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신앙의 문을 달아라 - 겔 44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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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주) | 겔 44장 1~3절 | 신앙의 문을 달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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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계시의 음성을 통해 불신앙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이 당할 멸망이라는 심판을 알게 됩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포로 생활보다 더 강력한 멸망의 심판을 전해 들은 에스겔의 마음이 무너집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이며 짐승보다 못한 그발 강가에서 포로 생활이 지속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운명은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이 있을 것을 이어서 계시해줍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신앙의 회복과 함께 일어날 사건이라는 것을 계시합니다.
계시를 통해 신앙을 바르게 세우고, 신앙을 지키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앙의 문’을 달아야 합니다. 세상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악해지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종말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신앙을 지켜내지 못하면 삼킬 자를 찾는 마귀에게 먹힘을 당하게 됩니다. 신앙을 지켜내는 ‘신앙의 문’을 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신앙의 문’을 달아야 할까요?
(1) 세속이 밀고 들어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로 신앙의 문을 달아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영광을 지켜내야 합니다
환상 중에 에스겔이 천사에 이끌려서 성소의 동쪽을 향한 바깥 문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습니다. 에스겔은 ‘동문’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천사는 어떤 이유로 에스겔에게 성소의 닫혀 있는 ‘동문’을 보여줬을까요? ‘동문’은 (겔 10:19)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던 문입니다. 그리고 (겔 11:1)에서는 ‘불의한 이십오인’이 머물렀던 장소가 ‘동문’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겔 43:4)에 의하면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문이 ‘동문’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연결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문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직결되는 문입니다. 이런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닫힌 문’이 의미하는 것은 세상의 속된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못하도록 ‘구별’하고 ‘지켜내는’ 기능과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세속이 우리의 신앙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켜낼 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문을 만들어야 세속이라는 타락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여러 문들이 있습니다. ‘권력의 문’, ‘능력의 문’, ‘명예의 문’, ‘재력의 문’ 등 정말로 다양한 문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재물은 가득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막혀있다면 그 재물은 축복의 동산이 아닙니다. 세속이 신앙을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신앙으로 문을 달아 경계를 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로 신앙의 문을 달아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영광을 지켜내야 합니다.
(2)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하나님을 향한 거룩이라는 신앙의 문을 달아서 항상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전 ‘동쪽 문’은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문으로서 하나님 외에는 출입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동문을 닫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문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명령이 “문을 닫아 둘지니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인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알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어떤 신앙의 문을 달아야 복된 자리에 서게 되는지 알게 됩니다. 동문을 영원히 폐쇄할 것을 명령하신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가 새겨 있었습니다.
동문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 쪽으로 연결되는 문입니다. 특히 성전과 성소 그리고 지성소에 문을 둔 이유는 거룩을 지키고,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상 숭배자들과 불의한 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고전 3:16)의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각자의 심령 가운데 지성소를 이루고 있습니다. 각자의 심령 가운데 내주하는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산물입니다. 이 축복을 지켜내야 합니다. 거룩이라는 ‘신앙의 문’을 달아서 항상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세상의 교만이 나를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구하고 찾는 하나님을 향한 겸손이라는 신앙으로 문을 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문에 대해 왕 또한 출입을 금하셨습니다. 왕이 비록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권력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 명의 인간일 뿐입니다. 그런데 (겔 44:3)에 의하면 특권층으로서 왕이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 음식을 먹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에스겔에게 조명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세상의 권력자인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게 세워져야 할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왕들 가운데 열왕의 묘실에 들지 못한 4명의 왕이 있습니다. ‘여호람’, ‘요아스’, ‘웃시아’, ‘아하스’입니다. 왜! 이들은 열왕의 묘실에 들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을 향해 교만의 죄를 범했던 대표적인 왕들입니다. 세상의 교만이 자신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구하고 찾는 하나님을 향한 겸손이라는 신앙의 문을 달아야 합니다. 이런 신앙의 규범을 지켜가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을 지켜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신앙의 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문을 달아서 신앙의 문이 제대로 기능을 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신앙의 의지가 함께 가미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을 세속화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신앙의 문을 달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영적 마비 상태에 이르게 되면 세속이 자신의 신앙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로 신앙의 문을 달아야 합니다. 거룩이라는 신앙의 문을 달아야 합니다. 세상의 교만이 나를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구하고 찾는 하나님을 향한 겸손이라는 신앙의 문을 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문을 달아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우리 가운데 머무는 축복의 동산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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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말씀으로 나를 무장 한다고 하지만
마귀는 나의 마음과 삶들속에 파고들어
언제나 나를 무너지게 만들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속의 것 들을 쫒아 가기도 하고
세상적인 방법들을 생각하며 동원하기도 합니다
세상적인 방법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기에
나는 날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문을 굳게 달아 서
세상으로 부터의 악한 것들이 내 속에 들어못하도록
나를 신앙의 문 안에서
나를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나를 말씀과 교리로 견고하게 세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도 신앙의 문을 달아
나를 신앙안에 세워나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