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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부활의 그리스도인 - 요 20장 11~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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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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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11~18

부활의 그리스도인


(도입)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바라보며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갔을까?”라며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갔던 제자들과는 달리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빈 무덤을 떠나지 않습니다. 홀로 예수님의 빈 무덤을 지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놀라운 사실을 목격합니다. ‘죽은 예수님’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죽으신지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이 우리와 어떤 상관을 맺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에 속한 자로서 ‘부활의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이 땅을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11~14)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 우리는 죄로부터 완전히 죽은 자요, 새 생명으로 살아난 자입니다. 이런 자신을 어두운 역사 속에 묻어버리지 말고 예수 안에서 예수를 바르게 알고, 예수만을 찾는 부활의 그리스도인답게 소망 있는 날을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근심하며 신변의 안전을 위해 다시 ‘안가’로 몸을 숨깁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덤가에 홀로 남아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는 두 천사를 목격합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여 있던 ‘머리 편’에, ‘또 다른 천사’는 ‘발 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울고 있는 마리아를 위로하고자 말을 건냅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 갔습니다. 그리고 그 시신을 어디에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합니다.” 이 말을 하고 난 마리아는 자신의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기척’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얼른 뒤를 돌아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예수님의 실체를 보고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부활은 육신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식을 가지고 부활합니다. (눅 24:39~43절)에 의하면 부활한 예수님은 제자들에 대한 과거의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모습이 영광의 모습으로 변형되어 부활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것은 두 가지로 그 효력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대속의 효력이 우리에게 죄 사함으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는 부활로 그 효력이 나타납니다. 특히 부활은 두 가지로 그 모습이 나타납니다.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며, 죄 없는 자의 모습이었던 원래 아담의 모습으로 회복됩니다. 부활의 참뜻을 바르게 알고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그날을 위해 남은 자의 수를 속히 채우는 그리스도인, 부활의 그리스도인답게 고통의 날이 아니라 기쁨의 한 날을 살아가는 소망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5~17) 잘못된 편견과 판단을 앞세워 복음을 변질시키지 말고 부활의 참 소망을 바르게 증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길을 걷는 부활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은 시신을 찾고자 하는 마리아를 향해 뒤에서 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마리아야!” 그 음성은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눅 24:5)에 보면 예수의 시신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근심하고 있던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을 향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며 책망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그토록 찾던 자신을 만지지 못하도록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예수님의 모습이 아직 완전히 거룩한 모습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거룩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을까요? 아닙니다! 잘못된 편견과 판단은 자신의 신앙을 흑암에 가두어버리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우리의 ‘대속의 값’이 되어주시고, ‘영생의 길’을 열어주신 부활의 예수님은 이 땅에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죄 사함’과 ‘영생’의 사역을 제자들이 계속 이어가도록 자신의 영인 ‘보혜사’를 내려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이 땅에 머물도록 붙잡는 마리아의 행동이 이런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자제시켰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운 편견과 판단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부활의 참 예수를 만날 수 없습니다. 잘못된 편견과 판단을 앞세우면 복음이 변질됩니다. 부활의 참 소망을 바르게 증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길을 걷는 부활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8) 자신의 만족을 구하는 것보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헌신과 희생과 사랑으로 자신의 모습을 세워 나가는 것을 더 기뻐하는 부활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의 부활이 ‘영생과 복락’을 말하는 ‘생명의 부활’이라면 그리스도가 함께하지 않은 자들의 부활은 ‘둘째 사망’이 기다려지는 ‘심판의 부활’(요 5:29)로 표현됩니다. 그러니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생명의 부활’에 이른 자는 이 땅을 살아갈 때 그 모습 또한 남달라야 합니다.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제자들을 향해 또 달려갑니다. 자신이 믿게 된 부활의 주님을 숨기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누리는 만족보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더 큰 사업이고, 더 큰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업을 통해 그리고 학업을 통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업을 일으키길 원합니다. 이런 환경의 터 위에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있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러니 (마 6:32)과 (33절)을 통해 주님께서 “너희는 불신자들처럼 너희 필요의 물질을 구하는 자가 되기보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누리는 기쁨보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헌신과 희생과 사랑으로 자신의 모습을 세워 나가는 것을 더 기뻐하는 부활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자신이 원하는 바를 쫓아가는 불나방과 같은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닮지 말고 영생과 복락의 영원한 비밀을 아는 예수님을 닮은 ‘부활의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예수를 닮은 부활의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숨기지 않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는 자, 이 땅에서도 상급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기다려지는 상급이 있습니다. 세상의 잘못된 편견과 판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며 복음을 변절시키지 말고, 부활의 소망을 바르게 증거하는 말씀의 군사가 됩시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걸음을 걷는 부활의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부활의 이 기쁨을 세상에 알리는 한 주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세상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며 날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사실을 알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백성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천국 백성이 되어
오늘도 부활의 소망을 바르게 증거하는 말씀의 군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를 닮은 부활의 그리스도인으로
부활의 기쁜소식을 함께 나누며
전하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제자들은 자신의 신변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며 안가로 숨었지만
마리아는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무덤가를 지키며 눈물 흘렸고
그 자리에서 천사를 만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뵙게 되었습니다
나 또한 내 안위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마음 다해 주님께 예배드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담대히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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