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영광의 담을 만들자 - 겔 42장 15~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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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금) | 겔 42장 15~20절 | 영광의 담을 만들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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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성전과 관계된 많은 것들을 보여주신 후, 성전 본체의 건물에 위치한 제사장들의 방과 그 방의 용도에 대해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이곳은 속된 것을 구별하는 거룩한 곳이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성전의 사면에 있는 담을 보여줍니다. 에스겔은 그 담을 천사가 측량하는 것을 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 담에 대해 우리에게 이런 말을 들려줍니다.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대해 경계를 쌓을 때 ‘담’을 만듭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유를 지키고 자신의 삶의 터를 다른 사람에게 침노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담’은 일종의 경계를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담을 만든다는 것은 단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과 단절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거룩하게 구별되라고 말씀합니다. 과연!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세상으로부터 거룩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영광의 담으로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만들어가야 할까요?
(15) 환경과 형편에 따라 요동치는 자가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따르며, 하나님 앞에 정직한 신앙의 모습으로 자신의 영광의 담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환상 중에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천사에 이끌리어 성전의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천사가 사방의 담을 측량하는 것을 봅니다. 성전에는 세 방향의 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동쪽에 있는 문입니다. 이 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출입문이었습니다. 남쪽 문은 제사장들이 수종을 들기 위해 출입하는 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쪽 문은 왕이 성전으로 나아오는 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가 있는 성소의 뒤편인 서쪽은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을 당하지 않도록 문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에스겔은 어느 쪽의 문으로 밖을 나갔습니까? 동문입니다.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그 법은 지켜집니다. 그런 동문에서 일어난 세 가지 현상(‘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으로부터 오는 것’,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도 같이 들리는 것’, ‘땅이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는 것’)은 에스겔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신앙의 모든 여정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도록 축복할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세속적인 방법을 통해 불법하는 빠른 길을 가르쳐줘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런 것에 요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 신앙의 모습으로 영광의 담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16~19) 자신의 모든 삶의 형틀에 대해 하나님의 거룩한 장대가 측량의 기준이 되어 세상이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는 영광의 담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천사가 성전 안뜰과 바깥뜰을 구별하는 네 방향의 담을 측량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동쪽’, ‘북쪽’, ‘남쪽’, ‘서쪽’ 모두를 측량합니다. 그 길이가 동일하게 ‘500 척’이었습니다. 이때 담의 길이는 ‘측량하는 장대’가 기준이 됩니다. 특히 성전의 사면이 모두 동일하게 ‘500 척’이라는 것은 그 모양이 정 사각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이 정사각형이라는 것은 우상숭배와 타락한 세상을 담아내지 않는 모습이 모든 면에 있어서 동일하게 나타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경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함께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하게 사용된 것이 ‘측량하는 장대’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삶의 형틀에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측량하는 장대가 되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담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담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무너짐을 당하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자신의 네(四) 면에 새겨야 합니다. 속이고, 숨기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잣대로는 흉물스러운 담이 됩니다. 자신의 모든 삶의 형틀에 하나님의 ‘거룩한 장대’가 사방의 측량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담을 만들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 담을 세상과 단절되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이 두려워하고, 부러워하는 영광의 담으로 바꾸어갈 것입니다.
(20)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온전하게 회복시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으로 자신과 세상을 향해 영광의 담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담의 사방을 천사가 측량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방 담 안에 있는 마당의 길이를 측량하는 것을 봅니다. 그 길이 또한 ‘500 척’이었습니다. 사방의 길이가 ‘500 척’이면, 그 안의 마당은 ‘500 척’보다 작거나 ‘500 척’보다 클 수가 없습니다. 사방의 길이가 ‘500 척’ 그 안마당이 ‘500 척’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방의 담’이 거룩한 장대로 측량되어 졌고 그 기준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그 안마당 또한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 사방의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성전 안은 거룩하고, 밖은 속되다는 것을 구별하는 ‘이원론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신앙과 우상 숭배적 요소가 담긴 세속적인 신앙 그리고 불의하고, 무질서한 비성경적 모습으로는 거룩함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온전하게 회복시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의 담은 ‘담 안쪽’인 자신을 향해, 그리고 ‘담 바깥쪽’인 세상을 향해 ‘새 창조’의 역사를 써 내려가게 만듭니다. 세상은 직위와 권위, 학벌과 물질의 담을 통해 비천한 자들과의 관계를 구별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거룩한 담을 통해 무너진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온전하게 회복시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으로 자신과 세상을 향해 영광의 담을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세상의 담은 구별과 결별을 함께 말하지만 영광의 담을 만든다는 것은 세상과 결별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의 담을 만든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거룩을 담아내는 가치관으로 세워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 서는 정직한 신앙의 모습이 자신의 담이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입니다.
자신에게 세워진 담이 세속의 타락이 물들어 있는 흉물스러운 담이 되어버린다면 그 담은 속히 허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속에서 진멸 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성이 측량의 기준이 되어서 세상이 부러워하고, 세상이 두려워하는 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온전하게 회복시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으로 자신과 세상을 향해 영광의 담을 만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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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coco님의 댓글

엄마 문제로 인해 여동생과 갈등이 있어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주님 제가 사람에게는 지고 손해보기를 원합니다
십자가 신앙으로 동생을 품을 수 있도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