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새 하늘과 새 땅 - 사 65장 17~25절
페이지 정보
본문
31일(금) | 사 65장 17~25절 | 새 하늘과 새 땅 |
(도입)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계시의 말씀을 줍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리모델링하여 고친 나라가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사역을 통해 도래할 새로운 세상인 ‘천국’을 말합니다. 이런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계시는 이사야 선지자만의 전매특허가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에게도 계시와 환상을 통해 동일하게 알려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완전한 ‘새 창조’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되기 위해서는 죄로 물들은 현재의 세상에 대한 종말은 필연적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삶의 터전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세상에서 당하는 환란을 인내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과연! 어떤 가치를 가졌기에 환란과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고 인내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까요?
(17~20)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완전한 회복을 노래하는 영원한 기쁨의 나라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모든 것과 창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모양’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기쁨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심히 좋았더라!”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한 하나님의 형상은 죄에 짓밟히고, 부패하게 됩니다. 타락합니다. 고통의 세월을 살아가면서 병들거나 늙어 죽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죄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에 대해 씨의 역할을 합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낳습니다. 이런 인류를 향해 ‘새 하늘과 새 땅’이 가져다줄 두 가지의 결과물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기쁨’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나타날 ‘완전한 행복’은 모든 것이 풍족한 ‘복락’으로 연결됩니다. 궁핍함과 곤고함이 없으니 더 이상 이로 인해 울거나 여호와를 향해 부르짖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기쁨’은 ‘영생’으로 연결됩니다. 사망과 고통이 없으니 기쁨만이 존재합니다. 이사야는 비유를 통해 증거합니다. “그곳은 사망이 없기에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자라고 여길 것이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말합니다. 이런 완전한 나라에 살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인내하고, 소망을 가슴에 품고, 기쁨으로 달려 가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1~23) 새 하늘과 새 땅은 저주가 없고 아름다운 결실만이 있으며, 여호와로부터 복된 자손이라 칭함을 받으며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모습이 이상한 생물체로 변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첫 번째는 그곳에서 살아갈 때도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 ‘신’과 ‘피조물’의 분명한 구별 점을 두셨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먹는 문제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갈 때도 먹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먹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먹었던 먹거리와 달리 모든 것이 풍성함을 이루어 부족함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소유와 관련된 ‘자기의 기업’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재산을 취득하는 것과 다릅니다. 자신의 소유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거짓’과 ‘위선’이 없고 ‘정직’과 ‘진실’이 함께 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기업을 아무도 침범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노동에 관한 문제입니다. 원래 노동은 ‘신성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에덴동산을 가꾸는 노동 자체가 기쁨이었습니다. (창 2:15)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고, 지키는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고통과 괴로움으로 변했던 노동의 가치관이 원래의 가치관인 기쁨의 수단으로 회복됩니다. 이런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에는 모든 수고가 헛되이 돌아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는 자를 가리켜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라고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나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4~25) 새 하늘과 새 땅은 악함과 분쟁 그리고 해함이 없으며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통을 이루는 완전한 솰롬의 나라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게 될 축복의 또 다른 한 면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통과 교재입니다. 그리고 싸움과 분쟁과 악함과 해침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솰롬’입니다. 아담의 죄는 육신의 죽음과 함께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끊어버리는 ‘영적 죽음’을 초래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교통의 단절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게 만들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축복이 거두어지는 것으로 그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흑암의 세월’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이런 ‘담’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은 ‘악함’과 ‘분쟁’ 그리고 ‘해함’이 없는 나라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람과 동물들의 신체 구조 가운데 제일 먼저 없어지고, 변화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송곳니’입니다. 왜냐하면, 동물들의 구강구조가 ‘송곳니’가 퇴색하게 되고 풀을 먹는 ‘어금니’가 발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나움’과 ‘공격성’이 사라집니다. ‘뱀이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라는 말은 뱀이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 존재로 변화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새 하늘과 새 땅’은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사악한 본성’이 없어지고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지는 나라입니다. 완전한 ‘솰롬’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나라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땅을 살아가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을 어찌 값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적용)
‘새 하늘과 새 땅’은 죄로 무너진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회복시킨 나라입니다. 악함이 사라지고, 분쟁과 해함이 없으며, 사망이 없는 ‘완전한 솰롬’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거짓과 불의 그리고 부정과 힘의 논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분쟁과 탐욕이 사라지고 오직 의로움만 존재하는 축복의 나라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 우리에게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을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그리고 소망 있는 세월을 힘 있게 살아갑시다!
- 이전글(공지사항) [바티스 QT - 2월 본문 안내] - 에스겔 25.01.31
- 다음글(1월 30일) 이런 추수의 일꾼 - 사 62장 6~9절 25.01.30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사역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하여
이 땅에서의 나는 어떤 준비를 하여야 할까?
믿음의 눈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세상에 알리며
죄로 무너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도록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세상에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
축복과 기쁨의 새 하늘과 새 땅
아름다운 결실만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통을 이루는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
솰롬만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소망있는 세월을 살아가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겪는 환란은 잠시뿐임을 기억하며 인내하겠습니다
그곳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고
나는 완전 예쁜 모습으로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하며
지금은 몸의 문제로 인해 밋있는 음식을 자제 해야 하지만
그날에는 건강한 몸으로 맛난 것을 풍족히 먹을 수 있고
멋진 내 집에서 거하며 경작의 기쁨을 누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나누는 곳
그곳이 바로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