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자 - 요 15장 15~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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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월) | 요 15장 15~17절 |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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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연합된 ‘포도나무 가지’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사랑을 담아내는 것만 아니라 ‘친구’라는 신분을 함께 가지게 됩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되시는 예수님의 성품을 담아내는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명칭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담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가지’가 된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눅 9:23)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라 행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 2:20)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자’, (요 15:4)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담아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살아가야 할까요?
(15) 주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자리에 세워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을 더 기뻐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측면에서 볼 때 예수님과 제자는 ‘친구’ 관계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롬 6:16)에서 밝히고 있듯이 아담의 죄로 인해 ‘죄의 종’이 되었고 ‘사망에 이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성자 하나님인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가능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켜 ‘죄의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낮아지심’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우리의 높이에 맞추는 ‘자기 비움’이라는 ‘낮아지심’이 있었기에 우리가 ‘친구’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속의 죽음’입니다. ‘거룩함’과 ‘죄인’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대속의 죽음’의 값은 죄인인 우리를 ‘거룩함’의 존재로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대속의 죽음’ 안에서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게 됩니다. 주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자기 비움’과 ‘대속의 값’을 통해 ‘친구’ 삼아주셨습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이런 공식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만들어낸 결론입니다.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것을 더 기뻐하는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가치관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을 기뻐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우리를 주님은 자신이 가장 기뻐하는 친구로 삼아줍니다.
(16)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기억하며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어가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택함을 받은 것”과 “세움을 받은 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제자들의 선택 또는 그들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도록 합니다. 제자들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되고’, ‘세워진 것’은 어떤 자격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것도 여기에 부합하는 조건은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뿐 아니라 이 시대 위에 세워진 우리의 구속사는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목적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특별한 계획과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축약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을 것’을 계획하고 목적한 가운데 우리를 택하고, 이 시대 위에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두 번째는 ‘열매가 항상 있게 할 것’을 계획하고 목적한 가운데 우리를 택하고, 세우셨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행 1:8)의 말씀처럼 ‘가라’라고 명하신 것에 대해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항상 있도록 (마 28:20)의 말씀처럼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양육 사역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지지 못하고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목적에 부합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결실 맺어가는 사역에 진심으로 다가서는 이 시대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17)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계명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아가페 사랑으로 자신을 세워나가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막 10:35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사’를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차지할 영광과 위치를 탐하며 서로 다투기까지 합니다.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주의 영광 중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기를” 간청합니다. 이런 소리를 들었던 제자들의 반응이 (막 10:41)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예수님께서는 대속을 이루기 위한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이런 제자들을 향해 마지막 고별설교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형제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아가페의 사랑’은 인위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가페 사랑’을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명령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회개신앙’을 바탕으로 나타나는 ‘아가페의 사랑’은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계명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가운데 있다면, 이웃을 향한 사랑은 죄악 가운데 놓인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계명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아가페 사랑’으로 자신을 세워나가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사랑의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고별설교에 제자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가페의 사랑’은 인위적인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신앙의 인격’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자신을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인격’은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을 더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세워진 자는 ‘아가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가슴을 가지게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오늘도 하나님 나라 결실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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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두 마음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켜 참된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되어
아카페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적인 것에 동요되지 않고
세상적인 즐거움과 요행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지켜 준행하고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는 일에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며
세상의 영혼들을 귀히 여기고
공동체에 아가페의 사랑을 전하기를 원하며
나의 삶은 날마다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아가페의 사랑을 전하여
하나님 나라의 결실을 맺어가는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자신을 비우시고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종이 아닌 친구의 자리로 세워 주셨으며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주님의 친구로 삼아주신 그 은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길 원하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서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