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다 이루었다 - 요 19장 28~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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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월) | 요 19장 28~30절 | 다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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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서 있었던 한 사건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라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한 아담의 죄는 대표성과 머리로서 범한 죄였습니다. 이것이 원죄가 되었고 모든 인류는 원죄 가운데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망과 저주라는 참혹함 가운데 놓인 인류의 원죄를 해결하기 위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성육신합니다. 그리고 공생애의 길을 걸으며 대속의 제물로서 완전함을 이루어갑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한 제물’이 된 대속의 죽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대속의 제물이 되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셨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실 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왜! “다 이루었다!”였을까요? “다 이루었다!”라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돌이켜봐야 할까요?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루어가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28) 죄 아래 놓여 있는 세상을 돌이켜 보며,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돌이켜보며 길 잃은 영혼들을 애타게 찾는 일에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분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이 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육신이 가져오는 고통에 따른 호소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당하는 고통을 말씀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당하고 있는 육신의 고통까지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필요한 값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목이 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육신에 가해져 오는 고통과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본능적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기 위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목이 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그 순간에도 자신의 육신을 도모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갑니다. 죄 아래 놓여 있는 세상의 영혼들을 돌이켜 보며 하나님의 뜻을 먼저 돌이켜봅니다. “내가 목이 마르다!”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던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합시다. 죄악 가운데 놓인 세상의 영혼들은 지금 영의 극심한 목마름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서도 이 사명을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돌이켜보며 길 잃은 영혼들을 애타게 찾는 일에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9)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쫒으며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영혼들을 건져내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주님 안에서 함께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담이 범한 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여 죽는 죽음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 외에 세 가지의 값이 완전하게 이루어져야만 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법에 대해 불순종한 값을 율법의 모든 것을 완전히 지키는 순종으로 그 값을 완성합니다. 두 번째는 죄의 저주로 인한 ‘가시와 엉겅퀴’에 대한 값을 나면서 사람으로서 겪는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그 값을 완성합니다. 세 번째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값을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담아내면서 그 값을 완성합니다.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십자가의 고통을 감해주는 마취약이 들어 있는 ‘쓸개 탄 포도주’를 거부했던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통해 죄의 저주로 인한 진노의 값을 우리를 대신하여 다 마십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셨다면 하나님의 진노에 따른 고통의 값을 마취제로 감하였기에 대속을 이룰 완전한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저주’를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이루기 위해 마지막 남은 저주의 한 방울까지도 다 마십니다. 그리고 마귀의 권세 아래 놓여 있는 인류로 하여금 죄와 사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가운데 놓이게 합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쫒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몰약’이 담긴 불의한 것을 마시지 않았던 것처럼 타락, 음란, 부정, 불의함과는 어떤 타협도 이루지 않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영혼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며 그들을 위해 고통을 함께 나누며 주안에서 함께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30) 자신의 꿈을 욕망이라는 언덕 위에 올려놓지 말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산 역사를 이루어가는 일에 올려놓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틀, 사흘이 걸려 죽기도 하고, 야사의 기록에 의하면 일주일 동안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놓여 있다가 죽기도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6시간 만에 돌아가신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섯 시간’만에 돌아가신 이유를 모진 고통과 많은 출혈에 따른 쇼크사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여섯 시간’만에 돌아가신 이유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죄의 대속을 완전하게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십자가에 달리실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섯 시간’만에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신포도주를 마신 후에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영혼이 떠나가셨다’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능동적으로 드렸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는 삶은 자신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자의 수고를 하나님은 보고 계시고 기억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세자로 세웁니다. 자신의 꿈을 욕망이라는 언덕 위에 올려놓지 말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산 역사를 이루어지는 일에 올려놓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실패’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당하는 고난과 역경은 ‘패배’가 아니라 ‘이기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마취제 성분이 들어 있는 ‘쓸개즙 포도주’를 마셨더라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승리’가 아니라 ‘실패한 죽음’이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마신 ‘신 포도주’는 우리의 남은 저주를 예수님께서 다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의 길은 순종이었고, 자신을 끝까지 복종시키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 십자가의 진정한 신앙으로 세상을 향해 예수님과 함께 일어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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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에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은 실패가 아니라
승리였습니다
이번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못 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한 주를 나아가는 시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이 아닌 것 처럼
나의 삶도 나를 먼저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돌이켜보며
세상에 길잃은 영혼들을 돌아보며 회개하여 돌아올수 있는
사역에 힘쓰기를 원하며
주님과 같은 사랑의 가슴으로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며
주님 안에서 같이 울고 같이 기뻐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 대가 없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은 순종과 자신을 끝까지 복종시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나는 십자가의 진정한 신앙으로
세상을 향해 예수님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이루신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며
나 또한 내 육신의 욕구를 이루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내게 맡기신 영혼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진정한 십자가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