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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무엇을 앞세울 것인가 = 수 5장 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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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29()

52~9

무엇을 앞세울 것인가

 

5: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5: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5: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5: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5: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5: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도입)

가나안 정복 전쟁이라는 큰 전투를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긴장합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겪어보지 못한 큰 전투를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세 가지를 명합니다. 하나는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명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믿음을 앞세우도록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가나안 전투의 전초전인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언약궤를 앞세우도록 명합니다. 세 번째는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을 향한 명령이었습니다. 그것은 광야의 40년의 여정으로 인해 할례받지 못한 세대들을 향한 명령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봤을 때 하나님의 이 명령은 전투를 앞두고 있었던 이스라엘 진영에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을 따랐다가는 이스라엘 진영이 스스로 전멸당할 수 있는 조치였습니다. 고통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육신이 활동할 수 없도록 행동에 제한을 가하는 할례는 적들에게 기습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엄청난 사건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이유로 할례를 행하도록 하셨을까요?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무엇을 앞세우길 원했을까요? 할례 사건은 혼탁한 이 시대를 향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앞세우도록 명하고 있을까요?

 

(2~3) 자신 앞에 놓인 환경의 강력함에 대한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앞세워 자신 앞에 놓인 환경들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할례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행한 특별하고, 유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지역뿐만 아니라 애굽을 비롯한 고대 근동의 여러 족속이 할례를 성인 의식을 치루는 하나의 예식으로 여기며 행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할례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등장한 것은 (17:9~27)입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그 언약은 첫 번째, 자녀가 없는 사라의 태를 열어 아브라함에게 자녀가 있을 것과 후손이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룰 것을 약속합니다. 두 번째는 가나안 온 땅을 기업으로 줄 것과 세 번째는 하나님이 그 후손들의 하나님이 될 것에 대해 언약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징표로 삼은 것이 할례였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통해 하나님과 세운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이스라엘 자손들은 난지 팔 일만에할례를 행하도록 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전투를 앞두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라는 외적인 의식을 통해 그들의 내적인 정체성을 일깨워 두 가지를 명심시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어떻게 이루셨는지를 돌아보며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믿도록 각인시킵니다. 자신 앞에 놓인 환경의 강력함에 대한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앞세우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가나안 정복 전투를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가 명해진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이 새겨져 있는 십자가로 자신의 내면에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복음을 신뢰하며, 천국의 소망을 가슴에 안고 그 믿음을 앞세워 자신 앞에 놓인 환경의 두려움들을 이겨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4~7) 형식적인 종교 행위를 통해 믿음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앞세워 나가며 믿음을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앞세워 나가지 못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나는 언약의 백성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뼈아픈 ‘40의 광야 역사 속에서 태어난 출애굽의 2세대들은 광야를 행진하면서 할례를 행하지 못합니다. 이런 2세대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전투에 임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워야 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깨닫게 합니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라는 징표입니다. 이런 할례출애굽 제2세대들에게 동시에 행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할례행한 그 표피를 천히 다루지 말고 한 장소에 묻어 그 장소(할례 산)를 기록에 남기도록 합니다. 출애굽의 2세대들에게 할례를 행한 것은 광야의 40년에 대한 회개를 담고 있었으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는 장면이었습니다.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교인들은 말씀을 귀로 들어서 알고,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태로만 있다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믿음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었다가 불신했던 광야의 세대와 똑같이 됩니다. 형식적인 종교 행위를 믿음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다면 왜! 말씀의 삶을 살지 않습니까? 천국을 믿고 기다린다고 말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법칙대로 살아가면 되는 겁니까? 형식적인 종교 행위로 할례 없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삶을 통해 세워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은 하나입니다. 삶이 도둑놈이 되고, 사기꾼이 되어 있고, 타락한 자가 되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앞세워 나가는 참믿음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8~9) 위기의 순간에 불신앙적 행위로 그 문제를 돌파하려 했던 불의함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자신의 수치를 완전히 잘라내고 십자가를 앞세워 다시 일어서는 부활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가나안 정복 전투를 앞둔 할례는 외부 세력으로부터 초토화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낫기를 기다릴 때 외부로부터 왜! 침투가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5:1)은 말합니다.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건너가게 하셨음을 듣고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아무리 위기의 순간이라도 불신앙적 행위로 문제를 돌파하려는 순간 그 사람은 불의함에 사로잡힌 자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전, 언약의 징표로서 할례를 행한 것은 자신들의 두 가지 수치를 제거하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는 애굽에서의 430년이라는 종살이를 할례를 통해 포피를 잘라내듯이 그 수치를 잘라냅니다. 두 번째는 40년의 긴 광야 생활을 통한 불신앙의 수치를 할례를 통해 그 표피를 자르듯이 잘라버립니다.

위기의 순간에 불신앙적 행위로 문제에 접근하는 순간 그 짐은 자신의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러나 가나안 전투를 앞두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들의 불의로 인한 수치를 할례를 통해 잘라내듯이 십자가에 못을 박는 순간 그 사람의 짐은 어느덧 주님이 지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의함을 단절하는 할례가 자신의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불의함을 단절할 때 나타난 고통의 시간을 대적들로 하여금 침노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두려움으로 휘감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는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자신의 불의함을 십자가에서 죽이고, 십자가를 앞세운 부활의 신앙으로 다시 일어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살아가는 삶의 여정 앞에 그리고 닥쳐진 문제 앞에 여러분들은 무엇을 앞세웁니까? 주변에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을 앞세웁니까? 아니면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능력을 앞세웁니까? 위기의 순간을 불의한 방법과 같은 불신앙적인 행위를 통해 앞세우게 되면 그 뒤에 무너지는 것은 더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주변에서 권하는 불의한 방법을 십자가에 못을 박으면서 하나님 앞에 수치가 될 수 있는 싹을 잘라내야 합니다.

  자신 앞에 놓인 환경의 강력함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앞세우는 신앙이 되지 못한 것이 더 두려운 것입니다. 형식적인 종교 행위를 통해 믿음 있다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자신의 삶을 통해 앞세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위기 앞에 주저앉지 말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앞세운 신앙으로 정면 돌파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말씀 묵상을 하면서 나의 신앙은 온전한 신앙인지?
어려운  환경앞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신앙인지?
나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살다보면 참으로 여러가지의 환경이 나를 가로 막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위기와 낙망과 절망앞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기도 하며
내 불안과 걱정이 인본주의의 모습으로 해석하고 결정하고
세상적인 방법과 수단들을 동원하기도 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내 자신앞에 닥치는 환경적인 요소들 앞에 떨림과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건하게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며
날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흔들림 없는 신앙의 자세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형식적인 종교행위로 믿음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감사로 나아가는 나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profile_image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무엇을 앞세울 것인가"라는 오늘 큐티 제목처럼 나는 무엇을 앞세우고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이 가장 먼저인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말씀과 신앙이 아니라 세상의 방법과 인본주의적인 생각이 앞서기도 했음을 고백합니다.
문제 앞에 놓여있을 때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불신앙적인 모습과 방법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신앙을 앞세우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를 다니면서 자신을 크리스천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크리스천이라 소개하면서 음주를 즐기고, 사주를 보러 다니기도 하며, 동성애를 인권이라 말하며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처럼 신앙과 삶을 별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삶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세워나가는 참 믿음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profile_image Jsw126 작성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가지
명령을 명합니다.

첫번째: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명합니다."강하고,담대하라,두려위 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믿음을 앞세워라
두번째: 가나안 전투의의 전초적인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의 말씀이 기로된 언악궤를
앞세우도록 한다.
세번째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을 향한 명령 입니다.
 
광야의40년의 여정으로 인해 할례 받지 못한
세대들을 향한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길로 앞세운 신앙을 믿고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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