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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하나님께 어떤자로 기억을 남길 것인가 - 창 4장 25~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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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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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425~26

하나님께 어떤 자로 기억을 남길 것인가


(도입)

에덴동산 밖에서 시작한 인류는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여 아이를 낳으면서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번성에 따른 기류와 함께 땅위에는 각종 문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인류는 두 가지의 특별한 문화를 형성하며 번성합니다. 하나는 인간 중심의 세속화된 문화였으며,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를 형성하는 문화였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두 문화는 너무나도 뚜렷한 차이를 두고 발전합니다. 가장 큰 차이는 세속화된 문화는 ‘힘의 원리’를 바탕에 두고 있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었습니다. 세속화된 문화는 ‘육신의 소욕’이 중심을 이루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어울려지는 ‘예배’가 그 중심을 이룹니다.

    아담의 첫 번째 아들이었던 가인과 아벨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아벨의 다른 씨’인 셋은 우리에게 인류의 두 문화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우상숭배와 세속화가 만연한 이 시대를 비춰봅시다. 마치 가속 페달을 밟고 달려가는 경주용 자동차와 같은 타락한 이 시대 위에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자로 기억을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25)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신앙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기억을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담은 930년을 살아가면서 가인과 아벨 외에 많은 자녀를 낳습니다. 그의 나이 130세가 되던 때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한 아들을 줍니다. 가인이 시기하여 죽였던 ‘아벨’을 대신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창 4:25)은 그 아이의 이름을 ‘셋’이라 말합니다. ‘셋’이라는 이름은 두 사람을 특별히 주목하게 합니다. 첫 번째는 아벨을 주목하게 합니다. ‘아벨을 대신하는 다른 씨’에서 대신이라는 것은 ‘보상’이라는 측면이 강하게 작용됩니다. 그리고 ‘대신한 다른 씨’는 아담이 낳은 아들 ‘셋’은 평범한 혈통의 후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 3:15)의 언약을 이룰 후손을 가리킵니다.

    두 번째는 “내게 ... 주셨다”라는 것을 통해 ‘하와’를 주목하게 합니다. 하와는 “내게 주신 아이”라는 고백을 통해 자신이 낳은 아들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그 아이를 받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여기에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던 하와와 대조를 이루는 신앙이 조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이를 바르게 양육할 것을 고백하는 하와의 성숙해진 신앙이 돋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대신할 다른 씨를 금방 주지 않았습니다. 신앙으로 반응할 때가 되었음에 하와의 품에 한 아이를 안겨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억된 자는 하와가 ‘셋’을 품은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품는 역사의 산 주인공으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26)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로 기억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겸손한 신앙으로 세워진 자로 항상 기억되어야 합니다


인류를 대표하는 두 문화를 형성하였던 가인과 아벨의 ‘다른 씨’였던 ‘셋’은 인간중심의 ‘인본주의’와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의 대명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아들 ‘에녹’을 낳고 주변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고, 그 성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가인의 후손은 (창 4:18~24)에 의하면 어떤 순간에도 ‘샬롬’이 없었습니다. 아담이 ‘130세’에 낳은 ‘셋’이 그의 나이 ‘105세’가 되었을 때 ‘에노스’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가인과 달리 셋은 ‘여호와를 향한 제단’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샬롬’은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던 가인의 후손이 아니라 셋의 후손에게 임합니다. 

    ‘에노스’는 ‘사람’, ‘인간’을 의미합니다. 이 이름 가운데는 아버지 아담으로부터 일어났던 ‘그 사건’을 반드시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었습니다. 그 이름에는 가인의 후손들처럼 교만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신앙의 겸손을 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신앙의 경건함이 함께 되새겨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과 경건한 신앙으로 나아가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억을 남기는 ‘셋’과 같은 신앙의 걸음을 걷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6) 눈에 보이는 세상의 능력을 쫓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전인격으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사모하는 자로 하나님께 기억을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은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짓습니다. 그 다음 행한 셋의 조치는 (창 4:17)의 가인처럼 자신들을 지킬 ‘성’을 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나아오도록 조치를 취합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온 가족이 함께 인류 최초의 ‘가족 집단 예배’를 공식적으로 드리며, ‘가정 예배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공식적으로 집단을 형성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예배 양식은 셋이 그의 아들 에노스를 낳고 하나님께 드렸던 그 예배가 최초였습니다.

    셋은 그의 후손에게 ‘현장 교육’을 통해 유산을 물려줍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물질이 아니라 ‘믿음의 유산’이었습니다. (창 6:13)의 말씀처럼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만들어낸 세속적인 문화와 힘은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모습으로 결과가 나타났으며, 결국은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창 5:24)의 에녹이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사건이 그 증거였으며, 세상 사람들이 멸망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강한 손이 되어주셨던 노아를 기억하십시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능력을 쫓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전인격으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사모하는 자로 하나님께 기억을 남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적용)

여호와의 신앙으로 성을 쌓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신앙으로’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환란 날을 이기고, 마지막 때를 이길 ‘성(城)’은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성’ 밖에 없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 어떤 자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가인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는 자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그 성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곧 무너짐을 당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앙의 성을 쌓는 자로 하나님께서 기억이 남겨져야 합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는 종말이 있는 그날! 완전한 샬롬이 있는 ‘열두 진주 문’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음성이 들리도록 하나님께 기억을 남기는 신앙의 걸음을 걸어가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셋은 아들 에노스를 낳고
인류 최초의 가정 예배 문화를 만들어
온 가족으로 하여금 에배의 자리에 나오게 하여
하나님께 가족 집단 예배를 공식적으로 드립니다

가인은 아들 에녹을 낳고  자신을 위하여 성을 쌓았지만
셋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신앙을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교회가 목적의 대상인지
나의 이익이 앞선 것인지를 돌아보며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인지
적당하게 타협하는 신앙인지를 돌아보며
항상 여호와의 신앙으로 성을 쌓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며
하나님께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co 작성일

나의 삶이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흔들림 없이 주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성을 굳게 세워가며
99.99···프로가 아니라
전심으로 100프로의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따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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