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말씀의신앙 - 요 4장 46~5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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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금) | 요 4장 46~54절 | 말씀의 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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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이릅니다. 그곳은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곳이며, 예수님께서 첫 번째 표적을 행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표적과 기사 등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한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이런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 그는 관리였습니다. 왕의 신하였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을 병에 걸린 것을 가슴 아파하며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관리의 아들을 치료하는 장면은 일반적으로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이라는 접목 점을 가지고 치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관리의 아들을 치료하실 때 어떤 물질 또는 표적과 기사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신앙으로 그의 아들을 치료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예수님께서 관리의 아들을 치료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떤 믿음, 어떤 신앙의 모습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46~49) 표적과 기적을 바라보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앙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찾아온 한 사람은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고위 관리였습니다. 그 고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아들이 무슨 병명인지 알 수도 없는 희귀한 병에 걸려 죽을 지경에 이릅니다. ‘왕의 신하’로써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그는 자신의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뜁니다. 당시 유명하다고 소문난 의사들로부터 자신의 아들을 치료합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나을 수 있을 것이야!”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치료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허무함이었습니다.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때 그 관리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는 최후의 선택을 합니다. 체면과 지위를 떠나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청하옵기는 부디 저희 집에 오셔서 죽음 일보 직전에 놓인 아들의 병을 고쳐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을 비롯한 유대인들 그리고 ‘왕의 신하’를 비롯한 갈릴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공통점을 신적 통찰력을 통해 발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들은 ‘표적과 기사를 구하는 것’이 그들의 중심에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이한 것들을 보지 않으면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구나!” 일침을 가합니다. 표적과 기적을 바라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신앙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50~52) 참된 기적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나아갈 때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신앙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표적과 기사를 구하는 ‘왕의 신하’를 통해 가르칩니다. ‘왕의 신하’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를 회복시킬 표적과 가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볼 때 ‘왕의 신하’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통해 아이가 치료를 받았다면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이 아니라 표적과 기사였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통한 증거는 얼마 가지 못합니다. 이런 증거는 또 다른 표적과 기사에 묻혀 언제든지 안개와 같이 사라질 소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하게 치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아이가 회복되었다면 내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과 함께 예수의 복음이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울려 퍼지게 됩니다.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그를 먼저 ‘믿음의 사람’으로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온 길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갈릴리까지는 왕복으로 약 60Km가 넘는 거리였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떠날 수 없는 발걸음이었습니다. 관원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종으로부터 소식을 듣습니다.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심겨준 믿음을 가슴에 안고 말씀을 믿고 그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참된 믿음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발걸음을 내딛는 속에 맺혀진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53~54)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은 온 인류를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왕의 신하’는 아이의 나음이 자연적인 치료의 효과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한 회복의 역사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아이가 낫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인가?” “예!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나았습니다” ‘왕의 신하’는 아이를 예수님께서 치료하신 것을 확신합니다.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는 ‘체험적 신앙’이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표적과 기사를 구하는 신앙은 ‘어린아이 때의 신앙’입니다. 달리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장성한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표적과 기사의 신앙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신앙은 그 온 집안으로 하여금 믿음을 가지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마치 달려가는 경주자와 같은 신앙의 모습을 가집니다. 이런 장성한 분량의 ‘말씀의 신앙’은 온 인류를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적용)
표적과 기사를 추구하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신앙으로는 마지막 때를 결코 이겨내지 못합니다. 말씀의 신앙은 이사야 선지자처럼, 사도 바울처럼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사용하소서!”라며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합니다. 표적과 기사를 추구하는 신앙은 또 다른 표적과 기사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사탄의 밥이 될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사탄은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그리고 그를 넘어뜨려 자신의 수족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여 사탄의 공격을 단호하게 물리치게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말씀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이미 인류를 향해 축복하신 그 축복의 열매를 가장 풍성하게 결실하는 주인공이 되게 합니다. 말씀의 신앙은 하나를 통해 모든 것을 얻는 축복의 신앙입니다. 말씀의 신앙으로 단단히 무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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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말씀 묵상을 하면서 팔십평생을 절에 다니셨던 분이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수요예배 때
처음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께 기도를 받으면서
온 몸이 뜨거웠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 성도님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살려주실것이라고 의사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수술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는 병이 오진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불과 일년전의 일이지만 그 성도님은
매주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며
온 가족을 전도하고자 하시며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십니다
60년동안 절에 다니던 큰 딸을 전도하였고
지금은 막내 딸과 같이 세분이
매주 교회에 오시는 그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그 분들이 말씀을 알아가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믿음으로
선포되어지는 그 입술을 통하여서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합니다
오늘도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가기를 원하고
배워가기를 원하며
이 진리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파하여
죽어가는 영혼들을 일 깨우는 일에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표적과 기사만을 기대하며 마치 하나님과 거래하듯 계산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던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도는 사탄이 시험하고 넘어뜨리려는 틈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은 벗어버리고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하여 사탄의 모든 공격을 단호히 물리치는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겠습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사용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