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진리의 증인이 되자 - 요 3장 10~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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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주) | 요 3장 10~15절 | 진리의 증인이 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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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과 사건에 대해 증인이 된다는 것은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의 중심의 축을 이루고 있는 ‘사복음서’ 가운데 요한복음에서만 등장하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요한은 여기에 대해 증인으로 이 사건의 본말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인물은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입니다. 그는 유대인의 ‘선민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율법 교사였습니다. 이런 니고데모가 구원론과 관련하여 갈등합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유대민족’만의 구원론을 자랑삼았던 ‘선민사상’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죄 사함에 따른 구원론을 전하는 예수님의 가르침 앞에 갈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세상은 니고데모처럼 ‘자기 지식’과 ‘자기 사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인 ‘예수’로 이 땅에 성육신하셨고, ‘그리스도’로 대속의 완성을 이룬 진리와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진리를 기독교라는 종교단체가 만들어낸 ‘그 집단의 교리’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향해 진리의 증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10~11)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의 지식으로 추론하고 판단할 말씀이 아니라 우리를 밝혀보게 하는 진리의 거울이라는 것을 세상 가운데 증거하는 진리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을 어머니의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했던 니고데모는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정말로 많이 배웠고, 인격도 남달랐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율법 선생이었습니다. 이런 니고데모가 ‘성령으로 거듭남’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선민사상’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가 충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선택’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유대 사상은 민족적 구원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유대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선민사상’입니다. 두 번째는 구원의 조건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들의 ‘선민사상’에는 ‘회개’와 죄사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하였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구원과 관련하여 두 모습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한 분류는 ‘아는 것’과 ‘본 것’을 증언하는 분류에 있는 자이며, 또 한 분류는 ‘증언을 받지 않는 분류’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구원은 ‘혈통’을 앞세운 ‘민족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각자의 구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의 지식으로 추론하고 판단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밝혀보게 하는 진리의 거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하나님 편’에서 선택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이 진리를 세상 가운데 바르게 증거하는 진리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12~13) 세속에 영혼이 팔려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세상의 영혼들을 끝까지 돌아보며 하늘의 일을 증거하는 진리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거듭나는 중생의 원리가 유대인 방식의 ‘선민’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선택한 ‘선민’이며, 여기에는 반드시 죄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어떤 거듭남의 효력도 없다는 이 진리의 말씀에 대해 세상은 유대인들처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죄 사함을 이루기 위한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과 대속을 이룬 ‘십자가’ 그리고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부활’이 지금까지 땅에서 이미 진행되었고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 대해 (마 27:54)의 ‘백부장’이 증인이었으며, (막 16:9)의 ‘막달라를 비롯한 여인들’이 증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눅 24:13 이하)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증인이었습니다. (요 20장)의 예수님의 ‘열한 명의 제자’가 증인이었고, (고전 15:6)의 ‘오백여 형제’가 증인이었습니다.
그 외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 땅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죄악 가운데 놓인 인간의 완악함은 자신들이 눈으로 본 사실조차 왜곡합니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역사 가운데 이미 일어났던 ‘땅의 일’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장차 도래할 ‘예언의 말씀’인 성취될 ‘하늘의 일’을 믿게 습니까? ‘땅의 일’도 믿지 않으려는 자들을 어떻게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가능과 불가능을 판단하여 포기할 자는 포기하고, 가능한 자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구원할 택한 백성의 영혼을 세상으로부터 건져내는 일을 어떤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런 모습을 담아내며 ‘하늘의 일’을 증거하는 진리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14~15)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바르게 증거하는 진리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구원에 대해 증거하면서 모세 때에 있었던 ‘놋뱀’ 사건을 말씀합니다. 자루에 달린 ‘놋뱀’을 믿음으로 바라본 자들이 죽음으로부터 건짐을 받은 것처럼 죄인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구원 받을 것이며, 이런 십자가 사건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을 증거합니다. ‘인자’가 십자가에 들려진 것은 자기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죄인인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대속을 이룬 십자가를 믿는 자는 구원 받을 것이며, 이 구원이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님의 본질을 바르게 증거하면 ‘죽은 자’에서 ‘살은 자’로 ‘저주’에서 ‘영광’의 자리로,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자만이 이런 효력을 얻게 됩니다.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기복신앙으로 도색하고,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 구원의 길이 펼쳐지지 않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루신 죄 사함과 구원의 완성을 이룬 십자가 그리고 보혈이 증거하고 있는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바르게 증거하는 진리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진리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흔들리지 않는 말씀의 신앙, 신본주의로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진리의 증인을 특별히 지키며, 은혜 장중에 이끌어갑니다. (창 5:24)의 에녹을 그렇게 하셨으며, (렘 1:7 이하)의 예레미야와 (겔 2:6)의 에스겔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세속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먹고 있는 세상의 영혼들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택한 백성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세상의 영혼들을 끝까지 돌아보며 하늘의 일을 증거하는 진리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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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세상을 향해 나는 진리의 증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여야 할까?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참된 진리의 말씀에 갈급한 현실을 바라보며
이 시대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은 무엇일까?를 묵상해봅니다
감성을 자극하는 프로그램
세상적인 방법과 접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세상의 영혼들에게 참된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를 원하며
참된 진리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나는 말씀알기에 힘쓰며
그 말씀이 나의 삶이 되어
말씀의 향기를 이 땅에 전하여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어둠에 갇혀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며
참된 진리의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