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신앙과 삶의 자세 = 왕하 5장 8~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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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목) | 왕하 5장 8~14절 | 신앙과 삶의 자세 |
5: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5: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5: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5: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
(도입)
주전 13세기경 핫타이트족의 영토였던 다메섹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등장합니다. 유목민족이었던 그들은 아람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세력을 키워갑니다. 처음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 강력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다윗과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 때 그들은 이스라엘의 통치권 아래 다스림을 받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인 B.C 930년,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라가 갈라지게 되자 아람은 큰 부가 이익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성장한 아람에 벤하닷 2세가 나라를 다스릴 때입니다.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의 연합군을 나아만 장군이 진멸하게 됩니다. 때는 아버지 아합 왕의 뒤를 이어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을 때입니다.
아람 왕은 자신의 신복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 나아만의 집에는 북이스라엘에서 포로로 끌려온 한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나아만의 문둥병에 대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제가 있던 나라에 한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를 찾아가시면 그가 주인의 나병을 고쳐주실 겁니다!” 나아만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아람 왕은 왕명이 적힌 친서를 북이스라엘 왕에게 보냅니다. 아람 왕의 서신을 받았던 당시 북이스라엘 왕인 아하시야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 앞에 서게 된 나아만 장군,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신앙과 삶의 자세에 대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을까요?
(8~10) 신앙과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 그리고 자신의 교만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은 나아만 장군의 병과 관련한 아람 왕의 친서를 받습니다. 순간! 그는 이런 판단을 합니다. “이것은 전쟁을 위한 선전포고다!” 일명 나병이라고도 부르는 이 병은 사람의 의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아하시야는 한탄하며, 통곡합니다, “이제! 나라가 망했구나!” 왕의 이 소식을 접한 엘리사가 왕을 책망합니다. “왕이여!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아람 장군 나아만을 나에게로 보내십시오. 그가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참고, 8절) 왕이 절망 가운데서 제일 먼저 취한 것이 ‘옷을 찢는 행위’였습니다. 이것은 신앙 가운데 회개하며 옷을 찢는 행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불신앙 가운데 나온 한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하시야 왕은 엘리사의 말대로 나아만 장군을 그에게로 보냅니다. 이때 병 고침을 받겠다는 나아만 또한 교만이 가득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을 치료받고자 했던 나아만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하는 방법과 약이 아니었습니다. 치료하는 여호와 라파 하나님 앞에 자신의 교만을 내려놓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순종의 자세였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교만을 먼저 꺾도록 합니다. 첫 번째는 ‘하인’을 보냅니다. 두 번째는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어라’고 명령을 합니다. 나아만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버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삶의 회복은 다른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만물의 주인 되시며, 만물을 친히 지금도 운행하고 계시며, 인생의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통해 삶의 회복은 일어납니다. 아하시야와 같이 절망적인 상황에 놓일지라도, 나아만처럼 생명의 위기 앞에서도 근심을 꺾어버리고,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을 세워나가는 것으로 내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1~12) 신앙과 삶에는 합리적인 방식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믿음과 순종을 앞세우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병을 치료받기 위해 우상숭배의 주술사들처럼 엘리사가 성대한 의식을 치루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등 주술적인 특별한 행동을 취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조치는 더러운 요단강에 자신의 몸을 한 번도 아니고, 일곱 번을 씻으라는 명령에 따른 순종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나아만은 극도의 분노를 드러냅니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12절) 나아만의 말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육신을 썩게 만드는 나병의 몸을 더러운 물로 씻게 되면 더러운 병균의 제2차 감염에 의해 몸은 극도로 상태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나아만의 몸은 매우 깨끗하고, 세균이 없는 정결한 물로 씻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논리적인 인과관계의 여부를 떠나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는 오늘도, 지금도, 창세 때처럼, 나아만 장군의 시대와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는 합리적인 방식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아는 믿음과 순종하는 발걸음을 통해 일어나고, 나타납니다. 나아만처럼 자신의 합리적인 사고의 판단으로 계산하고 돌아서면, 그 사람의 신앙과 삶에 나타나야 할 소망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으로 결실을 맺길 원하십니까?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13~14) 신앙은 자신의 지식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끝까지 순복하는 삶의 자세를 통해 세워져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에게는 북이스라엘로부터 끌려와 ‘종’이 된 한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황급히 달려가 주인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에 대해 주인으로 하여금 알도록 일깨워줍니다. 첫 번째는 권력의 자존심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13절) 두 번째는 순종하는 자가 되도록 일깨워줍니다. 사람의 진정한 자존심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 외 자존심은 자존심이 아닙니다. 어리석음입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합리적인 지식과 사고를 접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 갑니다. 자신의 몸을 물에 담굽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몸을 요단강에 담급니다. 한번!, 두 번!, 효과가 없었습니다. 세 번!, 네 번!, 동일하게 효과가 없었습니다. 다섯 번!, 여섯 번!, 동일하게 변화가 없었습니다. 회복이라는 결과는 없었지만 나아만은 끝까지 순종합니다. 일곱 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권력자의 뻣뻣한 자세를 취했던 나아만, 그는 자신의 몸을 물에 여섯 번 담그면서 합리적인 지식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순종하고, 복종하는 종의 자세를 취합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복의 자세가 무르익었을 때입니다. 놀랄 사건이 일어납니다.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14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끝까지 순복하는 삶의 자세로 신앙을 세워나가는 자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적용)
일곱 번은 회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복한 때를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말씀대로 했는데 내 삶은 왜! 이래요!”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기복적인 자세를 버리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말씀의 강물에 자신의 모든 모습을 담그십시오! ‘한 번’, ‘두 번’, ‘세 번’, 이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을 신앙의 양심이라는 말씀의 검으로 찌릅니다.
나아만처럼 합리적인 자기 사고를 깨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만이 여섯 번째가 되었을 때, 일곱 번째를 기억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믿는 믿음과 함께 말씀을 지켜 준행하는 순종과 복종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그때가 아니라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아직 때가 멀었다는 증거이며, 내가 지금까지 여섯 번을 기복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몸을 담갔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보며, 순복하는 신앙과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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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행복한사람 작성일
나병에 걸린 나아만장군은 교만하고 하나님앞에 바로 서지 못하는 자로
엘리사에게 찾아갔을 때 엘리사는 더러운 요단강물에 일곱번 씻으라고 명령합니다
치료하는 여호와 라파 하나님 앞에 나아만의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하도록 합니다
나아만이 처음에는 분노하여 몸을 씻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씻으니 깨끗이 나았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나의 신앙을 되돌아봅니다
나 역시 내 고집과 내 생각 내 뜻대로 행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신앙은 내 자신의 지식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변치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신뢰하고 순종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때로는 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신앙과 삶은 적당한 타협을 하면 안되고
신앙과 삶은 합리적인 방식을 세우면 안되고
신앙과 삶은 항상 일치하여야 합니다
나의 신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고집과 교만과 나의 생각을 꺾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늘 신뢰하고 순종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믿으며
순복하는 신앙과 삶이 되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끝까지 순종해야 함을 알면서도 실상을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두 번 순종하고 문제가 생기면 대체 왜 이러시는 거냐며 쉽게 불평한 적이 더 많았습니다.
기복적이고 인본적인 신앙이었던 저의 모습을 주님 앞에 회개하며 내려놓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고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따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여 끝까지 순종하여 병이 나았던 나아만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끝까지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이고 옳은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하기에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의심치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보고 순복하는 신앙과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Jsw126님의 댓글
Jsw126 작성일
나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은 "이것은 전쟁을 위한 선전포고다"라고 말하였고 이것이 나병이라
하며 사람의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이 병을 고치고 싶은 아하시야 왕은 한턴 하며
"이제! 나라가 망했구나"라고 하였고 선지자
엘리사는 "왕이여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아람 장군 나이만을 나에게로 보내십시오,그가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 선지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엘리사는 나이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일곱번 물에 씻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여호와 라파 하나님 앞에 나이만의 교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전합니다.
나이만 장군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다시 하니
병이 나아졌습니다.
신앙과 삶은 하나님의 말씀과 신뢰와 순종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신앙으로 기도합니다.
김민규님의 댓글
김민규 작성일
나아만은 하나님의 능력보다 자신의 생각과 체면을 더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기대나 방법이 아니라 순종을 통해 경험하게 됩니다.
작은 말씀이라도 끝까지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나 또한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