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복이 있는 사람(3) - 마 5장 9절 ~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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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월) | 마 5장 9~12절 | 복이 있는 사람(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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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이 주일날 설교를 합니다. 교인들은 그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으며 감격합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똑같은 본문에 똑같은 설교를 3주째하고 계셨습니다. 예배 후 광고 시간에 교인 중 한 사람이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왜! 3주째 동일한 설교를 계속하십니까?” 그때 목사님은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여러분들 삶속에서 온전히 적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도를 나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여덟 번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살아가면 정말로 복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팔복의 가르침 가운데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는 화평과 핍박에 관련한 내용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와 핍박을 받는 자가 왜! 복이 있을까요?
(9) 분쟁과 시기 그리고 질투로 가득찬 세상에 진정으로 화목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드리는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주신 ‘팔복’은 마음으로부터 문제들을 이끌어내어 점점 문제가 우리들의 삶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심령’, ‘애통’ 그리고 ‘온유함’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일이었다면, ‘의’와 ‘긍휼’ 그리고 ‘마음의 청결함’은 그 모습이 점점 열매로 드러나고,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이런 가운데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화평’은 헬라어로 ‘에이레네’라는 ‘평화’와 ‘포이에오’라는 ‘만들다’ 또는 ‘행하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화평하게 하는 자’란,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평화를 사랑하며, 평화를 원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는 자를 말합니다. ‘화평’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생긴 분쟁 그리고 생태의 파괴 등 여러 가지 혼란해진 세상을 바르게 회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쟁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자연도 함께 병들어갔던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이 세상의 죄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말만하는 자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입니다. 세상의 죄와 갈등 속에 빠져있는 불쌍한 영혼들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하여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을 드리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10~11)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핍박과 시련을 당하는 자는 오히려 복이 있는 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는 정의를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의’라고 하면, 삶의 성실 또는 미덕 그리고 순결, 정직, 생각, 느낌과 행동 등이 올바른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의’를 하나님에게 적용을 하면, ‘의’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란, 세상적으로 말하는 ‘정의’나 이데올로기와 같은 사상의 차원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것을 말합니다. 특히 마태복음 본문에서 말하는 ‘의’는 죄인인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한다’라는 것은 인류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계 2:10)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말씀합니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기독교의 역사는 핍박의 역사입니다. 그 핍박의 역사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마지막 종말의 ‘그날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박해 가운데서도 믿음의 절개를 지키고, 복음 증거하기를 굽히지 않는 자는 복이 있는 자’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가 최후의 진정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12) 주님의 삶을 살아가는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주님은 ‘팔복’의 마지막을 종결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나로 말미암아!’... 이것은 ‘팔복’의 전체 내용과 직결되는 내용임과 동시에 ‘여덟 번째 복’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의’는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말하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아가는 자가 당하는 박해를 말합니다. 그러니 그 박해는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당하는 박해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세상적으로 볼 때는 가장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삶은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란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박해와 같은 고통은 잠시이지만 하늘의 상급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삶의 전부를 주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지는 복 있는 자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흔히 사람들은 ‘복’을 돈 많이 벌어서 남들이 보라는 듯이 떵떵거리며 잘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각종 사기와 부패, 타락이 난무하고, 각종 무속신앙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종교 홍수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탕주의와 물질만능주의만을 바라보며 자신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른 채 달려가고 있습니다. 정말로 복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잠시뿐인 영광을 위하여 달려가는 자가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자입니다. 진정으로 복 있는 자는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천국’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는 주님께서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것’으로 보상해 줍니다. 정녕 복이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아가기를 기뻐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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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진정한 복은 무엇일까요?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 사람들과 믿는 사람이 바라보는 복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 나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켜 준행하여
그 말씀대로 나의 삶이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의 것 들은 신앙 안에서 끊어내고
말씀안에 푹 담겨지는 신앙이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쁨을 소망하며
이 땅위에서 주를 위해 살아가는 복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coco님의 댓글

지난주 토요일에 친정에 가서
어머니께 찬양을 불러드렸더니
시끄럽다며 찬양을 부르려면 너희 집에
가서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말씀을 암송하며
저녁을 차려드리자
어머니는 저를 향해 미쳤냐고 하셨습니다
작년만 해도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해드리면 기도문이 참좋다 하시고
찬양을 부르면 아멘 아멘 하셨는데
요즘은 이를 거부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제 자신을 드리는 자로 살며
진정으로 하나님의 딸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을 누리는 최후의 진정한 승리자로 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