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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나를 통해 나타내야 할 또 다른 모습 - 요 12장 9~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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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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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29~11

나를 통해 나타내야 할 또 다른 모습


(도입)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린 사건은 유대 사회에 대단한 이슈가 됩니다. 사람들은 죽었던 나사로가 정말로 살아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모여듭니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알리는 문으로서 역할을 감당합니다. 

    우리에게는 두 모습이 있습니다. 한 모습은 병들어 죽었던 나사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모습입니다. 또 다른 한 모습은 믿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지금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값’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의 모습을 통해 이를 비춰봅시다.


(9) 세상의 영혼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발견하고, 그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라는 고백이 흘러나오도록 자신이 여기에 대해 산 증거물이 되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 나운 충격적인 사건이 온 베다니에 알려집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 고을로 삽시간에 퍼집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로 모여 논의합니다. 대제사장 가야가 말합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11:53)에 의하면 이날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그곳을 잠시 떠나 빈 들 가까운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머뭅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유월절 엿새 전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에 이릅니다. 유월절을 맞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큰 무리가 베다니 나사로의 집으로 모여듭니다. 

    이유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나사로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혼들을 향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산 증거물이 되어야 합니다. (행 9:36)에 등장하는 욥바의 다비다는 예수의 이름과 그 값으로 살아갔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슬픔이 됩니다. 그의 선행을 들은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께서 다비다를 나사로처럼 살리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행 9:42)은 이 일로 인해 많은 욥바 사람이 “주를 믿더라”라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혼들로 하여금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발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라는 고백이 흘러나오도록 나사로처럼, 다비다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여기에 대한 산 증거물이 되어야 합니다.


(10) 불신의 세력들 앞에 자신의 신앙을 숨기지 말고 그들을 향해 오히려 당당하고 분명한 믿음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끝을 맺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유대 사회를 이끌어갔던 종교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은 종교 지도자들의 바르지 못한 신앙관에 큰 경종을 울려주는 사건이 됩니다. 왜냐하면 죽은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했기에 나사로의 존재는 예수가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의 존재로 인해 자신들의 종교적 지도력과 자신들의 위치와 권위의 실추를 떠올립니다.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된 대제사장들이 주축이 되어 예수와 함께 예수가 하나님이요, 메시아라는 것에 대한 산 증거물이었던 나사로까지 죽일 것을 모의합니다. 

    뿌리의 근원과 열매까지 모두 제거하여 자신들이 입지를 지키려는 무서운 일을 모색합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불의한 세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색한 이유는 나사로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요, 메시아라는 것에 대한 증거물이 되었고, 증언하기를 멈추거나 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이 안식일 자신의 눈을 뜨게 한, 예수에 관해 말합니다. (요 9:33)에 의하면 자신이 당할 불이익을 알고도 바리새인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내 눈을 뜨게 할 수 없었으리라!” 불신의 세력들 앞에 자신의 신앙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향해 오히려 당당하고 분명한 믿음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1)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말씀의 신앙과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이 되는 삶의 등불을 밝혀 불신 가운데 놓인 영혼들을 일깨우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나사로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난 것과 함께 나사로가 취한 행동 때문입니다. (요 12:2)에 의하면 나사로는 자신을 살려주신 예수님을 위해 공개적으로 잔치를 열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예수를 드러내 보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일들이 그의 행동을 통해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나사로로 인해 유대교에 몸을 담았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은지 ‘사흘’이 아니라 ‘나흘’만에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보고 예수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합니다. 이 중심에 누가 있었습니까?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나사로처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두 가지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는 ‘말씀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습 1:12)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거짓된 가르침으로 영혼들을 병들게 하는 자들을 등불의 말씀을 밝혀 그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삶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등불을 밝히려면 기름과 그것을 밝힐 심지가 있어야 합니다. 등불을 밝힐 ‘기름’이 말씀이라면, ‘심지’는 태워지는 것으로 말씀에 따른 삶을 말합니다. ‘말씀의 신앙’과 함께 ‘말씀의 삶’이라는 ‘두 등불’로 불신 가운데 놓여 있는 영혼들을 일깨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신앙과 삶의 모든 여정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물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산 증거물이 되었던 요셉은 자신의 온 가족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는 주춧돌로 쓰임을 받습니다. 나사로는 불신의 세력들 앞에서 떨지 않고 자신이 어떤 상태였으며, 어떻게 살아났는지 증언을 말씀과 삶을 통해 증거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흑암으로 뒤덮인 세상이 어찌 스스로 깨달아 알겠습니까! 등불이 됩시다! 살아있는 등불이 되어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일깨우는 일에 쓰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죄사함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할까?

나의 삶이 변화되고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며
열매 맺기를 간구하며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백성을 확장시켜나가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를 원하며
세상의 영혼들을 일깨우는 일에 쓰임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의 등불과 삶의 등불로 증언하며
그분께 온전히 쓰임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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