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

(2월 28일) 하나님이 원하는 열린 문 - 겔 48장 30~35절

페이지 정보

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28()

4830~35

하나님이 원하는 열린 문


(도입)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줍니다. 환상 가운데는 성전과 함께 열두 지파의 기업에 대한 분배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분배를 말씀할 때 첫 번째 순서는 ‘성소’를 둘 자리를 선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수종 드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거주할 곳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왕에게 기업을 허락합니다. 이유는 백성들의 것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땅을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기업으로 주도록 명합니다. 이런 기업의 분배는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적용되었던 방식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열두지파의 기업에 대한 분배를 설명한 다음 에스겔서는 마지막으로 그들이 거하는 성읍에 ‘열두 문’이 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열두 지파가 거주할 성읍의 문을 마지막으로 거론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북쪽, 동쪽, 남쪽, 서쪽 성읍의 문을 설명하면서 방향마다 문이 세 개인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문마다 각 지파의 이름을 거명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이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을까요?


(30~31) 책임을 다하는 하나님 나라의 신앙관을 가지고 세상을 정의롭고, 공의롭게 만들어가며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힘 있게 감당하는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겔서는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성읍과 성읍의 ‘열두 문’에 대한 것을 거론합니다.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이 달린 성읍은 두 가지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읍은 대적들로부터 침노당하지 않도록 보호막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풍요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저장고의 기능을 감당합니다. 이런 성읍에 ‘열두 문’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으로 세우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외에는 이런 축복을 누릴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런 문에 특이한 점이 발견됩니다. ‘북쪽의 세 문’에 기록된 르우벤과 유다, 레위는 마치 첫 열매처럼 하나님께 드려진 장자의 위치에 있는 지파였습니다.

    르우벤은 혈통의 장자였습니다. 그리고 (창 49:10)에 의하면 유다는 왕을 배출하고, 오실 메시아를 배출할 ‘언약의 장자’였습니다. ‘레위’는 (민 3:12)에 의하면 열두 지파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진 지파였습니다. 따라서 레위는 ‘종교적 장자’로 불립니다. 육신적으로, 언약의 관점에서, 영적인 관점에서 장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신앙관을 가지고 공동체를 정의롭고, 공의롭게 만들어가는 일에 헌신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읍에 출입하는 문에 지파별 이름이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문, 책임을 다하는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정의롭고, 공의롭게 만들어가는 일에 헌신적인 ‘장자의 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힘 있게 감당하는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


(32~34) 세상의 헐벗은 영혼들을 편견하지 말고 구원과 위로의 문이 되어주시고, 소망의 문이 되어주시는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역할자로 쓰임 받는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


네 방향의 문에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각 방향에 기록된 이름들이 야곱이 자신의 아들들을 낳았을 때 그 아이들을 낳은 어머니의 계통을 중심으로 서로 묶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북쪽’은 레아, ‘동쪽’은 라헬과 여종 빌하 그리고 ‘남쪽’은 레아, ‘서쪽’은 여종인 실바와 빌하의 아들이 그 문에 기록됩니다. 각문마다 지파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이 문의 주인은 그 이름이 새겨진 자의 것입니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에 그 문의 이름에 야곱의 아내의 여종이었던 빌하와 실바로부터 낳은 아들들도 그 이름들이 동일하게 기록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자의 자식’이라고 차별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동일하게 그 문에, 그 이름을 기록합니다.

    중요한 지파라고 좋은 문을 주거나 다른 지파보다 많은 문을 주지 않았습니다. ‘북’, ‘동’, ‘남’, ‘서’는 차별된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문의 방향은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파마다 동일하게 각각의 문이 하나씩 허락되었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공평성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특히 사방의 길이가 동일하게 ‘사천오백 척’인 것은 어떤 편견도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위로의 문이요, 소망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께로 영혼들을 인도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역할자로서의 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편견의 문으로 세상을 향해 닫힌 문이 된다든지, 장애물이 되는 문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서자의 자녀 같은 나를 주님께서는 영광의 문이 되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헐벗은 영혼들을 소망 되시는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역할자로 쓰임 받는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


(35) 자신만이라는 이기적인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함께라는 헌신 된 신앙의 자세로 공동체와 형제들이 축복의 중심에 서도록 하나님 중심을 만들어가는 일에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처음 보여줬던 환상은 하나님 앞에 불의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강력한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를 마치는 마지막 장과 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합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여호와삼마’는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가장 큰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날 이후로는” 심판받은 과거의 성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새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는 두 가지의 의미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바벨론 포로로부터 회복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첫걸음을 시작한 날을 말합니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신앙을 걸어가는 자에게는 ‘여호와삼마’의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만’이라는 이기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함께’라는 헌신 된 신앙의 자세로 ‘여호와삼마’를 이뤄가야 합니다. 공동체와 형제들을 축복의 중심에 서도록 ‘하나님 중심’을 만들어가는 일에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는 문을 만들어가는 일에 몸부림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세상을 보십시오! 얼마나 불의하고, 음란하고, 타락하였습니까! 세상은 여기에 한술 더 떠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을 성공한 자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념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장자의 신앙관으로 비뚤어진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바르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편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잣대를 자신에게 그리고 공동체 위에 만들어가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삼마’의 축복이 우리 모두 위에 임하도록 헌신하는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열두 문, 열두 지파
나는 하나님이 원하는 문에 들어가기 위하여
날마다 몸부림 치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위하여 책임을 다하는 신앙관을 가지고
불의하고 부정하고 타락한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할 수 있도록
세상을 정의롭고 공의롭게 만들어가는데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신앙관에 비추어 올바르게 바라보며
세상의 헐벗은 영혼들을 나의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행함이 있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내 개인이 아니라
신앙의 공동체를 잘 만들어 가는 조화로운 신앙이 되기를 원하며
언제나 하나님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영적인 일꾼이 되어 섬김과 헌신의 수고를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나는 주님을 믿음으로 이미 성공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언제나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주어진 사명에 책임을 다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결단합니다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성경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는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성경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FAMILY

CONTACT

  • 주소 : (48054)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반로 113-15(재송2동 1060-2)
  • TEL : 051-783-9191 / FAX : 051-781-5245
  • Copyright © 2023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
  • 카카오뱅크 3333-28-3057838 예금주 : 바티스
  • 우체국 601252-02-199260 (황영선-바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