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복이 있는 사람(1) - 마 5장 1절 ~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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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토) | 마 5장 1~5절 | 복이 있는 사람(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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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예수님께서 광야를 통하여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심으로 시작됩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마귀의 권세 속에 빠져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잃어버린 인류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회복을 알립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이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침을 줍니다. 이런바 ‘산상수훈’이라고 일컫는 기독교윤리의 ‘대강령’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복 받으세요!”라고 말을 하면 이 말에 기분 나빠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만큼 ‘복’은 사람들에게 아주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무엇 때문에 ‘복 있는 사람’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주신 복은 무엇을 말할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 참 복을 부릴까요?
(3) 도저히 구원받지 못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 자는 구원의 복을 누리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향하여 모여든 많은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함께 앉을만한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높지 않은 한 산에 올라가, 그 산의 평지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법에 관한 가르침을 주기 위해 입을 엽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독교윤리의 대강령’을 ‘산상수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가르침이 선포된 장소가 산이었기에 그 가르침을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가르침을 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심령’은 ‘영’에 관한 것으로 ‘마음’ 또는 ‘영혼’을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고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고백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는 구원의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천국이 그의 것이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풍성함으로 가득 찬 ‘참 기쁨’만이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곳은 시기와 분노와 분쟁과 기근과 병듦이 없습니다. 영육간에 완전한 모습으로 영생 복락을 누리며, 슬픔과 근심과 걱정 없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런 복을 죄 사함을 받은 구원의 백성이 누리게 되니 참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자신에게는 구원받을 만한 의나 공로가 없음을 알고 주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간절히 구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여덟 가지의 복’에 관한 가르침을 줍니다. 그 가운데 두 번째는 첫 번째 가르침과 연결이 되는 ‘애통하는 자’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일반적으로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을 가리켜 ‘애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애통’은 감각적이고, 육신적인 것으로 인한 ‘슬픔’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는 구원받을만한 어떤 ‘의’도, ‘공로’도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며 가슴 아파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애통하는 자’는 자신의 행동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길이 없음을 알고 가슴 아파하면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구하는 자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러니 ‘심령이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하나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지 않으면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위로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위로함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런 참 복을 누리는 자임을 잊지 말고 세상을 향하여 힘 있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5) 상대를 향한 미움과 복수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팔 복’ 가운데 세 번째 가르침을 줍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는 ‘폭력’ 또는 ‘분노’와 반대되는 말입니다. ‘온유한 자’는 상대로 인하여 당하게 된 해악조차 미움과 복수심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웃과 상대를 오히려 불쌍히 여길 줄 알고, 자신에 대한 악한 감정에 대해 분을 품지 않습니다. (마 19:19)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신 그 음성을 따라 살아가는 자입니다.
‘온유한 자’는 ‘믿음’과 ‘소망’, ‘사랑’ 가운데 그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하셨던 말씀처럼 ‘예수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가슴에 품을 뿐만 아니라 그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온유한 자’는 ‘안’으로는 ‘믿음으로 승리한다!’라는 ‘승리’의 확신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며, ‘밖’으로는 사람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열매를 맺어 갑니다. 종합하면, ‘온유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사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에게 ‘내세’에서 일어나는 ‘천국’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 삶을 풍요롭게 하는 보상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복 있는 자’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식을 가진 스승으로서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 본체로서 이 땅에 있는 우리를 향해 선포하신 말씀이며, 이루어질 약속의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그리고 ‘애통하는 자’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는 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자신은 도저히 구원받지 못할 죄인임을 알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구원받을 만한 의나 공로가 없음을 알고, 주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간절히 구하는 자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복이 있는 자로서 십자가의 사랑을 세상 가운데 증거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잠깐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온유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복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환경에 넘어지지 말고 나는 참으로 ‘복 있는 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고난의 마지막 때인 종말을 십자가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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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하나님앞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나의 모습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의 백성 삼으셔서
이 시간도 복 주시기를 원하시며
지금 이 순간도 참 복을 누리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로서
이 땅위에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참 복은 그 어느것과도 바꿀수 없고
세상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복 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나를 인도하시고
언제나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경배하며
찬양하기를 원하며 부끄럽지 않은 주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에 대해
막연히 알고 암송해 왔는데
이번에 분명히 깨닫게 되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