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위기앞에 놓인 성도 - 시편 33편 1절 ~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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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화) | 시 33편 1~6절 | 위기 앞에 놓인 성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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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삶의 여정 가운데서 위기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기가 오히려 자신을 전화위복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을 철저히 무너지게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위기는 양면의 칼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33편은 열정에 가득한 찬양으로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위기 앞에 놓인 우리를 향해 답을 주고 있습니다. 닥쳐오는 위기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이 위기를 이겨나가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시편의 기자를 통해 위기 앞에 서 있는 이 시대 앞에 그리고 우리 앞에 어떤 답을 주고 있을까요?
(1~3) 다가오는 위기 앞에 자신의 피할 길을 세상에서 찾는 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으며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길을 찾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극한의 위기를 극복하고 반전의 역사를 맞이한 시인은 세 가지 점을 강조합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를 즐거워하라”이며, 두 번째는 “여호와께 감사하라”입니다. 세 번째는 “열 줄 비파로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 그리고 ‘찬송하는 것’의 대상이 죽은 존재나 우상과 같은 형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존재를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기를 통해 우리는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의심치 않는 믿음의 신앙 위에 자신을 올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1절)의 ‘의인’과 ‘정직한 자’를 주목해야 합니다. ‘의인’과 ‘정직한 자’ 공통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그리고 온전히 세워나가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2절)의 ‘수금’과 ‘비파’는 (삼상 1:5)과 (대상 15:16)에 따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사용되는 대표적인 악기입니다. (3절)의 ‘새 노래’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심령이 새로워진 것”을 강조합니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즐거운 소리’는 “확신에 찬 큰 소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수금과 열 줄의 비파와 새 노래”는 하나님의 방법만이 하나님과 인격적 교통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위기 앞에 자신의 피할 길을 세상에서 찾는 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으며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길을 찾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5) 위기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극복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충만하게 채워 반전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죄악 된 세상의 것들로는 성립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정직’과 ‘진실’입니다. 거짓된 세상에서 말하는 ‘정직’과 ‘진실’에는 ‘위선’이 있을 수 있고, ‘모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정직’과 ‘진실’은 행위적 측면 또는 양심적 측면이 강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정직과 진실은 (마 7:12)과 (눅 6:31), (눅 12:1)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의 행위와 마음의 생각까지 담고 있습니다. 세상은 정의와 공의의 기준을 법이라는 형틀에서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세상은 악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는 제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준행하는 것에 정의가 있고, 공의가 있습니다.
자신 앞에 놓여진 위기에 대해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앞에서 이 위기를 다시 돌아보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가운데 자신이 세워지지 못했다면 진정한 회개함으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 접근을 이루셔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충만히 채워나가는 사역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반전의 역사를 써가고, 이끌어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6)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 만물을 지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으로 자신을 세우고 그 말씀의 권능으로 위기를 물리치는 말씀의 권세자가 되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을 병문한 사신들이 단순히 병문안 뿐만 아니라 반 앗수르 동맹을 형성하기 위한 내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히스기야는 (왕하 20:13)에 의하면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무기고를 열어 자신의 능력을 자랑삼습니다. 앗수르에 포위당했던 절체절명의 위기와 병들어 죽음에 이르게 된 자신을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인 인간의 모습에는 이런 약점들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는 (6절)의 본문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 만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으로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삼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으로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권능으로 위기를 물리치는 말씀의 권세자요,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다가오는 위기가 기회가 되려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자신을 충만히 세워야 합니다. 과정이 없이 결과는 없습니다.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열매’를 기다린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씨’를 뿌리고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가꾸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위기 앞에 피할 길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안에 자신을 바르게 세우고 그 안에서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위기에 따른 반전의 역사는 요행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위기를 하나님 안에서 길을 찾을 때, 자신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대해 멀어져 있는지, 어떤 모습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충만에 이른 모습이 반전의 역사를 꾀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으로 자신을 세우고 그 말씀의 권능으로 위기를 물리치는 말씀의 권세자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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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누구나 삶의 여정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작고 사소한것부터 매우 힘든 환경과 고난과 시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겠습니다
때로는 내 생각대로 판단할 때도 있었고
내 생갹대로 해결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기를 기대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인본주의의 모습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위기를 극복한 본문의 시인은 항상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를 열줄 비파로 찬송하라"고 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의 신앙위에 자신을 올려놓으라고 한 것 처럼
나의 모습도 고난과 시련과 어려운 환경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여호와께 감사하고 여호와를 찬송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고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는 삶과
하나님 말씀의 권능으로 나 자신을 바로 세우고
위기를 말씀의 권능으로 이겨내는 말씀의 권세자와 증인이 되기를 소망하며
이 시간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니엘쌤님의 댓글

위기가 닥치면 마음이 더 조급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보다 먼저 성급한 생각과 걸음을 할때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위기속에서 경험과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먼저 여호와께 무릎꿇으며
살아계신 여호와를 믿으며
회복시켜주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적극적인 신앙의 행동을 취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하나님이 기억하는 백성이 되기위해
주어진 시간과 환경과 교제속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성진님의 댓글

언제나 하나님을 즐거이 찬양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말씀으로 내 자신을 가꾸고
정직한 마음으로 마땅히
찬양을 부르고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여호와께 감사하며
어떠한 위기가 다가와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믿으며
말씀으로 하늘을 지으시고
입김으로 모든 별을 만드신
여호와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