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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무엇이 보이느냐 - 마가복음 8장 22절 ~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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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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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마가복음 822~ 26

무엇이 보이느냐

 

(도입)

사람이 어떤 사물을 구별할 때 대표적인 두 기능이 사용됩니다. 첫 번째의 기능은 만져봐서 그것을 구별하는 촉감적 기능입니다. 두 번째는 그것을 봄으로 그 사물이 무엇인지를 구별하는 시각적 기능입니다. 특히 보는 것을 통해 사물을 구별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시각은 우리 신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한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사건을 통해 우리는 특별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예수님께서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면서 맹인에게 무엇 때문에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요? 맹인을 향한 질문을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22~24) 육신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하나님의 뜻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양만 자신의 눈에 보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벳새다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자신들의 친구 중 하나인 맹인을 예수님께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데려온 맹인에게 손을 대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맹인을 단번에 치료하지 않으시고 두 단계를 거쳐 그를 치료합니다. 첫 번째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의 손을 잡으시고, 그를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 마을 밖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그의 눈꺼풀 위에 침을 뱉으며, 안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맹인은 대답합니다. “나무같은 것이 보입니다!”

  이 맹인은 나면서부터 맹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사람이 나무처럼 보인다라는 대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과거에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을 지금 회복된 눈으로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물체가 완전하게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맹인을 단번에 치유하지 않고, 단계를 거쳐 치유하는 것에는 두 가지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 맹인과 그 일행들을 향해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기적과 이적만을 바라는 육신의 눈을 가진 신앙은 주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저 또 다른 하나의 기적과 이적을 봤을 뿐입니다. 신앙은 년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불분명한 것을 보며 말하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말할 수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25) 진실된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붙드는 자는 삶에 광명을 되찾게 되고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두 번째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을 다시 안수합니다. 맹인에게 특별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과 확신이 생겨납니다. “그래! 이 분은 나의 눈을 완전히 치유할 수 있어!” 맹인은 무엇이 보이느냐?”라는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질문을 통해 너는 내가 너의 눈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느냐?”라는 물음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무 같은 것이 보입니다!”라는 표현을 통해 기쁨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맹인은 그 대답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눈을 치유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는 믿음을 내어 비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의 눈을 즉시 다시 안수합니다. 맹인은 예수님의 두 번째 안수를 통해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주변을 주목하여 사물을 뚫어지게 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눈이 나아서 그가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는 육신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캄캄하게만 보였던 자신의 삶,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무너짐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뚜렷한 광명이 보게 됩니다.

 

(26)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영적분별력이 생겨 미혹의 영이 도사리는 흑암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한 벳새다는 작은 성읍으로, 당시 헤롯 빌립이 분봉왕으로 이곳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11:20~22)에 의하면 이 지역은 주님의 많은 권능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아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대표적인 성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치유한 맹인을 집으로 보내시면서 강력한 어투로 그에게 명령합니다. “집으로 가는 도중 너는 그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예수님께서 자신이 치유한 맹인을 벳새다라는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명한 것은 두 가지의 커다란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잘못된 예수님에 대한 인식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의 역사를 본 사람들이 자신을 정치적 메시아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경우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더욱 방해할 것이 불을 보듯 빤하였습니다. 두 가지 이유 모두 영적으로 분별력을 잃어버린 자들로 인한 복음 확장의 걸림돌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자신의 영적 현주소를 정확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미혹의 영이 도사리는 흑암의 길을 걷지 않도록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세 가지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첫 번째의 길은 기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기도는 (왕하 6:17)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적인 눈을 열어 예수님에 대한 사실을 똑바로 알도록 해주십니다. 두 번째 길은 (19:8)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똑바른 길로 인도해줍니다. 그리고 세 번째의 길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14)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지혜자는 예수님을 알지 못해 어둠 속에서 당하는 일을 당하지 않게 합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이 나의 삶에 광명이라는 은혜를 베풀어줍니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사탄이 쳐놓은 흑암의 사슬이 나를 사망의 감옥으로 끌고 가지 못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예수님은 한 맹인을 한 번에 치료하지 않으시고 단계별로 치료하시는 것은
맹인과 그 일행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기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적과 기적만을 바라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년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녀가 되는 것이며
그의 나라를 위해 변함없이 일하는 종의 자세로
묵묵히 일하는 충성된 자가 되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영적인 눈을 열어 예수님에 대해 똑바로 알게 해주는 '기도'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게 하는 '여호와의 계명'과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세 가지의 길로 알려 주십니다

거록한 주일을 기도로 준비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기쁨이 넘쳐나는
복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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