하오니
택함을 받은 나의 모습은 구원 받은 자로서
이 땅 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하며
순종하는 신앙의 자세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 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받은 그 은혜를 세상 가운데 흘려 보내고
그 복음으로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주의 일에 늘 순종하기를 원하며
헌신적인 자세로 나아가는 부름받은 자의 삶의 살기를 원합니다
coco님의 댓글

그동안 저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교회생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했고
기도 또한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나의 뜻을 쫓아
분주하게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만족을 추구하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그 자리에서 세워진 것을
기뻐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