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하나님의 은혜로 - 레 1장 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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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주) | 레 1장 3~9절 | 하나님의 은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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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대표였던 아담의 원죄는 인류의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죄 가운데 태어나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 단절을 그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영생 복락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사 죄인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으며, 우리에게 영생 복락에 대한 회복을 언약합니다. 이런 언약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값’이 되어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메시아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어떤 역할을 감당할 것인지 ‘제사’라는 제도를 통해 그림자와 모형으로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알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번제’라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은혜를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번제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어떤 은혜를 발견하고 기억해야 할까요?
(3~4) 사람이 자랑삼을 것조차 본성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흠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오늘도 나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자는 죄에 대해 사함을 받지 못하고는 하나님께로부터 복 받는 것은 고시하고 그 죄로 인해 멸함을 당하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사 사람의 죄를 대속할 ‘짐승’을 선정해 줍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흠 없는 ‘소’와 ‘양’과 ‘염소’였으며, 대표성을 상징하는 ‘수컷’을 드리도록 합니다. 가난하여 이런 예물을 드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또다시 은혜를 베푸사 (레 1:14)에 의하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이를 대신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짐승들 머리에 안수를 통해 그 사람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아무 흠이 없다고 인정할지라도 어떤 짐승도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짐승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대속’의 제물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서 또다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예물로 인정하시고, 예물로 받으십니다. 죄가 전가된 그 짐승을 불로 태워 재가 되도록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속죄로 받으시며, 이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어제를 살아왔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도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가운데 서 있고, 또 서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5~8)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그리스도인답게 자신이 살아왔던 세속적인 방식을 단절하고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의 가치관을 세워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질 예물의 머리에 행한 안수는 그 사람의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는 효력을 발합니다. 안수하여 대속을 이룬 ‘수송아지’를 잡도록 합니다. 그리고 짐승의 ‘피’를 ‘회막 문 앞 제단’에 뿌립니다. 그다음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제단 위의 불 위에 올려 ‘내장’과 ‘정강이’와 함께 전부를 불태웁니다. 짐승의 ‘가죽’은 우리의 ‘겉모습’을 대변합니다. (롬 12:1)의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죄악 된 모습’이 벗겨져야 합니다. 그리고 ‘각’을 뜨는 것은 예물로 드려진 짐승의 몸 각 부위를 절단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의 제물로 드려진 예물이 잘 태워져서 끝까지 예물의 바른 가치를 발하도록 행한 조치입니다.
바울은 (고전 15:10)을 통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이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빌 3:8)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뒤 자신의 인간적인 가치와 판단에 의한 세상의 ‘가죽’을 벗어버립니다. 그리고 세상의 타락한 문화가 주는 즐거움과 같은 삶을 절단하며 ‘각’을 뜹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과거에 자신이 자랑삼았던 세상의 고상한 지식과 모든 것들은 죄악의 때가 가득 묻은 ‘배설물’과 같습니다. ‘가죽’과 같은 세상의 모습,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각’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불로 태워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의 가치관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9)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자신의 전인격을 하나님께 예물의 향기로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로 드릴 예물에 대해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게 한 다음,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어 제단에서 다른 번제물과 함께 태우도록 합니다. ‘내장’은 그 사람의 마음속의 ‘생각’이나 ‘감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 26:9)에서는 이것을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강이’는 다리 아래의 부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걸음’을 나타냅니다. ‘내장’과 ‘정강이’를 번제로 태우기 전에 먼저 물로 그것을 씻도록 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자신의 세상적인 삶의 흔적에서 나타나는 잘나고, 못난 모습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 세상의 묻은 온갖 죄와 허물을 씻어 내어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세워진 우리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기억하며 자신의 전 인격을 하나님께 예물의 향기로 올려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번제’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히 태우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 된 번제’를 상징하는 ‘올바른 헌신’과 ‘예배’는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합니다. ‘진실 된 번제’는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함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형식적인 헌신과 섬김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자아 그리고 자신이 자랑삼을 수 있는 것조차 모두 번제로 태워 하나님께 예물의 향기로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마 21:12~17)에 보면 예수님 당시 제사장을 비롯한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은 (레 1:3)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자신들이 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갈취합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예수님께서 매매상의 판을 엎고, 양과 염소를 파는 우리를 깨뜨려버립니다.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흠 없게 여겨 주셨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사람이 베푸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감정이 아니라 그 끝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은혜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는 신앙으로 달려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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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인인 나를 구원의 백성삼아주신 은혜
세상의 곁길로 가지않도록 날마다 나를 붙잡아주시는 은혜
부족한 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은혜
흠많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은헤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늘 한결같은 사랑과 은혜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와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조명해주고 있는 것 처럼
나의 삶도 날마다 하나님을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
오늘을 감사하는 신앙으로 달려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사람들 앞에서 괜찮아 보이고 싶은 욕심도 태우고
내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심도 태워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내가 주님앞에 바로 서 있는지를 날마다 점검합니다
하루 24시간 나만을 지켜보시는 주님을 결코 무시하지 않고
주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동행하는 참된 기쁨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