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하나님의 형상과 사람의 형상 - 창 5장 1~5절
페이지 정보
본문
26일(월) | 창 5장 1~5절 | 하나님의 형상과 사람의 형상 |
(도입)
창조 속에는 창조주의 생각과 뜻이라는 창조목적이 새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할 인격적 존재로 창조합니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대해 청지기로서 역할을 감당하도록 창조합니다. 아담은 왕과 선지자, 제사장의 세 직분이 주어진 상태에서 청지기로 세워집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라는 기본적 바탕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인 아담은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직분을 망각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말씀을 하나님과 같은 지혜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속이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게 됩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순간 즉각 죽음은 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대해 은혜를 베푸사 메시아를 통한 회복을 언약합니다. 창세기 5장은 하나님의 언약의 실현을 역사 가운데 펼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의 모양대로’와 ‘아담의 모양과 형상’ 그리고 ‘죽었더라’와 ‘낳았으며’은 여기에 대해 무엇을 계시하고 있을까요?
(1~2) 사람은 죄 없는 상태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통해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창조목적과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의 모양대로’는 계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 대해 말하면서 곧 바로 아담의 자손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아담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라는 말씀을 통해 아담의 창조에 관한 것을 먼저 설명합니다. 이것은 존재적 측면에 있어서 사람은 스스로 생겨나거나 진화적 요소를 통해 생성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라는 말씀은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예배자’로 세워지고, ‘청지기’로 세워질 목적으로 창조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격적 존재로 창조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는 말씀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처럼 신적인 능력을 가진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처음 모습은 죄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기쁨이자 하나님 자신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향해 “복을 주시고” 그 이름을 사람이라고 일컬은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기쁨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번성함을 통해 영광을 받길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목적 가운데 세워진 자들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의 산물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가는 ‘하나님 형상’이 되어야 합니다.
(3) 아담의 죄는 인류의 모든 후손으로 하여금 죄 아래 놓이게 만들었으며, ‘아담의 모양’과 ‘아담의 형상’은 인류를 향한 죄의 전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으로서 ‘대표성’을 가졌으며 피조 세계에 대해 ‘머리’로 세워집니다. 이런 아담이 범한 (창 3:6)의 불순종의 죄는 (창 2:17)의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저주에 놓이게 됩니다. 문제는 아담의 죄는 아담 자신에게 머물지 않았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성으로서 범한 죄는 온 인류를 죄악 가운데 놓이게 합니다. (창 5:3)은 여기에 대해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모양’과 ‘자기의 형상’은 부모의 외형적 모양을 닮은 후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죄가 인류의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가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모양’과 ‘자기 형상’이 아담이 죄를 범한 상태를 말하고 있다면 ‘같은 아들을 낳아’라는 말씀은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전가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담의 죄는 인류의 모든 후손으로 하여금 죄 아래 놓이게 만듭니다. ‘아담의 모양’과 ‘아담의 형상’으로 후손이 태어난다는 것은 모든 인류가 아담의 죄를 전가 받아 태어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이런 죄악 상태에 놓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성자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대표성과 머리로서의 참 아담)이 되셔서 대속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사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이런 은혜 가운데 참 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4~5) 아담의 죄는 인류를 죽음이라는 저주 가운데 놓이게 만들었으며 ‘죽었더라’는 여기에 대한 성취를 계시합니다. 그리고 ‘낳았으며’는 구원에 따른 언약의 성취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말씀을 줍니다. 첫 번째는 “낳았더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의 저주 가운데 놓인 아담에 대해 생명을 언약하셨습니다. “낳았더라”는 이것이 실현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낳았더라”는 (창 1:28)의 ‘생육, 번성, 충만’에 대한 축복의 실현만이 아니었습니다. 생명의 언약이 ‘여자의 후손’이라는 메시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신 계시의 실현이 역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죽었더라”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그의 나이 ‘구백삼십 세’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장면은 당시 아담과 동시대를 살아갔던 후손들에게는 충격으로 와닿았습니다.
아담의 죽음은 죄에 따른 저주의 값이었으며, “죽었더라”는 ‘행위 언약’의 파기에 따른 죄의 값이 역사 가운데 실현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그의 후손들은 죄의 값이 사망인 것과 함께 하나님께서 언약하셨던 ‘생명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이 생겨나게 됩니다. 인류가 죽음의 굴레를 쓰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면 우리의 삶은 저주에 따라 영원한 불못이 영원한 죄의 값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죽을 존재가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죽었더라”가 죄의 값을 계시하고 있었다면 “낳았으며”는 구원에 따른 언약의 성취를 계시하고 있었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처음 창조 세계는 조화로움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출합니다. 이 가운데는 죄악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할 줄 아셨던 하나님은 (창 3:15)의 죄와 생명의 구원에 따른 언약의 실현을 역사 가운데 “낳았더라”와 “죽었더라”의 반복을 통해 이루고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둘째 아담으로서 이루신 대속만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으로 아담을 향한 언약의 완성을 성취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역사 가운데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 이전글(5월 27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 창 5장 18~24절 25.05.27
- 다음글(5월 25일) 하나님께 어떤자로 기억을 남길 것인가 - 창 4장 25~26절 25.05.25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하나님은 사람을 '예배자'로 '청지기'로 세우시기 위하여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의 전가가 되었으며
온 인류를 죄악가운데에 놓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대속의 값으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 땅에 다시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도록 지금도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은
실현되고 있음을 믿고
이 땅에 남겨진 자로서 오늘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복된 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낳았더라와 죽었더라의 반복속에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준비하고
내가 싸워야 할 가장 큰 사움은
내 안의 자아와의 싸움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주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감사로 가득한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