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세 가지의 신앙관 - 창 13장 14~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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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월) | 창 13장 14~18절 | 세 가지의 신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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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사람의 생각과 의도한 바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세상은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운행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아브람, 그에게는 자식과 같은 조카 롯이 있었습니다. 일행이 벧엘에 머물 때였습니다. 각자의 소유와 살림이 늘어나면서 아브람과 조카 롯 사이에 마찰이 일어납니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상황적 판단에 놓입니다. 아브람은 자식과 같은 롯을 독립시키기로 합니다. 이때 아브람은 자신이 먼저 지역을 정하지 않습니다. 자식과 같은 롯에게 우선권과 선택권을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소유의 문제로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측을 선택하면 나는 그 반대편인 우측을 선택할 것이다”
롯의 눈에는 마치 ‘여호와의 동산’과 같았고, 기름진 ‘애굽 땅’과 같은 곳이 보입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을 떠납니다. 자식과 같은 롯을 떠나보낸 아브람, 허무함에 사로잡힌 그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의 눈으로 롯이 선택한 반대쪽을 돌아보도록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그곳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음성이 들립니다. 아브람에게 증거되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음성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어떤 신앙의 관점을 가지도록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신앙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때를 살아가야 할까요?
(14~15)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굴복당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축복의 동산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여기에 대해 확신하는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롯이 떠난 후 아브람에게 찾아온 것은 허무와 상실감입니다. 상황에 굴복당한 아브람을 향해 하나님께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은 “눈을 들어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이란 명칭이 ‘여호와’로 아브람에게 비치고 있습니다. 우상의 터를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하도록 그를 이끌었던 ‘언약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창 12:1 이하)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세 가지를 약속합니다. ‘기업’과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아브람의 마음을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바라보면서 위로받도록 합니다.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바라보라”라는 말씀은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바라보라”라는 말씀입니다. (창 12:1 이하)에서 약속하신 “땅과 자손,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육신의 눈으로 보이겠습니까!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봐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두 가지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땅의 기업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주어진 상황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여기에 대해 확신하는 신앙관을 가지고 세상을 능히 이겨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6~17)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경의 종과 횡을 바라만 보는 신앙이 아니라 실천하는 신앙으로 자신의 지경을 넓혀가는 믿음의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허무와 상실감에 젖어 있는 아브람에게 (창 12장 이하)에서 약속하신 언약을 아브람에게 다시 확신시켜 줍니다. 땅이 없는 아브람에게 ‘땅’이라는 ‘기업’에 대한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없는 아브람에게 “자손을 능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한 가지의 행동을 요구합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준비된 열매입니다. ‘땅’은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셨으며, 믿음 있는 신앙의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열매에 대해 응답받으라는 것입니다.
‘입으로만’의 신앙, ‘머리만’으로의 신앙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신앙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믿음에는 믿음 있는 신앙의 걸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그렇게 될 것이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에 열매를 맺혀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지경을 약속하셨습니까? 그러면 믿음으로 자신의 지경을 바라보기만 하는 신앙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이뤄진 줄 믿고 그 지경을 향해 나아가는 신앙관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창 22장)에 나타나는 ‘여호와 이레’ 사건은 (창 21:12)에서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실현될 줄 믿고 실행에 옮긴 결론의 열매였습니다.
(18) 모든 시작을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의 걸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신앙관으로 시작하는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마무리를 하는 끝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걸음에 동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위하여!”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아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끝 또한 하나님 안에서 마무리가 됩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거주하도록 합니다. (창 12:7) 아브람이 가나안 땅 ‘세겜’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벧엘’ 동쪽 산에 장막을 치고 ‘여호와의 제단’을 쌓으며 본격적으로 가나안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이르게 되고 ‘여호와의 제단’을 쌓으며 그곳에서의 시작을 이룹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더라!” 모든 것을 신앙으로 시작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여러 곳을 “종횡으로 다닙니다” 그는 자신이 장막을 치고 머무는 곳에서 시작을 ‘여호와의 제단’을 쌓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신앙으로 자신의 첫걸음을 만들어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갈렙처럼, 다윗처럼 말입니다. 모든 시작을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의 걸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신앙관으로 새로움의 시작을 일으키는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적용)
믿음은 생각이나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은 열매로 응답받는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음을 받은 것은 믿음의 걸음을 걸었기에 그렇게 불렸던 것을 상기하셔야 합니다. 믿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천지와 만물을 친히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일컫는 ‘천국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 불신자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다스리고, 지배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지경을 종, 횡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 지경을 여호와를 향한 믿음과 신앙으로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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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사람님의 댓글

올바른 신앙관을 가져야만 나의 삶이 무너지지 않고
단단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관을 가지려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흔들리지 않도록 날마다 하나님 나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신앙관을 가지기를 원하며
바른 신앙관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되기를 원하며
나의 모든 삶의 하루 하루를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의
걸음과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신앙이 되기를 원하며
오늘도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coco님의 댓글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모든 삶의 자리에서
눈을 들어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을 향한 사랑이 날마다 뜨겁게 타오르기를 간절히 소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