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 - 레 11장 1~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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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수) | 레 11장 1~19절 |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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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는 제사법과 함께 거룩과 관련하여 정함과 부정함의 ‘정결 규례’를 먹는 문제로 확대합니다. 그 가운데 짐승에 대한 규례가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먹을 수 있는 짐승에 대한 정함과 먹지 못하는 부정함의 기준에 대해 포괄적인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하고, 무엇이 부정한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히 성별 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기준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말씀이 기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성별 된 거룩한 삶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정함과 부정함에 대해 기준을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성’에 맡긴 판단은 각자의 주장이 될 수 있고, 정의와 공의를 수반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결법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과 삶에 대해 어떤 하나님의 기준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1~8) 신앙과 삶의 거룩에 대한 기준을 사람의 판단에 의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의 관점이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되는 신앙과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지의 짐승 중에 어떤 것이 먹을 만한 생물인지 기준을 정해줍니다. 네 발을 가진 짐승 가운데 ‘굽’이 갈라지고 동시에 ‘새김질’을 하는 짐승이 먹을거리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정한 짐승’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소’, ‘양’, ‘염소’가 대표적인 짐승입니다. ‘굽’이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못한다든지 ‘새김질’은 하는데 ‘굽’이 갈라지지 않으면 먹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으로 구별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짐승이 ‘낙타’, ‘사반’, ‘토끼’, ‘돼지’ 등이었습니다.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기준이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이 구별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람의 판단으로 이해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거룩한 삶과 신앙을 바르게 세워나가려면 먼저 ‘굽’이 갈라지듯이 우리의 삶이 세속으로부터 갈라진 구별된 삶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새김질’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되새겨야 합니다. 신앙과 삶의 거룩에 대한 기준을 사람의 판단에 의뢰하면 (사 28:7)의 말씀처럼 ‘옆걸음’을 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의 관점이 기준이 되고, 중심이 되는 신앙과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9~12) 어떤 것을 판단하고 구별해야 할 때도 사람의 이성에 따른 이해를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대해 순종하는 신앙의 자세를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두 번째 먹거리와 관련된 것은 물고기입니다. 수중에 있는 생물 가운데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은 먹되 그렇지 않은 강과 바다의 생물들은 ‘가증한 것’이니 먹지 말도록 명하셨습니다. 짐승도 그렇고, 물의 생물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세웁니다. 위생적인 것 또는 영양분과 관련된 것이 구별점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두 눈으로 외형적인 부분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비늘’과 ‘지느러미’를 기준점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을 때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이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르는 것이 기준점이 됩니다. 순종입니다. 그렇게 해야 실수 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거리의 정함과 부정함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이 되도록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창 2:17)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열매의 성분으로 죽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 가운데 놓인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것을 판단하고 구별해야 할 때도 사람의 이성을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세우신 기준에 대해 순종하는 것을 우선에 두는 신앙과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3~19) 다른 사람을 해치고 포악을 일삼는 자와 함께 하는 불의한 영광을 버리고 항상 하늘에 있는 위의 것을 사모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 번째 먹거리는 새와 관련됩니다. 새에 대해서는 짐승과 물고기처럼 어떤 특징적인 요소를 말하지 않으면서 먹지 못할 새의 종류를 말합니다. 이때 이런 말씀을 합니다. “가증히 여길 것은”, 그리고 “가증한즉”이라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합니다. ‘가증하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셔케츠’입니다. ‘협오스럽다’ 또는 ‘몹시 밉게 생각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수리를 비롯하여 박쥐에 이르기까지 이 새들에게는 협오스러움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죽은 사체’를 먹는다든지 다른 짐승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맹금류’들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새들처럼 둥지에서 살지 않고 거친 들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수리와 솔개처럼 다른 사람을 헤치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빼앗아 가는 폭력 등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행위가 됩니다. 죄악 된 세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악한 짓을 하거나 악한 자와 함께해서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과 삶의 기준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합니다. 신앙과 삶이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을 채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는 순간 그는 이미 하나님 앞에 가증한 모습으로 서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고 포악을 일삼는 자와 함께하는 불의한 영광을 버려야 합니다. 항상 하늘에 있는 위의 것을 사모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적용)
신앙과 삶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을 떠나는 순간 그 빈자리는 악한 영의 차지가 됩니다. 악한 영의 다양한 유혹이 똬리를 틉니다. 신앙과 삶이 거룩의 모습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을 따라가면 됩니다. 사람의 이성이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을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최우선에 두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죄악 된 세속과 구별된 신앙과 삶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신앙과 삶은 등불이 꺼진 망망대해에 놓인 배와 같습니다. 폭풍과 풍랑이 일어도 누구 하나 구해 줄 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은 신앙과 삶에 대해 칠흑 같은 어둠을 밝혀주는 ‘등대의 불’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함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결실의 열매를 맺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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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하나님은 정결규례로 먹는 것도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히 성별된 삶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는 거룩한 삶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에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며
나의 잘못된 것들을 이 시간 회개합니다
나의 삶속에서 부정한 것들의 요소가 되는 모든 것
나의 자아로 인해 교만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기를 원하며
내 생각과 판단으로 저울질 하는 일 없기를 바라며
세속적인 부정과 불의와 탐욕과 악한 것들을 멀리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삶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의 관점이 기준이 되어
신앙과 삶은 일치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의 관점을 벗어나지 않도록
날마다 나를 말씀안에 녹여
나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들을 늘 지켜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을 떠나는 순간 악한 영이 틈을 타고 들어오기에
내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말씀의 기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 안에서 생명과 평안이 흐르는 복된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