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죄악이 잉태하여 - 창 4장 19~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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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토) | 창 4장 19~24절 | 죄악이 잉태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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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동명이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동명이인 가운데는 ‘에녹’이 있습니다. ‘가인’은 그의 아들 ‘에녹’을 낳고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아들의 이름을 딴 ‘에녹성’을 세웁니다. 자기가 ‘아벨’을 죽인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가족 또한 살해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성’을 쌓습니다. 또 한 사람의 ‘에녹’은 아담의 칠대 손으로 ‘야렛의 아들’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300년 동안 선지자로 활동했던 자로서 죽지 않고 산채로 하늘에 올려집니다.
두 번째 동명이인은 ‘구원’과 ‘심판’으로 연결되는 두 대표성을 설명하고 있는 ‘라멕’입니다. 한 명의 ‘라멕’은 ‘셋’의 후손입니다. 그는 인류의 제2의 조상이라 불리는 ‘노아’의 아버지입니다. 구원의 대표성으로 ‘라멕’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한 명의 ‘라멕’은 ‘가인’의 후손입니다. 그는 ‘심판’에 대한 대표성으로 설명됩니다. ‘라멕’은 자기의 죄로 인해 죽을 존재가 된 ‘심판’을 상징하는 ‘가죽옷’의 계시를 나타내는 인물입니다. ‘심판’을 상징하는 ‘라멕’을 통해 비춰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죄악은 인류 가운데 어떤 열매를 맺어갔을까요?
(19~22) 죄악은 인간의 욕구를 채우는 타락과 부패한 문화를 만들어내었으며 세상 가운데 평강을 도모하기보다 악한 행위를 번성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인류 최초로 살인을 범했던 가인은 구원과 심판 가운데 심판을 상징하는 대표성으로 성경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멕은 죄악 된 모습을 구축하게 된 인류의 인물로 소개됩니다. 그는 인류 최초로 ‘일부다처’라는 악한 전통을 만들었으며 자신이 세상을 다스리는 자라는 것을 표명하기 시작합니다. 라멕은 복수의 아내를 두면서 그것을 자신의 다스림의 상징으로 삼게 됩니다. 죄악의 상징적인 인물로 소개되고 있는 라멕은 자신의 자녀들을 통해 인류 가운데 최초로 부패하고 타락한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야발’은 ‘목축업’을 이룹니다. 자신의 풍부함을 이루기 위해 이동하면서 다른 사람의 지경을 자신의 터로 삼는 경제적 침략을 이룹니다.
또 한 아들인 ‘유발’은 최초로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인류 최초의 악기는 죄악 된 인간의 곤고함을 달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으며 육체의 쾌락을 도모하는 향락 도구로 사용됩니다. 또 한 명의 아들이었던 ‘두발가인’은 인류 최초의 ‘대장장이’로서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만들어냅니다. 그의 손을 통해 최초의 침략 도구가 만들어집니다. 라멕은 이 도구를 사용하여 인류 최초의 정복 전쟁을 펼칩니다. 죄악이 잉태하여 인간의 욕구를 채우는 타락과 부패의 문화 그리고 인류 최초의 침략 전쟁 등이 라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죄악이 잉태하여 인간의 욕구를 채워가는 정욕과 탐심과 불의와 부패와 부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타락의 문화를 ‘십자가 문화’로 바꾸는 사역에 앞장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23) 죄악은 자신의 죄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보다 자신의 정당성을 만들어가며 상대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에 더욱 악함을 도모하는 악인의 길을 걸어가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라멕은 죄악 가운데 놓인 인류가 어떻게 타락하는 문화에 젖어 들게 되었는지 침략 전쟁과 함께 이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라멕으로부터 시작된 죄악된 모습은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복수’라는 두 단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복수’가 아주 잔인함으로 그 모습을 나타냅니다. ‘살인’입니다. 여기에서 ‘복수’와 ‘살인’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자기 정당성 가운데 일어납니다. 라멕은 자신의 아내들에게 반복적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내 목소리를 들어라!” “내 말을 들으라!” 자신의 지배 구조에 도전하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가족이라 할지라도 용서받지 못할 것을 자신의 아내들을 통해 강조합니다.
죄악 된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권위’와 ‘자기의 권좌’를 먼저 생각합니다. 가인이 그랬던 것처럼 라멕 또한 사람의 생명을 경시합니다. 라멕은 자신의 잔인함을 노래로 지었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이 노래를 기억하도록 합니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자신에게 도전했던 자들을 용서하지 않았으며 이들은 모두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을 노래로 남깁니다. 죄악은 자신의 죄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보다 자신의 정당성을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상대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에 더욱 악함을 도모하는 악인의 길을 걸어가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이런 죄악 된 행위를 막아내야 합니다.
(24) 죄악이 잉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스스로 신과 같은 존재의 자리에 올려지기를 원하는 숭배 사상을 만들어냅니다
죄악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라멕의 타락은 어디까지일까요? 라멕은 하나님을 능가하는 자리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는 인류 최초로 숭배 사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이 올라갑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이지만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가 가해질 것이다” 이 말은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장면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우위에 올려놓습니다. 라멕의 말은 마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할 때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형태와 유사합니다. 마귀는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거짓된 말로 유혹하였던 것과 유사합니다.
라멕의 숭배 사상과 함께 자신을 하나님보다 우위에 올려놓은 이 행각은 인류 가운데 우상숭배로 나타났으며 이단과 같은 마귀의 사상을 낳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스스로 신과 같은 존재의 자리에 올려지기를 원하는 숭배 사상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죄악의 쓴 뿌리와 함께 짝을 이루고 있는 우상숭배 사상과 이단의 거짓된 무리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모두 ‘불 못’의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종말이 구원의 백성을 향해서는 소망의 날이라고 한다면 우상숭배와 이단의 무리에 속한 자들에게는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의 날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적용)
죄가 잉태하여 세상 가운데 세운 타락과 부패한 문화에는 육체적 쾌락과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약과 같습니다. 결국은 즐기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삶은 짓밟힘을 당하는 종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이 마귀가 만들어낸 타락과 부패한 문화의 본모습입니다.
죄악의 형틀은 죄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죄악 가운데 놓인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권모술수에 익숙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권위와 권세를 보존하고 자신의 위치에 위협을 가하는 자를 파멸시키는 복수극을 연출합니다. 타락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세상 가운데 악이 만연합니다. 세상의 영혼들을 일깨워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안 됩니다. 구원과 심판의 말씀으로 세상의 영혼들을 깨워야 합니다. 이 사명에 쓰임 받는 주님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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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죄악 가운데 놓인 세상은 심판이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는 구원입니다
죄악은 끝없는 욕망과 탐욕과 불의와 부정과
악행을 일삼지만 그 것이 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더욱 악함을 자행하고
타락한 문화를 조성하여 더욱더 죄악가운데 빠지게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주의 자녀는
이렇게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세상의 영혼들을 일깨우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방관하는 신앙이 아니라
구원과 심판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하나님 나라의 군사가 되어야겠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며 심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열매를 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