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참된 소망 - 요 3장 16~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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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월) | 요 3장 16~21절 | 참된 소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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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대해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소망 가운데는 잘못된 것을 구하는 ‘죄 된 소망’이 있는가 하면, 결코 바래서는 안 되는 ‘허황된 소망’도 있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바라는 소망, 풍성함으로 결실을 맺기 위한 소망 등 많은 소망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소망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 되는 ‘참된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구하는 소망 가운데는 구원과 관계가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가장 큰 소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구원은 인간의 거듭남인 죄 사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죄 사함이라는 거듭남은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케 하는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또한 말씀합니다. 니고데모에게 참된 소망을 가지도록 가르침을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이미 천국을 예비해 놓은 최고의 참된 소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 땅을 어떤 성도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16~17) 타락한 세상이 주는 부귀와 영화를 바라보다가 멸망의 자리에 서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영생의 완전한 문을 열어주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속히 오시기를 소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만의 천국과 구원을 말하던 어리석은 무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랑하는 자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들, 지혜자와 야만인이라고 일컫는 무리 가운데도 있습니다. 유대인들과 같은 자들은 자신들만이 천국 백성이라며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있고, 힘과 권세를 가진 자들은 세상을 손아귀에 거머쥐려고 온갖 노략질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누가 일깨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세상을 일깨우고, 영생의 완전한 문을 열어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하셨는지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믿는 자로 하여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심판을 면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범한 아담을 버리고 새로운 아담을 창조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자녀의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택한 백성’을 말합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인류와 피조 세계 가운데 악이 만연해 있습니다. 죄를 범하고, 악을 도모하는 일은 배우지 않아도 이미 숙달된 것처럼 잘합니다. 죄로 인한 인간의 전적타락과 전적부패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상이 주는 부귀와 영화를 바라보다가 멸망의 자리에 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소망이 없습니다. 영생의 완전한 문이 열리는 그날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속히 불러 모으는 참된 소망의 길을 걷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8~19) 심판이 단행되는 백보좌에서 생명의 책이 펼쳐지는 그날을 바라보며, 그날에 있을 영생을 꿈꾸는 참된 소망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구원은 백보좌에서 심판이 단행되기 전,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효력을 발합니다. (살전 5:23)의 말씀처럼 우리로 하여금 죄로 인해 해를 받지 않도록 하며, 우리의 영혼을 흠과 티가 없도록 ‘거룩하게’ 보존해 줍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를 모든 위기에서 구출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 않는 자들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져 있으니 그들은 세상 속에서도 이미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 23:27)의 말씀처럼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죽은 시체와 더러운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의 모습이 얼마나 악한 짓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영이 그를 사로잡아버렸으며, 악한 영이 뿌려놓은 음란과 타락의 맛에 길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악한 자들은 진리보다 음란하고, 타락한 어둠을 더 사랑하지만 우리는 종말의 백보좌에서 펼쳐질 생명의 책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이름이 그 책에 기록된 것을 세상의 부귀와 영화보다 더 기뻐하고 그날에 있을 영생을 꿈꾸며 세상을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0~21) 사탄의 거짓된 논리를 미워하며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쫓아가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빛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기뻐하는 참된 소망의 가치를 실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죄는 자신의 치부를 감추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흠을 다른 사람에게 원인을 돌리며 위안을 받으려 합니다. (창 3:7~13절)에 의하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불순종이라는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 번째 변화된 모습은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고 자신들의 몸을 숨기는 행동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신들의 죄에 대해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핑계와 변명 그리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라고 했던 그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책임을 떠넘깁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두 가지의 본능적인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자신의 죄를 드러나게 하고, 회개하도록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을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의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공개되기를 원하지만 악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은폐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우리는 사탄의 거짓된 논리를 미워하며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쫓아가는 일에 힘을 다해야 합니다. 빛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세상을 향해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빛으로 역할을 감당하는 (계 11:3)의 ‘두 증인’처럼 빛의 권세를 가지고 어둠을 밝히는 참된 소망의 가치를 실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석회로 돌무덤의 문을 색칠한다고 무덤 안에 있는 썩은 시체와 더러운 것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타락한 세상이 주는 부귀와 영화라는 소망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회칠한’ 썩은 말씀으로 거짓 선지자들을 앞세워 오늘도 영혼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밝히는 (계 11:3)의 ‘두 증인’과 같은 참된 소망의 가치를 가진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참된 소망의 빛을 세상 가운데 흘려보내는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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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참된 소망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나아갑니다
타락한 세상을 비판하기보다
이 나라의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날이 되기를 원하며
사탄의 거짓된 논리를 멀리하고 미워하며
참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쫒아가는 삶이 되기를 원하며
이 땅에 남은 자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잘 감당하기를 원하며
백보좌 심판 때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진 그날을 바라보며
영생을 꿈꾸는 참된 소망으로 이 땅을 살아가기를 원하며
참된 소망의 빛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기쁨의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종말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펼쳐질 생명의 책을 사모하며
그날 누릴 영생을 소망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며
믿음으로 굳게 서는 성도가 되기를 다짐합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내 영혼을 채우시고 그 은혜가 샘솟는
기쁨으로 넘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