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나눔

(9월 4일) 삶의 신앙 = 룻 1장 1 ~5절

페이지 정보

작성자바티스성경아카데미

본문

4()

11~5

삶의 신앙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1: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도입)

우리는 스스로를 가리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정말 신실한 믿음의 사람인지 아니면 겉모양만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는 가식 된 가면을 쓰고 있는 믿음의 사람인지 그 진면모는 환난과 역경 속에 놓였을 때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룻기는 성경의 짧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길고도 먼 길을 바라보게 하는 성경입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 이방 땅으로 향한 한 가정이 소개됩니다. 이 가정은 다윗의 가문을 이어갈 가정이었으며, 멀리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대를 이어갈 가정이었습니다. 결론으로만 놓고 볼 때 정말! 대단한 가정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가정의 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신앙에 대하여 중요한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신앙과 삶은 언제나 동일 선상에서 다루어져야 합니다. 신앙과 삶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개되고 있는 이 가정은 신앙과 삶을 달리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신명기 5장과 7장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명한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삶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 그 자체가 되어라는 말씀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랍니다. 부모의 신앙 유산은 그 아이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형식적인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길을 걷게 할까요?

 

(1) 형식적인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상황을 판단하며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최종 결정권자가 되는 길을 걷게 합니다

 

룻기의 시작은 소위 선민이요, ‘성민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코 나타나서는 안 되는 3가지의 중대한 과오가 발생한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이며, 두 번째는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모압지방으로 가서 거류하였다라는 내용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비롯한 가나안 정복 당시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 둘 사라집니다. 성경은 이때 이스라엘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충격적인 말을 던집니다. (21:25)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시대는 말 그대로 하나님을 향한 범죄와 그로 인한 징계 그리고 회개가 반복되는 시대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도 없고, 사람마다 온통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규범이 되기보다 자기의 생각이 삶의 모든 것을 이끌어갔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흉년이라는 징계를 내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앙으로 세워지지 못한 그들의 모습 속에서는 두 가지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는 베들레헴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고, 무엇이고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라는 겁니다. 형식적인 신앙은 고난이 찾아오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보다 고난을 피하기 위한 자세를 먼저 취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상황을 해석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립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러나 진실된 신앙은 고난이 찾아왔을 때 그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숙고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겸허히 수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2~3) 형식적인 신앙은 하나님 안에서 문제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잘못된 신앙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흉년이라는 징계를 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온전하지 못한 신앙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입장에 서서 스스로 유익을 쫓아 그 장소를 도피하기에 급급합니다. 그의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엘리멜렉이었습니다. 성경은 고발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절대로 떠나서는 안 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유다지파에 속한 엘리멜렉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아들과 아내 나오미와 함께 모압 땅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나 모압 땅은 자신이 처음 생각하고, 판단하였던 그런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낯선 모압 땅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엘리멜렉의 죽음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아내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뿐이었습니다.

(28)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삼가 귀를 기울여 그 말씀을 지켜 준행하는 자는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며, 자녀들과 자신의 모든 소유에도 하나님의 복이 넘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오직 저주에 따른 파멸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식적으로 이름만 엘리멜렉이면 무엇합니까! 정말!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신앙의 바른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길 때 웃사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답을 찾았던 오벳에돔에게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었다라고 (삼하 6:12)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합니다.

 

(4~5) 형식적인 신앙은 징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을 들을 영적 귀가 열려있지 못한 형식적인 신앙은 자신을 스스로 무덤가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깨달음을 갖지 못한 자에게 그 다음 찾아오는 것은 오직 멸망뿐입니다. ‘엘리멜렉의 죽음은 그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또 다른 경고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나오미에게는 하나님의 또 다른 징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인도함이 아니라 모압 땅에서 정착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그곳의 여인들과 결혼합니다.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 하나의 이름은 이었습니다. 그들이 모압 땅에 거한지 십 년쯤 되었을 때입니다.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5)

공교롭게도 두 아들의 가정은 아무도 후손의 를 가지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5) 형식적인 신앙이 무서운 이유는 자신에게 내려진 징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향한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미 결론을 보여줬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결국은 전부를 잃어버립니다. 아들의 결혼 또한 보통 유대인들이라면 수긍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결혼이었음을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4)라는 말씀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택함을 받은 백성으로서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형식적인 신앙은 주변의 세속적인 풍습에 쉽게 동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향상 깨어있는 신앙의 길을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원인 없고, 이유 없는 징계를 내리지 않습니다. 나는 정말 형식적인 신앙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삶은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종교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그러했습니다. 이름만 엘리멜렉이고, 나오미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름만 가지고 있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21:27)을 통해 주님께서는 말씀합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고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형식적인 신앙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함을 받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댓글목록

행복한사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행복한사람 작성일

말씀 묵상을 하며 나의 신앙을 돌이켜 보면 부끄러움과 찔림밖에 없는 나의 모습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신앙생활을 정말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나의 신앙의 모습이 형식적인 모습을 보일때가 너무나 많음에
말씀을 묵상하며 다시한번 신앙의 다짐을 하는 시간입니다

보여주기 위한 신앙, 나를 드러내는 신앙, 어쩔수 없이 참여하는 신앙
의례적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신앙들이 없는지
나를 점검하고 또 점검해봅니다
하나님앞에 솔직한 모습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앞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기를 원합니다
겉모습만 신앙의 일꾼이 아니기를 원합니다
종교적인 행위자가 아니기를 원합니다

형식적으로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아니기를 원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과 감사의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지켜 준행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신앙이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한 날에 다짐이 아니라 변치않는 신앙의 자세로
삶과 신앙이 일치하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기를 다짐하며 기도합니다

구름님의 댓글

profile_image 구름 작성일

오늘도 주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의 신앙은 어떠한지 돌아보았습니다.
이전의 저는 형식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바지지 않고 출석했지만 말씀을 듣기만 하고 삶에 적용시키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이야기하며 술 권유도 모두 거절했고, 살면서 불법한 일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복음과 말씀을 증거하거나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이전과 다르게 매일 말씀도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가게 해달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형식적인 신앙이 되지 않도록 내 생각과 판단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뜻을 구하고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진실한 신앙으로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향한 신앙과 삶이 일치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함을 받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성경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는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성경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FAMILY

CONTACT

  • 주소 : (48054)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재반로 113-15(재송2동 1060-2)
  • TEL : 051-783-9191 / FAX : 051-781-5245
  • Copyright © 2023 바티스 성경 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
  • 카카오뱅크 3333-28-3057838 예금주 : 바티스
  • 우체국 601252-02-199260 (황영선-바티스)