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부활을 바르게 증거해내자 - 요 20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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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화) | 요 20장 1~10절 | 부활을 바르게 증거해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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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만물에 대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생과 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지 6시간 만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죄 또는 나약함에 따른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나님께 그 값을 지불한 것이었다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부활은 무엇을 증거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이 부활 사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어야 하며, 무엇을 바르게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무덤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어떤 부활의 참 증인이 되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1~5) 죄 사함과 영생에 따른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요 진리라는 것을 바르게 증거해내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무덤에 장사 된 것을 목격한 증인입니다. 이런 막달라 마리아는 죽었던 자신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리셨던 ‘그 주님’에 대한 증인이기도 했습니다. 마리아가 안식일이 지나고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해 자신이 목격했던 그 무덤가를 찾아갑니다. 마리아는 깜짝 놀랄 두 가지 사건을 목격합니다. 자신이 장사하고자 했던 예수님의 시신을 가로막고 있었던 무덤의 무거운 ‘돌문’이 옮겨져 있었으며,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안가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전합니다. 제자들의 발걸음이 무덤가를 향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걸음은 부활의 주님을 확인하기 위한 발걸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습니다”를 확인하는 발걸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옮겨진 무덤가의 돌과 빈 무덤을 보고 추측합니다.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구나!” 그들은 옮겨진 돌과 빈 무덤만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신은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였다는 것을 ‘세마포’는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세마포’는 매우 값비싼 천이었습니다. 시체를 훔쳐 갔다면 이 ‘세마포’도 당연히 가져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면 시신을 황급히 옮겨야 하기에 세마포를 벗겨서 시신만 가져간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무덤가를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면 이 장면을 통해 그들은 ‘부활’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이것을 하나의 종교적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죄 사함과 영생에 따른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바르게 증거해내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6~8) 대속을 이룬 예수의 죽음이 부활로 응답받은 것은 저주의 죽음에 대한 대속의 완전한 값을 치룬 것이란 사실을 세상 가운데 바르게 증거해내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복음서 가운데 마가복음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누가복음은 예수의 부활에 따른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무엇을 증거하고 싶었을까요? 그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 그에 따른 ‘사실성’을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이와 함께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가를 찾았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사실대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세마포’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물증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는 몰랐습니다. 무덤 안에 들어가서 봤던 ‘세마포’에 대해 당시 요한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여 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세마포는 풀려 있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허물을 벗듯 몸만 빠져나간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세마포’를 보고 예수님께서 신비한 방법으로 부활하신 것을 믿었을까요? 제자들이 믿은 것은 ‘세마포’와 관련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것이 아니라 시신이 도둑맞은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믿었다”는 것은 “도둑맞았다는 것을 확신했다”라는 그들의 부끄러운 실체를 요한은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다 이루었다!”에 대한 결론이었습니다. 대속에 따른 예수의 죽음이 부활로 응답받은 것은 저주의 죽음에 대한 대속의 완전한 값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이 사실을 세상 가운데 바르게 증거해내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9~10)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킬 것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이룬 예언의 성취였다는 사실을 바르게 증거해내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 수난사를 말씀하실 때 자신의 부활에 대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마 17:23)과 (막 10:34), 그리고 (눅 18:33)과 (요 5:25)에서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라고 여러 차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말씀의 성취가 아니라 “예수님은 죽으셨다”라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발걸음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물인 ‘세마포’를 보고도 자신들의 안가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죄 사함에 따른 예언의 완전한 성취를 이루는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은 (창 3:15)의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에 대한 성취였으며, (창 3:21)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준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그리고 (창 3:23)을 통해 “내보내어”라는 말씀이 담고 있는 것처럼, 죄사함을 통해 다시 에덴동산으로 부를 것에 대한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눈에 보였던 십자가에서 죽으심만 기억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잊어버립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악 가운데 놓여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회복을 말씀했던 성경의 말씀을 이룬 예언의 성취입니다. 여기에 대해 분명한 신앙으로 나가지 못하는 자는 환난이 주어졌을 때 주님의 사명을 기억하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살길을 찾아 주님을 떠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킬 것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이룬 예언의 성취였다는 것을 바르게 증거해내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대속의 완전한 값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초유의 사건입니다. 종교의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한 형태가 아닙니다. 부활을 바르게 알고 부활을 바르게 증거하는 영적인 성도를 마귀가 제일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증인의 자리에 올려놓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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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대속의 완전한 값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예언의 성취이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백성으로 새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부활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살아나시어 부활하신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참 제자의 모습이 되어
오늘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예수님의 부활은 나에게 의심없이 믿어졌지만 이렇게 깊이 있게
배우고 나니 그 확신이 더욱 견고해 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임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 진리를 더욱 온전히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그 부활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