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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갈망하며, 발견하고, 세우는 신앙 - 창 3장 22~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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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23()

322~24

갈망하며, 발견하고, 세우는 신앙


(도입)

‘은혜’라는 단어에는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작정하심’ 그리고 ‘섭리하심’이 있다면, ‘자비’는 ‘아버지’로서 그 마음을 토해내는 ‘하나님의 심정’이 새겨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곳으로, ‘하나님의 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나를 다스리는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의 통치와 법이 있는 곳입니다. (창 2:17)은 말씀을 조명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이 법을 어깁니다. 그 결과 ‘죽음’이 임하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 나라의 법을 어긴 자에게 형벌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비를 베푸사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신 심판을 넘어 회복의 길을 열어줍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의 한 장면을 통해 이 세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엇을 갈망해야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통해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지, 어떤 신앙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22)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통해 절망과 두려움을 보지만 우리는 죽음을 통해 죄를 단절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신앙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죄를 범한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형벌이 내려집니다. 죽음은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는 ‘영적 죽음’과 육신의 생명이 끊어지는 죽음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 가지 단행합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유혹한 악의 근원인 ‘사탄’을 향해서는 ‘불 못’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에게는 죽음의 심판으로 결론을 맺지 않습니다. 크게 세 가지 은혜로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합니다. 첫 번째는 구원에 따른 ‘은혜언약’(창 3:15)입니다. 두 번째는 죄에 대한 ‘대속의 값’(창 3:21)입니다. 희생의 제물을 친히 준비합니다. 대속의 피가 흐르는 ‘가죽옷’(보혈의 옷)을 사람에게 친히 지어 입혀줍니다. 세 번째는 죄인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을 막는 ‘하나님의 은혜’(창 3:22)입니다.

    죽음을 육신적인 눈으로 볼 때는 인간의 소망이 사라지는 끝을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죄는 반드시 그 값이 있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도록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도록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통해 절망과 두려움을 보지만 우리는 죽음을 통해 죄를 단절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을 입고 세상을 향해 부활의 증인이 되어 세상을 향해 영생을 증거하며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신앙으로 자신을 세워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23) 비록 가시와 엉겅퀴 같은 세상을 살아갈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발견하는 신앙의 정체성(正體性)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창세기 3장 22절과 23절은 마치 ‘미지의 방’을 여는 ‘키’와 같은 구절입니다. 22절의 “영생할까 하노라”와 23절의 “내보내어”와 “땅을 갈게 하시니라” 사이에는 인간이 죄악 가운데 영원히 머무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은혜 가운데 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범죄한 상태에서 생명나무 실과를 먹게 된다면 그들은 영원히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의 결정은 영원한 저주가 그들에게 머무는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동산 밖으로 내보낸 것으로 모든 것을 끝을 맺지 않습니다. 인간이 살아갈 에덴동산 밖은 (창 3:18)에 의하면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로 뒤 감겨 있었습니다. 

    에덴동산 밖으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고”라고 결론을 내렸다면 에덴동산 밖은 형벌의 장소인 감옥이 됩니다. 비록 사람이 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람에게 땅을 경작할 권리를 주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땀 흘려 결실을 맺도록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시기에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까?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시와 엉겅퀴’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현재가 있습니다. 자신의 형편과 환경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과 환경이 ‘가시와 엉겅퀴’ 같을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을 발견하는 신앙의 정체성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24) 죄는 어떤 모습으로도 자신의 삶에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타협이 아니라 단호하게 물리치는 분명한 신앙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계속해서 펼쳐나갑니다. 사람을 에덴동산으로부터 ‘내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짓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라는 말씀을 통해 (23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을 느끼게 합니다. (24절)의 ‘쫓아내시고’라는 말씀은 그 기본 어근이 ‘가라쉬’로 ‘내던지다’, ‘버리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너는 낙원인 나의 나라에 있을 수가 없어!”라는 완전한 관계 정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죄인’에게 내려진 형벌이었습니다. 죄는 이유를 불문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내침을 당하게 됩니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상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쫓아냅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길을 폐쇄합니다. 그리고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합니다. “이곳을 파수하라!”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핵심을 잡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자로서 자신의 자세를 바르게 세우는 일입니다. 죄는 어떤 모습으로도 함께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심령으로부터 음란과 타락의 영을 몰아내는 성령의 ‘불 칼’을 세워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신앙을 ‘파수’해야 합니다. 말씀이 파수대의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불의와 부정과 부패, 불법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분명한 신앙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적용)

죄는 어떤 모습으로도 함께 해서는 안 됩니다. 죄의 결론은 죽음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향해 소망의 빛줄기를 내려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통해 절망과 두려움을 보지만 우리는 죽음을 통해 죄를 단절시키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를 발견하며, 부활을 봅니다. 그리고 죄 사함과 영생을 봅니다. 우리는 완악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며, 자신이 어떤 신앙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 말씀의 거울을 통해 돌이켜 보면서 신앙의 정체성을 바르게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바른 신앙의 탑을 세워 이 완악한 시대를 이겨나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믿는 자의 죽음은 죄를  단절하지만
불신자의 죽음은 죄의 값으로 영원한 불못에 던져집니다

세상 사람들의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지만
믿는 자들의 죽음은 죄의 단절로 하나님의 은혜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나아갑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시어'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때에 따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세상은 완악합니다 죄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날마다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신앙의 자세와
신앙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바르게 세워 나가는
신앙이 되기를 소망하며
말씀가운데 바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물질과 욕망의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내 심장보다 더 가까이 계산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작은 일도 주님께 상의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삶의 습관 속에서
날마다 주님의 성품을 더 깊이 닮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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