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언약백성이라 일컬음을 받는 자 = 민 14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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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금) | 민 14장 1~10절 | 언약백성이라 일컬음을 받는 자 |
14: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14: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14: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14: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14: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14: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14: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
(도입)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였던 ‘약속의 땅’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갑니다. 그러나 언약의 자손이요, 희망과 소망의 민족인 ‘이스라엘’은 뜻하지 않은 큰 암초를 만나게 됩니다. 사건의 전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의 사정을 살피려고 간 ‘정탐꾼들’에 의해 일어납니다. 정탐꾼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기가 막힌 땅이었습니다. 심지어 포도송이는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5Kg 정도 되는 것으로 두 사람이 막대기에 묶어서 매고 와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역행하는 포기를 결정합니다. 순간!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서는 탄식과 함께 지체할 수 없는 슬픔의 눈물 그리고 원망 어린 통곡 소리가 뒤섞여 나옵니다. 지금 슬픔에 잠긴 이들은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사건’ 그리고 마라의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사건 등을 통해 ‘언약 백성’과 함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직접 체험한 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산 증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가나안이라는 한 상황의 암초를 만나 좌초되고 있었습니다. ‘언약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자가 약속의 말씀을 따라가다가 위기 가운데 놓이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1~3) 언약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 저울질하는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탐꾼들이 눈으로 본 사실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 백성의 모습을 취하기보다 세속 가운데 세워진 인본주의 모습을 취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분노에 가까운 불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3절)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그 근본적인 원인은 정탐꾼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관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에서 자신들이 바라본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3가지의 반응으로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는’ 모습이었으며, 두 번째로는 ‘밤새도록 통곡’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결론적으로는 ‘원망’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육신의 눈으로만 바라보거나 이것을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며 저울질하는 자에게는 ‘믿음의 눈’이 생기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자는 상황이 자신에게 조금만 불리하게 전개되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실리를 취하기 위해 신앙을 던져버립니다. 이런 자들은 언제든지 애굽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 저울질하는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언약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자는 분명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문제해결의 열쇠는 우리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4~5) 언약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이 움직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이 내린 불신앙에 따른 판단은 이스라엘이라는 ‘언약의 공동체’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4절) 심지어 모세와 아론을 더 이상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버리고 자신들을 애굽으로 다시 인도할 ‘한 지휘관’을 세우겠다는 것은 자신들은 이제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반란이었습니다.
언약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는 자가 공동체를 자신의 의중대로 이끌어가겠다는 것은 “나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약 백성의 공동체는 나의 생각과 나의 능력 그리고 나의 뜻에 의해 움직여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6~10) 언약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무너진 언약의 공동체 이스라엘은 공중 분해되기 일보 직전에 이릅니다. 이때 두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배반을 슬퍼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본 사실과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회중들을 향하여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나아갑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죽음을 무릅쓰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7, 8절)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향한 공동체의 잘못된 신앙의 시각을 교정시키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은 전적인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성에 의해 이뤄짐을 알도록 합니다. 이 정도 되면 감정에 의해 잠시 신앙의 이성을 잃어버린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며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아와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10절)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경계선이 무너져버린 회중들의 반응은 “헛소리 하지마! 너희 둘! 죽여 버리겠다!”였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힘의 세력과 미혹하는 영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역행시키려고 오늘도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언약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반드시 이뤄짐을 믿어 의심치 않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적용)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기적을 자신의 눈으로 ‘백번’ 보고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는 절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언약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자가 세속적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언약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의 믿음을 가졌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 저울질하는 자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상황에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고, 도저히 헤쳐 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세속적인 것들과 타협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은 죽어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을 따라 준행하는 자가 되십시오! 눈앞에 죽음이 보이는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언약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자가 취하여야 할 자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창세 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온 자는 이 땅을 살아갈 때로 ‘가나안의 거인’과 같은 그리고 철옹성과 같은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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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언약백성된 자로서 나의 신앙의 자세는 어떠한지를 돌아보고
깊이 묵상하며 나의 잘못된 부분들을 깊이 회개하는 시간입니다
나의 인본주의의 생각과 행동들을 멀리하고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 말씀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신앙으로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마귀와 같은 대적들을 물리치는 신앙과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동체를 위하여 쓰임받는 일꾼이 되어
날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진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갈때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저울질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바라보고 나아가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직접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과연 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에 하나님을 잊은 채 좌절하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았을지 생각해보니 저의 모습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평온할 때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지만, 문제 상황에 놓였을 때는 금세 말씀을 잊고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해결책을 찾기에 바빴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늘 말씀의 거울로 나의 모습을 비춰보며, 눈앞에 놓인 현실의 문제에 쉽게 넘어지며 원망하는 불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지키고 따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민규님의 댓글
김민규 작성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의 정탐 보고를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밤새 통곡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믿음보다 두려움을 선택한 것입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아름다운 땅이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저 또한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원망과 불평으로 반응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환경과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함을 깨닫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을 기억하며 담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결단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Jsw126 작성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한 상황의 큰 암초를 만나 좌초 되어 순간 하나님을 원망 하였지만 언약의 백성의로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 처럼 하나님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