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예수님은 누구신가 - 요 1장 9~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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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주) | 요 1장 9~13절 | 예수님은 누구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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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마 4:21)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세베대’였으며,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겼던 세 명(베드로, 요한, 야고보)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였으며, 십자가의 증인이었고,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이런 요한이 자신이 따랐던 예수님이 누구인지 증거합니다. 요한이 증거하는 출발은 예수님이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분이셨으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분명해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 흔들림이 없어야 이단의 사슬에 넘어짐을 당하지 않습니다.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요?”
(9) 예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흑암의 세상을 밝히기 위해 참 빛과 구원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요, 구원의 주님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요한은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예수’로 오신 성자 하나님을 가리켜 “참 빛”이라고 말합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참 빛’이라는 것은 ‘영적 흑암’에 사로잡힌 죄악 된 사람의 상태를 비춰보게 합니다. ‘참’은 ‘거짓’ 또는 ‘가짜’와 반대됩니다. 그리고 ‘빛’은 두 가지의 역할을 합니다. 밝히는 역할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어 효력을 발하는 역할입니다. 요한은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은 ‘참 빛’의 증거를 통해 두 가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적으로 미혹 가운데 놓인 세상을 밝힐 구원의 참된 길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으로써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참 빛’을 각 사람에게 비춘다는 것은 두 가지를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류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영혼들은 ‘영적 흑암’에 뒤덮여 자신들이 죄악 가운데 놓여 있다는 것과 사망의 저주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구원과 관련된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택하심 가운데 이루어지며 구원의 빛은 택함을 받은 그를 향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효력을 발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흑암의 세상을 밝히기 위해 ‘참 빛’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빛’으로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요, ‘구원의 주님’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0~12) 예수님은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은혜의 주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혜’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라는 것과 ‘만왕의 왕’이신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비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요한은 증거합니다. “그분이 세상에 계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신 주님을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영적 지각이 뛰어나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대제사장들도 여기에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주님을 배척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모멸과 고난을 감내합니다. 여기에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사랑하심’의 속성이 발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구원과 관련하여 ‘영접하는 자’ 그리고 ‘그 이름을 믿는 자’를 ‘능동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세주를 영접하는 데는 사람의 의지가 분명히 능동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자녀의 권세는 그 사람의 노력에 따른 결과가 아닙니다. “주셨으니”라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인격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엡 2:8과 9절)은 증거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님은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은혜의 주님’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13)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내가 새 사람이 되도록 기원과 동기와 원인과 이유가 되어주셨으며 이 모든 것들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요, ‘대속의 주님’이셨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자들을 가리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친자녀’가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이었던 ‘옛사람’은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골 3:10)은 ‘새 사람’을 가리켜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신적 기원을 통해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나는 예수님과 연합하게 됩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이 나에게 기원이 되고, 동기가 되고, 원인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과 부활하심이 나에게 효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죄인이 아니라 근본이 바뀐 상태를 말합니다. ‘난 자들’에게 사용된 것은 수동태입니다. 여기서 요한이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새언약’ 가운데 놓인 ‘사람의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내가 ‘새 사람’이 되도록 ‘기원’과 ‘동기’와 ‘원인’과 ‘이유’가 되어주셨다는 것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요, ‘대속의 주님’이셨다는 것과 이 모든 것들을 친히 완전하게 이루신 ‘성자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 앞에 세 가지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구세주인 ‘예수’로 오셨고, ‘그리스도’로서 모든 것들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기억하면서 ‘구원의 주님’, ‘은혜의 주님’, ‘대속의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주님의 세 가지 모습이 ‘하나님의 은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 또한 잊지 않아야 합니다. 흑암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세상의 영적 흑암은 ‘구원의 진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구원과 심판을 완전하게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속히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그때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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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나는
예수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예수님은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분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이 분명하여야 하며
말씀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이 땅을 밝히기 위해
참 빛과 구원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구원의 주님이며 성자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믿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 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은혜의 주님은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고자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구원과 심판을 완전하게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기에
이 땅에 남은 자로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를 원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그 때를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나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그 구원의 주님을 어제보다 오늘은 더 사랑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깨닫는 자 되어 오늘도 주님과 온전히 교제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