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마른 손과 펴진 손 - 마가복음 3장 1절 ~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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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목) | 마가복음 3장 1절 ~ 5절 | 마른 손과 펴진 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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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이루실 때 첫걸음은 ‘회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을 공생애 사역의 첫 번째 장소로 삼으신 것은 죄악 가운데 놓은 영혼을 일깨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 회당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한쪽 손이 마른’ 한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회복시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행동에 대해 안식일의 금지 사항에 따른 장로의 유전을 적용하여 공격합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함께하여 예수님을 죽으려고 공모합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만 인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 마른 자’와 같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삶을 함께 돌봐 주십니다. 무너지고 찌그러진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안식일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계십니다. 무너지고, 찌그러진 삶에 대해 주님의 손이 펼쳐집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향해 자신의 신앙을 어떤 모습으로 세워나가야 할까요?
(1~2) 자신의 모습이 절망과 같은 마른 손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신앙을 내려놓는 자가 아니라 신앙 있는 모습으로 주님으로부터 주목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손 마른 자’의 회복은 그가 안식일 회당을 찾았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쪽 손이 마른’ 모습을 하고 있었던 ‘한 사람’이 회당을 찾습니다. 그는 자신을 그 어느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체적인 문제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저주받은 자’라 놀림을 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적인 문제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안식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절망과 같은 ‘마른 손’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신앙을 내려놓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에 나오는 신앙 있는 모습을 예수님은 주목합니다. 자신의 신체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문제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손 마른 자’의 신앙을 봅니다. 비록 자신의 형편과 환경이 무너져 ‘마른 손’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를 다른 것들과 타협하지 않는 근본 있는 신앙으로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의 신앙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3~4) 자신의 모습이 무너지고 절망과 같은 마른 손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세상 사람들의 사고와 판단에 넘어지지 말고 주님의 인도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회당에 들어온 ‘손 마른 사람’은 회당 안에서 바리새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회당에 왔지만 바리새인들이 자신의 ‘손 마름’에 대해 부정함으로 공격할 경우 아주 난감한 입장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면을 돌이켜 보면 ‘손 마른 사람’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숨기고 회당에 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의 삶이 편안하지 않다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합니다. 그러나 이런 ‘손 마른 자’를 예수님께서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명합니다.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무리들은 숨어서 ‘손 마른 자’를 이용하려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공개적인 장소의 중심에 세웁니다. ‘저주받은 자’, ‘부정하게 여김을 받은 자’의 모습을 들추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 마른 자’를 회중의 중심에 세우고 안식일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가 ‘솰롬’이라는 ‘평강’에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자신의 모습이 무너지고, 훼파 당한 ‘마른 손’과 같은 형편과 환경 가운데 놓여 있을지라도 절망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너진 그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세울 것입니다. “한 가운데에 일어나라!”
‘손 마른 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대표적인 두 인물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 그리고 사무엘서의 다윗입니다. ‘마른 손’과 같은 무너진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세상 사람들의 사고와 판단, 그리고 무너진 자신의 환경에 절망하지 않고 자신을 신앙으로 세웠던 요셉을 기억합시다. (창 41:43)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중심’에 세웁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억울한 쫓김을 당하며 ‘마른 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신앙은 (삼하 5:3)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다스리는 명실상부한 ‘통일왕국’의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5) 마른 손과 같은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며 하나님의 중심에 자신을 세워놓는 신앙으로 무너진 형편을 펴진 손으로 회복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른 손’과 같은 절망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신앙의 걸음은 무너진 나의 삶을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하고, 세상의 증거물이 되게 합니다. 세상은 불가능을 말하고, 포기하라고 말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는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유한성을 가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며 신앙하는 자리는 은혜가 없습니다. 이해와 판단이 앞서는 신앙이 아니라 말씀에 순복하는 모습이 매우 중요합니다. ‘손 마른 자’에게 예수님께서 명합니다. “한 가운데 일어서라!” 그 말씀에 순복합니다. “네 손을 내밀라!” 그 말씀에 순복합니다.
이해와 판단으로 따진다면 ‘손 마른 사람’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순복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부정한 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복하고 손을 내밉니다. “내밀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손을 내미는데 순종하고, 복종하는 속에 일어납니다. 이해와 판단이 앞서는 신앙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중심에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른 손’과 같은 무너진 형편을 ‘펴진 손’으로 회복 받는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요, 증인의 자리에 세워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절망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손 마른 자’, 저주받은 자로 여김을 받았던 ‘손 마른 자’의 선택은 안식일 하나님을 경배하는 본연의 자리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면서까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신앙 있는 걸음이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운데 세울 때, 판단과 이해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순복하는 모습을 통해 비참해질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를 회복이라는 축복의 장소로 바꿔버렸습니다. 자신이 비록 ‘손 마른 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 형편과 그 장소를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면 그 장소가 축복의 장소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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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길에서 노방전도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인상이 험악한지 강팍한지를 보고
전도지를 주고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던 어리석은 때도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참으로 부끄러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병든자, 귀신들린자, 저주받은자, 놀림을 당하는자에게도
손을 내미셨습니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내 자신은 내 생각, 내 판단과 편견으로 사람을 평가하며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어느 누가 천국 백성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순수한 신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지체들을 돌아보며
섬기는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