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세 가지 신본주의 신앙 - 시편 3편 1절 ~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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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주) | 시 3편 1~8절 | 세 가지 신본주의 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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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나라들이 민족을 중심으로, 또는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출발의 근원부터 세상 가운데 세워진 나라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나라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나라의 왕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부음’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다윗을 세웁니다. 나라의 근본이 ‘신본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에도 인본주의를 앞세운 그릇된 걸음들이 나라를 위기 가운데로 몰아갑니다.
다윗의 아들이었던 압살롬의 인본주의는 자신의 아버지조차 짓밟아버립니다. 이때 다윗은 인본주의를 앞세운 압살롬의 반란에 대해 신본주의 신앙으로 모든 난국을 헤쳐 나갑니다. 우리는 다윗의 장면을 통해, 인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시대를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신본주의 신앙의 관점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2) 불의한 세상이 인본주의를 앞세워 나를 위협하고 낙담하게 만들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최종적으로 승리자 삼으실 것이라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정면 돌파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다윗의 셋째 아들이었던 압살롬은 자신의 누이였던 ‘다말’을 욕보인 ‘배 다른 형’이었던 ‘암논’에게 복수하고,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세워가기 위해 그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반역을 일으킵니다. (삼하 15:7~12)에 따르면 그는 모반을 일으키기 위해 4년 동안 아버지 다윗을 철저히 속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난 곳’이며, 동시에 아버지 다윗이 ‘7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의 임시 수도로 삼았던 ‘헤브론’에서 반란을 도모합니다. 그곳은 자신들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던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인본주의 세력’과 규합을 합니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다윗을 왕으로 극진히 섬겼던 아히도벨이 자신의 영광을 만들어내기 위해 압살롬과 뜻을 함께합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이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예루살렘을 도망쳐 나옵니다. 그때 다윗은 왕궁을 지키기 위해 남겨두었던 ‘후궁들’이 있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이런 후궁들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압살롬으로 하여금 동침하도록 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다윗의 왕권이 압살롬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도록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반역을 일으킨 것이 자신의 아들이었으며, 자신의 신복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가운데 놓입니다. 그의 눈물은 육신이 무너진 것을 넘어선 마음의 무너짐이 더 큰 슬픔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위기 가운데 놓여 있는 다윗을 향해 조롱하듯이 “이제 당신의 운은 다하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면초가에 놓인 다윗의 결정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윗의 선택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신본주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자신의 회복을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게도 하시고, 일어서게도 하시는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인본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신앙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걸음에 대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며 조롱을 일삼기도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은 나를 최종적으로 승리자 삼으실 것이라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정면 돌파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3~4) 불의한 세상이 나를 무너뜨리려 할지라도 결국은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과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가는 신본주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인본주의’를 앞세운 불의한 세력들에 의해 무너짐을 당한 다윗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대적하지 않습니다. 자식에 의해 무너지고, 심복에 의해 무너짐을 당한 그는 사람의 손에 의지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을 부르며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택합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가는 일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들어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불의한 세상이 나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다윗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세워나가는 ‘신본주의 신앙’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라 ‘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5~8) 세상이 가해오는 위기적 상황 가운데서도 나에게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본주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아들인 압살롬에게 쫓김을 당하고, 자신의 심복에게 쫓김을 당하고 있는 다윗은 아무 채비도 챙기지 못하고 황급히 도망갈 정도였습니다. 이런 다윗이 어찌 평안한 잠자리에 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본주의 신앙’을 앞세우고 있는 다윗은 고백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쌀지라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본주의 신앙 가운데 세워진 다윗을 향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삼하 17:23)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평안한 잠자리를 주기 위해 ‘악한 모략’을 앞세웠던 ‘아히도벨’의 모략을 꺾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윗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모든 상황을 총정리해 버립니다.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그 순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자신을 담금질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자신에게 가해오는 인본주의를 담고 있는 위기적 상황 앞에 다윗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의 신앙에 대해 반응합니다.
(적용)
인본주의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장애물입니다. 우리는 이 장애물을 세 가지의 ‘신본주의 신앙’으로 그 돌파구를 찾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 엎드리는 ‘신본주의 신앙’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신본주의 신앙’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본주의 신앙’입니다. 이 세 가지의 ‘신본주의 신앙’으로 자신을 동여매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그 머리를 들게 합니다.
우리는 영육간에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귀가 ‘인본주의’를 앞세워 우리를 삼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신본주의 신앙’으로 그 근원을 깨뜨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태풍이 몰아쳐 와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평안을 주신다는 하나님을 향한 ‘신본주의 신앙’을 하나님은 기뻐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쌀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이기게 하신다”는 분명한 ‘신본주의 신앙’으로 세상을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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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9월의 아침 첫 날을 시편3편의 말씀으로 시작하게 하시고
주일을 허락한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한 주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오늘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주일
온전히 하나님께 경배하는 주일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나의신앙은 말씀 안에서 산다고는 하지만
늘 세상과 부딪쳐야 하고 영적 싸움을 해야하는
현실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엎드리는 신앙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는 세 가지의 신본주의 신앙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자녀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혼탁한 이 시대, 마귀는 늘 공격하고 있기에 나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신본주의의 신앙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이겨내는
승리하는 영적 군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이님의 댓글

아멘입니다~~~~
거룩한 주일 주님의 이름만 높임을 받으소서
갈급한 심령위에 성령의 단비를 내려주소서
축복합니다~♡♡♡
coco님의 댓글

늘 하나님께 엎드리며
늘 하나님께 아뢰며
늘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세상을 이기는
신본주의 신앙으로
살것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