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두 갈레길 앞에서 = 신 11장 26~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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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화) | 신 11장 26~32절 | 두 갈래길 앞에서 |
11: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11: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11: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11: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11:30 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11:31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 11:32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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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막론하고 자신 앞에 놓인 길을 갈 때 다른 두 길을 한 사람이 동시에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한 길만이 선택이 되고, 선택된 그 길을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생 앞에는 ‘두 갈래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그 ‘두 갈래길’ 앞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길을 가야 ‘그 길’이 복된 길인지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경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눈앞에 놓인 ‘두 갈래길’에서 어떤 ‘한 길’을 선택하는 장면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람은 자신의 아들과 같은 롯과 분쟁을 막기 위해 롯으로 하여금 자신이 거할 땅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롯은 자신 앞에 놓인 땅 가운데 ‘요단 지역’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눈으로 볼 때 ‘여호와의 동산 같고’, 풍성함의 상징이었던 ‘애굽 땅’과 같은 곳을 택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죄악으로 멸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입성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합니다.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노라!” ‘두 갈래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 앞에 놓인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가나안을 살아갑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선택의 걸음으로 자신의 여정을 걸어가야 할까요?
(26~28)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여정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이 있을지라도 세상 소리에 솔깃하지 말고 여호와의 명령을 듣는 것을 더 기뻐하는 영적 성도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눈앞에 둡니다. 이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26절) 그리고 이어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27절)과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28절)라는 말씀을 줍니다. 두 가지 사실에 대해 분명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복’과 ‘저주’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복은 다른 것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1편의 기자는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여정이 저주와 같습니까? 아니면! 화려하고 멋진 여정이었습니까?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 아쉽기도 하고, 미련이 남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너희 앞에 두나니”와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신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은 과거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과거는 비참하게 무너졌을지라도, 불신자의 길을 걸었을지라도, 과거를 가지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세상 소리에 솔깃하지 마십시오. 지금입니다. 지금부터! 복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을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명하신 바를 지켜 준행하여, 약속의 말씀대로 복의 중심에 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9~30)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흔들리지 않는 말씀의 증인으로 그 길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언약공동체인 이스라엘을 향해 한 예식을 취하도록 명합니다. 그리고 그 예식을 통해 주어진 말씀에 대해 ‘두 산’을 증인으로 채택합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입니다. (신 27:12)과 (13절)에 의하면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유다’와 ‘잇사갈’, ‘요셉’과 ‘베냐민지파’는 ‘그리심 산’에 서도록 합니다. 그리고 ‘르우벤’과 ‘갓’, ‘아셀’, ‘스불론’, ‘단’과 ‘납달리지파’는 ‘에발 산’에 서도록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마음이 변하여 엉뚱한 소리를 할 수 있지만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은 이 땅이 없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변함없는 증인이 될 것을 말합니다. 고대 역사를 살펴보면, ‘산’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땅의 지형보다 높이 솟아 올라 있어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산들은 하늘에 위치한 신과 교통을 가장 가까이에서 할 수 있는 장소로 믿어졌습니다.
또 하나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를 설명하기에 두 산은 아주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그리심 산’은 남쪽에 위치하여 햇볕이 잘 들어, 나무가 울창한 반면, 북쪽에 위치한 ‘에발 산’은 정반대였기에 축복과 저주를 설명하기에 아주 적합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는 흔들림이 없는 ‘그리심 산’과 ‘에바 산’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만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반쪽짜리 말씀이 아니라 저주를 함께 말할 수 있는 ‘양날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계 20:13~15)은 말합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세상을 향해 진리의 말씀을 증거합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세상을 향해 흔들리지 않는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31~32) 자신이 걸어가는 길 앞에서 선취적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실천하여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선취적 신앙’에 대한 ‘세 가지’의 확신을 가지도록 합니다. 첫 번째는 ‘건너’입니다. ‘요단강’을 건널 것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물이 불어나 급물살을 이뤄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그 ‘요단강’을 건널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합니다. 두 번째는 ‘차지할 것’에 대한 확신입니다. 가나안의 강력한 연합군들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동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대항한다는 것은 불 속에 뛰어드는 메뚜기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들어가서’와 ‘차지하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복했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합니다.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31절)
세 번째는 ‘거주할지라’입니다. 그 땅을 차지한 것이 잠시 동안이 아닙니다. ‘거주한다’는 것은 나그네 또는 종의 모습이 아니라 주인 된 자로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아무리 차지하여 거주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 자의 차지는 그 차지가 결국은 빼앗기는 처지로 변하게 됩니다.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32절) ‘선취적 신앙’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지 (마 6:33)은 말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선취적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실천하여 열매 맺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룻 1:16)에 의하면 남편과 두 아들 모두를 잃어버린 나오미가 자신의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에게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합니다. 이때 자신의 인생 앞에 놓인 두 갈래길에서 ‘오르바’는 눈물을 흘리며, ‘모압’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룻’은 우상숭배의 땅인 모압을 버리고 자신의 시어머니를 따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런 신앙의 결정을 내린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인생의 두 갈래길 앞에서 망설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부여잡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준행하면서 답을 찾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심과 에발의 양날의 검의 말씀을 마음 판 깊숙이 새기며 하나님께서 명한 길을 선택하고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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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요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않고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법도와 규례를 반드시 지키면 차지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도 신앙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것처럼
여호와의 법도와 규례와 계명을 잘 지켜 행하는 성도의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복과 저주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 말씀을 지키고 행함이
있는 신앙이 되어 하나님 안에서 답을 찾는 참 된 신앙이 되기를 워합니다
말씀이 없는 삶과 신앙은 세상가운데 무너집니다
나의 마음판에 말씀의 무기를 단단하게 세워
악하게 변질되어가는 세상
각종 우상이 난무하는 세상
마귀의 울음소리가 도처에 깔린 세상
지금 이 시대에 오직 살길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저주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신실한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행함이 있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