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생명나무의 계시 - 창 2장 8~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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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주) | 창 2장 8~9절 | 생명 나무의 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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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피조 세계에 대한 창조를 자신의 형상을 담은 피조물을 창조하는 것으로 매듭을 짓습니다. 그리고 그 피조물을 ‘사람’이라고 칭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격적 존재’가 되도록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사람을 창조할 때 사람의 속성 가운데 하나님이 사람과 더불어 공유할 수 있는 속성인 ‘성품’이 주어집니다. ‘사랑’, ‘지식’, ‘지혜’, ‘공의’, ‘거룩’ 등의 속성이라는 성품이 주어져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격적 존재’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크게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인격적 존재’로 창조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의 위치에 세워집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대해 ‘청지기’로 사역을 감당하도록 창조됩니다. ‘예배자’와 ‘청지기’가 사람을 창조한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런 모습은 에덴동산에 있는 두 나무를 통해서도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 나무’이며,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어떤 이유로 ‘생명 나무’를 두셨을까요? ‘생명 나무’는 우리를 향해 무엇을 계시하고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숨결이 살아 있는 생명 나무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두 모습과 신앙의 성숙에 대한 것을 함께 계시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목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에덴’은 계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세우셨다는 것을 ‘동산’이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에덴동산’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가운데 피조 세계는 생육, 번성, 충만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에덴동산’에 각종 나무를 둡니다. 그리고 동산의 중앙에 대표적인 두 나무를 둡니다. 하나는 ‘생명 나무’이며 다른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왜! ‘생명 나무’를 두셨을까요?
‘하나님의 형상’과 ‘생명 나무’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 나무’에는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숨결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사람을 ‘인격적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스며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언약이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아담을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신앙적 가르침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인격적 존재로 피조된 아담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결정권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더욱 부각 되고 있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아담을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신앙적 가르침이 계시 되고 있었습니다.
(2) 영생을 말하고 있는 생명 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될 십자가와 부활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생명 나무’를 두시면서 아담으로 하여금 그 열매를 먹으며 생명이 영원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생명 나무’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순종의 결과와 함께 아담이 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그 또한 피조물이라는 것이 강조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 나무’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알게 합니다. 아담 앞에 펼쳐진 ‘생명 나무’는 장차 전개될 십자가를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부활이 ‘생명 나무의 열매’가 되어 실질적인 효력을 발하게 될 것을 ‘생명 나무’를 통해 언약하셨습니다. ‘생명 나무’는 창세 전에 있었던 ‘구속언약’과 연결되었으며, 이것이 십자가를 통해 효력이 발해질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의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을 향해 불순종의 길을 걷습니다. 그 결과 사망이라는 죄의 형벌을 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담을 버리지 않습니다. ‘가죽옷’을 입히시고(창 3:21) 그를 향해 자비 베풀 것을 언약합니다. 이것이 ‘생명 나무’에 계시되어 있었습니다. ‘생명 나무’는 우리를 되살리기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따른 죽으심과 그 열매인 부활을 통해 참된 효력이 발하게 될 것을 계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 언약의 열매들입니다. 오늘도 ‘생명 나무’에 따른 은혜 언약의 산실이 바로 ‘나’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영적으로 혼탁한 이 시대 앞에 자신을 더욱 당당하게 세워나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3) 생명의 회복을 언약하고 있는 생명 나무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라는 것을 통해 피조 세계 가운데 질서라는 규칙을 세웁니다. 이런 질서에 대한 규칙의 적용으로 계절이 만들어지고 구분됩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자체의 존재적인 측면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체의 존재적 가치와 상대성의 가치에 따른 효과와 조화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속에 함께합니다. 조화로움은 아름다움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가운데 밤을 주관하는 ‘달’과 낮을 주관하는 ‘태양’이 생동감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둔 ‘생명 나무’는 그 나무가 ‘생명’과 관련이 있다는 존재적 가치를 나타냅니다. ‘생명 나무’는 “우리를 되찾아 회복시켜 주는 나무”와 관련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생명 나무’를 허락하실 때 하나님은 아담이 죄를 범할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 나무’를 허락한 것은 생명의 주관자 되시며, 죄가 없으신 성자 하나님이 ‘생명 나무’가 될 것과 죄인인 사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어 열매라는 결실을 맺을 것을 계시하고 있었습니다. (요 19:30)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다 이루었다!” ‘생명 나무’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는 언약의 성취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적용)
‘생명 나무’에는 관계성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생명의 영원함이 ‘생명 나무’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생명 나무’는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와 그리스도를 믿음의 신앙으로 바라보도록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강력한 영적 전쟁이 예고 되고 있습니다.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자신을 동여매어야 합니다. ‘생명 나무’인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는 십자가 신앙으로 전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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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스성경아카데미님의 댓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의 모습과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창조돠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두시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불순종의 길을 걸었다면
생명나무는 죄에서 우리를 되살리기위한 은헤입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은혜를 베푸셨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날마다 인도하여 주시는 은혜안에 머물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죄인인 사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연합을 통해
오늘도 한 없는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축복과 날마다 신앙으로 전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생명나무 언약을 계시하신 하나님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
다 이루신 주님을 믿으며
오늘도 부활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록3:20
내곁에 늘 함께하시는 주님 덕분에 외롭지않습니다
생활 속 모든 순간을 주님과 대화하기를 힘쓰며
식사할 때도 주님 먼저 드리고 나서 내가 먹으니 기쁘고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