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시대앞에 부름 받은 자 - 마가복음 3장 13절 ~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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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금) | 마가복음 3장 13절 ~ 19절 | 시대 앞에 부름 받은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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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펼쳐나갑니다. 이때 대속에 따른 공생애의 증인으로,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제자로 열두 명을 부릅니다. 시대 앞에 부름 받은 제자가 열둘이었던 것은 두 가지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열둘’은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실 때, 그 지파의 수를 ‘열둘’로 정합니다. 두 번째로, ‘열둘’은 구원과 관련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수’와 관련됩니다. ‘열둘’은 이 땅에 있는 모든 민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세상의 모든 민족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 앞에 하나님으로부터 열두 제자들처럼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시대 앞에 부름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제자의 모습을 취해야 할까요?
(13~15) 영적 흑암에 사로잡혀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마귀의 권세로부터 불러내는 권세자로 시대 앞에 부름 받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이 장면에서 마가는 좀 특이한 예수님의 모습을 비춰냅니다. 그것은 “산에 오르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장소를 ‘산’으로 택하셨다는 점을 마가는 강조합니다. ‘산’은 특히 ‘영적인 장소’와 결부됩니다. (왕상 18:19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00명이 누구의 신이 ‘참 신’인지 대결을 벌였던 장소가 ‘갈멜산’이었습니다. ‘산’에서 ‘열둘’을 제자로 세웠다는 것은 “열둘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세워졌습니다”라는 음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둘’을 ‘산’에 세웠다는 것은 ‘산’이 세속과 구별되는 종교성을 담고 있는 장소라는 측면에서 “이들은 세속과 구별되며, 하나님의 뜻을 세워가는 길을 걸어가는 자가 되었습니다”라는 의미를 마가는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을 불러모으는 ‘복음사역’에 대한 무기로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그들에게 줍니다. ‘산’에서 부름 받은 것처럼, 우리는 먼저 자신을 세속으로부터 구별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흑암의 권세를 이기는 ‘제자의 길’이 아니라 흑암과 타협점을 전하는 제자가 됩니다. ‘구별된 빛’으로 복음의 사역을 펼쳐야 합니다. (엡 2:2)에서 증거하고 있듯이 인간의 죄로 인해 세상은 마귀의 권세로 뒤덮여 있습니다. 영적 흑암에 사로잡혀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마귀의 권세로부터 불러내는 권세자로 시대 앞에 부름 받은 자! ‘빛의 사역’을 이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16~17) 비록 자신에게 여러 가지 허물이 있을지라도 주님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져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최전선에 나서는 영적 전사로 시대 앞에 부름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요 1:40~42)과 (눅 6:14)에 의하면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의 형제였습니다. (마 8:14)에 의하면 결혼을 했으며, 장모가 자신의 집에 함께 기거하며 살아갔던 어부였습니다. 그리고 (행 4:13)에 의하면 그는 학문이 없는 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눅 22:50),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고의 귀’를 베는 사건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순간적인 충동에 따라 움직이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 4:21)과 (막 1:20)에 의하면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였습니다. 어부로서 집안은 부유했지만 (마 20:20~22)에 의하면 이기적이고, 자기 욕심이 가득한 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권세로 세력을 얻게 될 때, 두 형제에게 권세를 상징하는 ‘좌편’과 ‘우편’에 두기를 간청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세베대’의 두 아들에 대해 마가는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그 성격이 불같고, 과격하여 ‘우레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더해졌습니다”
제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세 명은 흠도 많고, 탈도 많은 자들이었습니다. 자격으로 본다면 제자로 세워서는 안 되는 흠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어디든지 데리고 다니십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이들이 가진 능력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크게 사고 칠 수 있는 ‘사고뭉치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예수님께서는 전임 사역자처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참 제자’로 만들어 최전선에 서는 영적 전투의 전사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드로처럼, 야고보처럼, 요한처럼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땐 비록 허물이 많아 보여도 주님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면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최전선에 서는 영적 전사로 시대 앞에 부름을 받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18~19)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대 앞에 부름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베드로의 동생이었던 안드레는 스구디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자로된 ‘십자가형’으로 순교를 당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자신의 불신을 회개하였던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서 순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동명이인이었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헤롯 아그립바 Ⅰ세에 의해 사도 가운데 최초로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이런 사도가 있었는가 하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가 자신의 뜻과 맞지 않자 (마 26:15), 예수를 ‘은 삼십’에 공회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를 따랐던 가룟 유다의 최후는 다른 제자들의 순교와는 달랐습니다. (마 27:5) 자신이 저지른 큰 잘못을 후회하며 스스로 목매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예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믿음! 그 길은 제자도가 아니라 가룟 유대처럼 저주의 사슬이 그 길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의 완성에 따른 ‘행복의 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대 앞에 부름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영적 흑암에 사로잡혀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마귀의 권세로부터 불러내는 권세자로 우리는 이 시대 앞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회피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사명의 완수를 통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비록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땐 허물이 많아 보일지라도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면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영적 전사가 되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최전선에 서는 제자, 예수님의 목적을 이루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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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제자로 삼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흠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들이지만
예수님의 참 제자로 만들어 예수님 사역에 이들을 데리고 다니십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 위의 세명보다 더 흠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삼아주셨습니다
허물많은 나를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나를 만들어 이 땅위에서 사용하시고자
오늘도 그 크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
항상 깨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영적 군사가 되어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